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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아들 책 낸 윤서 작가 인터뷰
인구 1만명에 1명꼴로 드문 소아 조현병 아들 나무와 18년 동행한 기록을 공개한 윤서 작가를 지난 10일 만났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도 있었지만 이젠 웃을 수 있다고 했다. 김종호 기자
정해진 치료법도, 완치도 없는 병에 걸렸다. 빈발하는 증상과 일상을 방해할 정도로 독한 약물 부작용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운데, 엄청난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맞닥뜨려야 한다. 형벌 같은 환경에서 환자와 가족이 감내해야 할 중압감이 얼마나 클지 감히 상상조차 어렵다. 하물며 성인도 아니고 다정하고 똑똑했던 열두 살 소년에게 갑작스럽게 이 병이 찾아왔다면.

갑자기 찾아온 아들의 조현병
죽지 못해 살던 엄마는 삭발까지
조각난 세계 불구 살아남은 건
타인의 따뜻한 말 한마디 덕분
조현병 얘기다. 인구 100명당 1명의 발병률, 다시 말해 암만큼 흔한 병인데도 좀처럼 주변에서 만나기 어려운 건 조현병을 범죄와 동일시할 정도로 심각한 사회적 낙인 탓이 크다. 복지부 정신질환 실태조사가 잘 보여준다. 조현병 환자는 공격적이고 난폭한 데(78%)다 범죄 저지를 확률이 높아(72%), 열에 예닐곱은 치료 경험 있는 사람과 친구나 이웃 주민으로 살 수 없다고 답했으니 말이다.

치료만 받으면 일반인 범죄율과 다르지 않은데도 강남역 살인 사건(2016)이나 진주 방화 살인 사건(2019)처럼 범행 자체보다 조현병 앓던 범인의 병력에 더 주목하는 언론 보도가 나올 때마다 조현병 환자 가족은 더 움츠러든다. 대중의 조현병에 대한 두려움이 커질수록 주홍글씨는 더 짙어져 사회에서 배척당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지니까. 그래서 모두들 숨는다.
입퇴원을 반복하는 힘겨운 와중에도 나무는 출석일수를 맞춰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교 과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 윤서(왼쪽)씨와 나무씨. [사진 윤서]
그런데 여기 조현병과 함께 살아온 지난 18년을 담담히 털어놓은 사람이 있다. 책『내 아이는 조각난 세계를 삽니다』를 내고 아들 병을 세상에 커밍아웃한 엄마 윤서(필명)씨와 아들 나무(29·가명)씨다. 얼굴은 드러냈지만 본명은 공개하지 않았다. 환자와 환자 엄마라는 정체성 대신 작가와 평범한 청년이라는 또 다른 정체성으로 세상과 대면하고 싶어서다.

일반적인 조현병보다 더 드물다는 인구 1만 명 중 1명꼴인 소아 조현병 걸린 아들을 잘 키워낸 윤서 작가를 지난 10일 만났다. 한때 죽고 싶었던 적도 있지만 이젠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에게 '살자', 아니 '잘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용기를 냈다고 했다. 윤서 작가 시각에서 그의 인생을 정리했다. 안혜리 논설위원
"엄마, 내가 미치고 있나요" 폭풍·폭탄이라는 표현 정도로는 담을 수 없는 공포와 절망이었다. 2008년 아무 전조 증상 없이 아들에게 급성 조현병이 왔다. 어느 날 집에 와보니 온 집 커튼을 다 치고 불안에 떨고 있었다. 최면술로 치료한다는 의사, 한약으로 독소 뺀다는 한의사까지 만났지만, 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다. 시어머니는 "귀신 들렸다"며 굿할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공부 잘하고 독서와 축구 좋아하던 아들 상태는 분명 심각했지만, 난 그저 성장 과정에서 뇌가 잠시 엉킨 거라 생각했다.
지난 2008년 나무가 조현병으로 처음 입원했다가 퇴원해서 윤서씨 부부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윤서]
아니었다. 대학병원 소아 정신병원 개방 병동에 입원해 검사하는 중에도 환청과 망상은 더 심해졌다. 아이가 물었다. "엄마, 내가 미치고 있는 건가요?" 결국 발병 두 달 만에 폐쇄 병동에 들어갔다. 그리고 6개월에 걸친 전문의 관찰 끝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는 조현병과의 동거가 이렇게 시작됐다.

