전 지역 정전 겪은 영덕 가보니
하룻밤 사이 잿더미로 변해
화물차 1대·승용차 2대 불타
하룻밤 사이 잿더미로 변해
화물차 1대·승용차 2대 불타
산불을 피해 대피한 주민들이 26일 경북 영양군민회관 대피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산불이 강한 바람을 타고 종잡을 수 없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의 대피를 어렵게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야말로 전쟁통이었습니다. 거세게 번지는 산불과 어둠 속에서 목숨을 건지기 위해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은 동해안에 인접한 영덕까지 집어삼켰다. 영덕은 갑자기 들이닥친 화마에 하룻밤 사이 희뿌연 연기와 잿더미 가득한 회색 도시로 변한 모습이었다.
26일 오전 포항시와 영덕군을 잇는 7번 국도. 영덕에 가까워질수록 주변에는 매캐한 불냄새와 함께 희뿌연 연기 사이로 소방헬기의 프로펠러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가까스로 7번 국도를 벗어나 매정리로 접어들자 불에 탄 마을은 연기에 휩싸여 인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밤사이 몰아치던 거센 바람도 잦아들고 불길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지만 폐허가 된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영덕군 하저리에 사는 박효대(63)씨는 “어제 산불이 집 근처로 번져 포항으로 피신했었다”면서 “밤사이 7번 국도가 통제되면서 아침이 돼서야 다시 집으로 왔다”고 말했다. 그는 “산불이 매정리와 노물리 쪽으로 번지면서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영덕 주민들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속에서 밤을 지냈다. 정전이 돼 불이 꺼지고 통신마저 두절된 상태에서 세찬 화마를 피해 몸을 옮겼다. 산불 이재민 대피소인 영덕군민체육센터에서 만난 이들은 “한참 동안 정전이 되면서 어둠 속에서 휴대전화도 안됐다. 외부와 연락이 끊기면서 더 무서웠다”고 입을 모았다.
영덕에선 전날 오후 9시부터 전 지역에 정전이 발생했다. 무려 5시간이나 지난 다음날 오전 2시부터 전기 공급이 재개돼 그 기간 주민들은 어둠 속에서 큰 혼란과 공포를 느꼈다. 또 밤에 두 시간가량 전 지역 통신도 두절됐다. 26일 새벽에는 해안가까지 산불이 확산하자 주민들이 방파제로 대피했다가 고립되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7번 국도에선 화물차 1대와 버스 1대, 승용차 2대가 불에 탔고 지품정수장이 전소됐다.
청송지역도 하늘이 온통 희뿌연 연기로 가득했다. 시내도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찔렀다. 닷새째 확산 중인 경북 북부 산불은 전날 안동을 지나 청송 주왕산국립공원까지 번졌다.
의성에서 진화 작업을 벌이던 임차 헬기 1대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헬기 운영이 한때 전면 중단된 데다 오후 들어 오전보다 바람도 강하게 불면서 화마가 더 커질까 우려됐다. 불이 난 지점은 경사가 심하고 바위도 많아 인력을 활용한 진화가 어려운 탓에 불길이 순식간에 5부 능선 너머로까지 번진 상태다.
청송에선 밤사이 교도소 담벼락까지 불씨가 번지는 등 일촉즉발 상황이 벌어졌다. 교도소 직원들이 신속하게 불을 끄고 수용자들을 다른 곳으로 대피시키면서 다행히 별다른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고요했던 영양 산골짜기 석보면 삼의계곡 일대 마을도 전쟁터로 한순간에 변했다. 나무는 검게 그을리다 못해 밑동까지 다 타버렸다. 특히 이번 화재로 400년 된 소나무인 천연기념물 만지송이 화마를 견디지 못하고 전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