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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관세 압박 속 국내 기업 첫 투자 발표
제철소 신설 "미 일자리 1300개 만들 것"
"미국 시장 사수" 그룹 이해관계도 맞물려
힘 빠진 정부... 국내 일자리 문제도 숙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4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201억 달러(약 31조 원) 규모의 대미 신규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현대차그룹이 31조 원에 달하는 대미 투자에 나서기로 하면서 정의선 회장의 승부수가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미국발(發) 관세 폭탄 영향권에서 최대한 벗어나 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것인데 자동차 최대 격전지인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글로벌 완성차 기업으로서 입지를 강화하려는 현대차그룹의 이해가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국가 리더십 공백 속 민간 기업이 경제 외교의 총대를 멘 꼴이 되면서 앞으로 정부의 대미 협상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대차 역대급 대미 투자

24일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에 있는 현대차 대리점. 마이애미=AFP 연합뉴스


정 회장은 24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앞으로 4년 동안 미국에 210억 달러(약 31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의 투자 대상은 △자동차 생산(86억 달러) △부품·물류·철강(61억 달러) △미래산업·에너지(63억 달러) 등 크게 세 가지 분야다. 미국 내 자동차 생산량을 120만 대 이상으로 가져가겠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의 2기 임기가 시작된 뒤 우리 기업이 미국에 대규모로 투자 계획을 밝힌 건 처음이다.

정 회장은 현대제철의 첫 해외 쇳물 생산 기지가 될 루이지애나주 전기로 제철소 신설 발표에 특히 힘을 줬다. 2029년 생산을 목표로 현대차그룹이 58억 달러를 쏟아부을 제철소를 두고 정 회장은 "미국 내 1,300개 일자리를 창출하고 안정적이고 자립적인 자동차 공급망의 토대가 될 이정표"라고 치켜세웠다. 연간 생산량은 270만 톤(t)으로 예고했다.

현대차그룹은 30억 달러(약 4조 원) 규모의 미국 액화천연가스(LNG) 구입 계획도 밝혀 눈길을 끌었다. 공장을 돌릴 에너지까지 미국산 의존도를 높이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이로써 현대차그룹은 1986년 미국 진출 이후 대미 투자액을 415억 달러(약 61조 원)까지 끌어올렸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현대차그룹은 이제 미국에 (차량 등을) 단순히 판매하는 기업이 아니라 자동차 밸류 체인을 미국에서 수행하는 미국화된 기업이란 인식을 심어준 계기가 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관세 유예 가능성 '촉각'

그래픽=신동준 기자


그래픽=신동준 기자


이날 발표가 트럼프 대통령이 4월 2일 예고한 국가별 상호 관세 발표를 일주일가량 앞두고 나온 만큼 현대차그룹으로선 관세 폭탄 위기를 돌파할 카드를 선제적으로 마련한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 회장의 투자 계획을 "아름다운 발표"라고 치켜세우며 "미국에서 철강과 자동차를 만드는 현대는 관세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고 화답했다. 현대차의 투자가 자신이 앞세운 관세 정책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걸 보여주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 현지 공장을 방문해 달라는 정 회장의 말에 "오케이(좋다)"라고 답하는 모습도 보였다.

트럼프의 반응을 두고 관세 유예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미 뉴욕타임스는 현대차그룹의 투자 계획을 두고 "한국이 관세를 피하거나 적어도 다른 국가보다 낮은 관세를 부과받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나 기업의 미 경제 기여도에 따른 관세 예외 가능성을 언급해 왔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이번 투자를 미국 시장에서 브랜드 입지를 탄탄하게 할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미국은 현대차 판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점유율 확대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지역이다. 현대차·기아는 2024년 글로벌 시장에서 약 723만 대를 판매했는데 미국에서만 170만 대를 팔았다. 현대차그룹이 조 바이든 행정부 때인 2022년 5월 105억 달러(약 15조 원)에 달하는 미 투자 계획을 밝힌 것도 미래 모빌리티 산업 주도권을 잡기 위해선 미국 시장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국내 일자리 문제는 숙제로

정의선(왼쪽 두 번째) 현대차그룹 회장이 24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두 번째)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미 신규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현대차그룹에 이어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확대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내 일자리를 어떻게 지켜낼지에 대한 논란은 피하기 어려워졌다. 기업들이 미국 현지에 생산 시설을 새로 짓거나 기존 공장을 옮길 경우 지방을 중심으로 국내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앞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될 정부로선 힘이 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우리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카드로 제시할 기회 하나가 날아간 셈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 리더십이 공백인 상황을 고려할 때 코너에 몰린 기업으로선 각자도생이 불가피한 측면도 크다. 외교부 경제통상대사를 지낸 최석영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정부가 모든 기업들의 이해관계를 묶어서 미국과 협상에 나서는 상황이 바람직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럼에도 관세 타격이 클 수밖에 없는 현대차로선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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