단계별로 방사선치료나 항암, 수술을 받는 암 환자와 달리 조현병은 정해진 치료법이 없다. 환자마다 양상이나 약물 반응이 천차만별이라 초기일수록 맞는 약물 찾는 게 중요하다. 나무는 치료제 찾기까지 3년 6개월 동안 입·퇴원을 12번 반복했다. 지난 18년 중 가장 고통스런 기간이었다.

맞는 약도 적응하려면 6주 이상 걸리는데, 맞지 않는 약은 망상과 환청을 일부 줄여주긴 하지만 부작용이 더 심하다. 몸은 땅속으로 꺼질 듯 무겁고 잠이 쏟아진다. 야뇨도 있다. 끝없는 돌봄에 엄마도 지치는데, 초등학교 6학년짜리가 감내하긴 더 어렵다.

한 번은 아이가 약 안 먹겠다고 떼를 썼다. "엄마가 먹어봐, 얼마나 힘든지. " 그 말에 절대 해선 안 될 일을 벌였다. 덜컥 아이 약 중 한두 알을 삼켰다. 도저히 못 일어나 2~3일을 누워만 있었다. 이를 계기로 우리 가족은 약을 '비타민'이라고 부르면서 아이의 약 거부감을 줄여나갔다. 많을 땐 하루 16알씩 먹다 이젠 6알로 줄었는데, 아이가 약 먹을 때마다 난 진짜 비타민을 삼킨다.

이런 일도 있었다. 적잖은 다른 조현병 환자처럼 나무도 처음엔 가까운 사람이 가짜라고 느껴지는 카그라스 증후군을 보였다. 1시간 전까지 멀쩡히 대화하다가 갑자기 "가짜 엄마"라면서 폭력적으로 돌변하면, 두 학년 아래 여동생은 엄마 위험할까 봐 경찰에 신고하고는 "도와달라"며 뛰쳐나갔다. 매일이 전쟁이었다.
"어머니 잘못이 아니에요" 정신질환을 흔히 마음의 병이라고 한다. 조현병은 아니다. 뇌의 병이다. 뇌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인지라 조현병 역시 낯설고, 정신질환 중 가장 치료가 어렵다.

진단 직후 의사는 "뇌가 골절한 것"이라며 "고혈압 환자가 혈압약 먹듯 조현병약을 평생 먹는다고 생각하라"고만 했다. 18년을 겪은 지금도 어려운데, 그땐 정말 막막했다. 환자와 가족이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지침은커녕 기본적 의료 정보 담은 책 한 권 찾을 수 없었다. 혼자 영어 논문을 뒤졌다. 카그라스 증후군도 그렇게 스스로 알아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나무와 함께 아빠는 종종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사진 윤서]
하숙생 같던 남편은 18년의 터널을 함께 빠져나오면서 이젠 김치까지 담그는 '고유명사 아버지'가 됐다. 직장을 구한 후엔 친정어머니 도움도 컸다. 하지만 처음엔, 아니 불과 몇 년 전까지 집·회사 말고 어떤 인간관계도 못 할 만큼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가 참 무거웠다. 나무가 학교는 졸업하고 싶다고 하면 미션 달성은 내 몫이었다. 입원 중에도 아침에 병원 가서 씻기고 교복 갈아입혀 차로 1시간 거리 학교에 가서 다만 1시간이라도 수업을 듣게 해서 수업일수를 채웠다.

