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이 대표는 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중앙포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2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국민의힘은 발칵 뒤집혔다. 유력한 야권 대선 주자인 이 대표를 조기 대선 때 견제할 ‘사법 리스크’ 카드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위기감이 여당을 종일 휘감았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선고 직후 국회에서 취재진과 만나 “유감스럽다. 항소심 재판부의 논리를 잘 이해할 수 없다”며 “대법원이 빨리 재판해서 정의가 바로 잡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항소심 재판부의 성향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합리적 상식을 가진 법관이라면 이런 판단을 내릴 수 없다”며 “결국 판사들의 개인 성향이 직업적 양심을 누르고 판결에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 대표가 (2021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토교통부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백현동 부지를 용도 변경했다고 한 건 명백한 허위사실인데, 어떻게 무죄가 됐나”라며 “2심 판결은 받아들일 수 없고,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잠재적인 여권 대선 주자들도 발끈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페이스북에 “대선 주자가 선거에서 중대한 거짓말을 했는데 죄가 아니라면 그 사회는 바로 설 수 없다”고 썼고, 유승민 전 의원은 “거짓말을 거짓말이라고 하지 못하는 홍길동 판결”이라고 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법, 진실, 국민 상식에 반하는 판결이고 정치인에게 주는 거짓말 면허증”이라고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무죄를 정해놓고 논리를 만들었다”며 “정치인 진퇴는 판사가 아닌 선거로 결정해야 한다는 말을 떠오르게 하는 판결”이라고 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국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무죄 선고 직후 백브리핑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국민의힘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국 반전 카드로 ‘이재명 2심 유죄’에 줄곧 매달렸다. 이 대표가 이날 2심에서 피선거권 박탈형(벌금 100만원 이상)만 선고받으면 조기 대선 시 해볼 만한 싸움이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무죄 선고로 스텝이 꼬여버렸다는 현실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부산 지역 의원은 통화에서 “만약 항소심에서 유죄가 선고됐다면 대선 전 확정 판결이 나서 이 대표 출마가 무산될 수도 있었다”며 “확정 판결이 나지 않더라도 대선 내내 이 대표를 압박할 꽃놀이패였다”고 했다. 그러곤 “이제 꽃놀이패는 사라졌다”고 했다.
수도권 의원은 통화에서 “이제 이재명 사법리스크만 쳐다볼 게 아니라, 수권 정당으로서 신뢰를 줄 수 있는 플랜B를 마련할 때”라고 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2심은 존중받아야 한다. 정책과 철학으로 실력을 키우는 새로운 보수 정치만이 대안”이라는 입장을 냈다.
반면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은 5대 사법리스크 중 하나일 뿐 위증교사, 대장동·백현동·성남FC, 쌍방울 대북송금, 법인카드 유용 사건 등 나머지 의혹이 남아 있는 만큼, 공세 고삐를 늦춰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여당 관계자는 “1심 무죄를 선고받은 위증교사 사건도 항소심에서 뒤집힐 가능성이 있지 않나.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는 끝난 게 아니다”라고 했다.
이날 국민의힘에선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 각하·기각되고 조기 대선이 열리지 않으면 이번 항소심 무죄는 별 의미 없다”(3선 의원)는 주장도 나왔다.
대통령실은 이날 공식 반응을 내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참모는 “모두들 납득하기 어려운 분위기지만,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이 대표 판결에 대해선 공식 대응을 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도 “사법부의 판결에 대해서 대통령실이 평가를 하진 않아 왔다”며 “이번 이 대표 판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