이런 필사적 노력은 아이 사랑하는 마음에 더해 어마무시한 죄의식에서 비롯된 거 같다. 의사들이 "어머니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줘 위안받았지만, 박사 공부하고 시간 강사 하느라 온전히 아이를 돌보지 못한 탓일까 두려웠다. 병세가 좋아지기 전까진 죄책감을 떨쳐내지 못했다. 오히려 수시로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첫 입원 1년 뒤 두 번째 입원했을 때도 그랬다. "가짜 엄마 밉다"며 내 머리끄덩이 잡아당기던 나무가 병원에 간 다음 날 부엌에서 펑펑 울었다. "오빠 좋아지려고 입원했잖아"라며 작은 애가 안아준 덕에 정신이 번쩍 났다. "아, 지켜야 할 딸도 있었지, 살아야겠다. "

동네 미장원에 가 "삭발해달라"고 했다. 노력해봐야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좌절 속에서 머리만은 내 맘대로 할 수 있으니까. 더 솔직히는 머리카락 없으면 나무가 잡아당길 수 없을 테니까. 삭발 후 민머리 감느라 누워 있는데, 얼굴에 따뜻한 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미용사 아주머니 눈물이었다. "미장원 20년 넘게 하면서 여자 머리 삭발은 처음인데,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잘 되길 바랄게요. "

삭발한 머리에 큼지막한 귀걸이를 하고 다녔다. 다들 암 환자, 아니면 무슨 예술가라고 여겼는지 무슨 사연이냐고 묻지 않았다.
"엄마, 잘 사는 내 얘기를 해줘" 난 24시간 대기조 간호사이자 교사, 간병인, 가사도우미였다. 조현병 환자 엄마로만 24시간 365일 살기란 너무 벅찼다. 평생 병과 동행하려면 일단 나부터 지켜야 했다. 그렇게 찾은 답이 아이와 적당한 거리 두기, 나만의 사회적 정체성 갖기였다. 2012년 4월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을 구했다. 입원하면 무조건 1인실에 들어가야 해서 입·퇴원을 반복한 처음 3년 반 동안 치료비 대느라 살던 아파트를 팔았는데, 직장은 지속적 치료를 돕는 경제적 이유에 더해 아이 아닌 다른 일에 집중하는 숨구멍이 돼줬다.

하지만 직장 동료에게도 지금껏 아이가 아프다고만 했지 조현병이라고 밝히진 않았다. 조현병 주홍글씨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니까. 나무처럼 환자 3분의 1은 맞는 약을 잘 찾아 통원치료하며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다른 3분의 1은 입·퇴원을 반복하고, 나머지 3분의 1은 만성 환자가 된다. 인구 1% 발병률을 고려할 때 환자 수는 30만~40만명은 될 텐데 건강보험 치료비 청구는 21만명(2022년 기준)에 불과하다. 사회적 편견이 적을수록 발병 초기 제때 치료받고 범죄도 막을 수 있음에도 편견 탓에 치료 없이 방치되는 환자가 이렇게 많은 거다.

편견·방치·위험의 악순환 끊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고 나무의 조현병 얘기를 글쓰기 플랫폼에 올렸다. 한편으론, 나를 위한 두 번째 거리 두기였다.
진정한 홀로서기를 위해 나무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지만 아직 취업은 하지 못했다.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잠시 근무하던 나무. [사진 윤서]
나무는 일반 전형으로 들어간 지방 사립대 건축학과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교수는 휴학을 권하고 기숙사에선 쫓겨났다. 다행히 2018년 새로 입학한 산림조경학과는 2023년 무사히 졸업했다. 취업준비 한다며 1년 자취하는 동안 나무는 비록 직장은 못 구했지만 혼자 밥 챙겨 먹고 설거지·빨래·분리수거하는 등 자기 돌봄 훈련을 톡톡히 했다. 정작 문제는 나였다. 붙들려 있지 않아도 되니까 뜻밖에 외로웠다.

그래서 세종으로 출근하는 기차 안에서 글을 썼다. 이걸 계기로 나무는 지난해 유튜브 출연까지 했다. 남편은 얼굴 공개를 조심스러워했는데, 정작 나무가 "나 좋아진 거 세상에 얘기하려고 글 썼잖아, 조현병 환자도 잘살아간다는 걸 보여줘야지"라며 용기를 냈다.

18년의 긴 터널 끝에 이젠 웃을 수 있지만, 여전히 웃지 못하는 환자와 그 가족에게 위로가 됐으면 한다. 고통 속에서도 사랑하는 한 사람, 따뜻한 말 한마디면 살아낼 수 있다. 세상이 조금 더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
안혜리 논설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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