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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전 경북 의성군 산불이 번진 안동시 길안면 백자리 주민 서무장·추신애 부부가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주성미 기자

“이걸 두고 어찌 가, 못 가지. 내 인생이 걸린 건데.”

경북 의성 산불이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지만 일부 지역 주민은 정든 집에서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다. 25일 오전 경북 안동시 길안면 백자리 들머리에서 만난 서무장(65)씨는 이렇게 말했다. 서씨와 세 식구는 전날 오후 받은 대피명령 재난문자를 보고도 차마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전날부터 손수 설치한 스프링클러 10개를 틀었다 껐다 하며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서씨는 “정말 불이 붙으면 그때는 도망가야 한다. 사람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지만, 불에 타더라도 내 눈으로 보고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11시께, 가뜩이나 짙은 연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마을 산 아래로 불줄기가 번지기 시작했다. 권중인(75)·김옥순(59) 부부 집 바로 뒤다. 집에서 헐레벌떡 뛰어나온 이들 부부는 길 하나를 건너 주저앉은 채 소방관들이 물을 뿌려 불을 끄는 모습을 지켜봤다. 경북 포항과 안동을 오가며 지낸다는 권씨는 “의성 산불에 우리 동네 이야기가 나오더라. 집이 걱정돼서 어제(24일) 오후에 왔다”며 “대피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끝까지 지켜봐야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불길이 저 멀리 산 너머 있는 것처럼 연기가 났는데, 언제 이렇게 집 뒤까지 불이 내려왔나 싶다”고 했다.

의성 산불은 안동 길안면 현하리 산으로 옮아 붙어 길안면 전체와 남선면, 임하면 일부 주민들이 대피한 데 이어 25일 오후에는 풍천면까지 번졌다. 풍천면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하회마을, 병산서원 등이 있다.

불을 피해 집에서 벗어난 주민들은 사흘 새 대피만 두번씩 해야 했다. 이날 오후 안동시 운흥동 안동체육관에는 의성에서 번져 온 산불을 피해 대피한 안동 주민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길안면 백자리 주민 김수연(88)씨는 “내 여태 살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연신 아픈 다리를 두드렸다. 김씨를 포함한 백자리 주민들은 이번이 벌써 두번째 대피다. 의성 산불이 마을로 번질 수도 있다는 소식에 지난 23일 밤부터 마을회관과 길안초등학교 등으로 한차례 대피했다. 다음날 사정이 나아졌다는 소식에 집으로 돌아갔지만, 이내 다시 대피명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집에 누워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다리가 아픈 나를) 경찰 둘이 와서 양쪽에서 들고 대피시키더라.” 같은 마을에 사는 김잎분(64)씨는 두번의 대피길 모두 당뇨약을 미처 챙겨 오지 못했다. 김씨는 “처음에는 정신이 없이 나오느라 당뇨약을 챙기지 못했다. 두번째는 점심 먹으려고 하는데 또 대피해야 한다고 해서 뛰쳐나왔다. 한참 나오다 보니 또 약을 챙기지 않았더라”며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김분수(75)씨는 “비가 좀 와주면 좋겠는데, 바람 따라 불만 날아온다”며 “제발 내 몸 하나 누일 집이 안 타길 빌고 또 빈다”고 했다.

산불이 강한 바람을 타고 빠르게 확산하면서 고속도로가 통제되고, 철도 운행도 중단됐다. 한국도로공사는 이날 오후 5시를 기점으로 서산영덕고속도로 서의성나들목(IC)~영덕나들목 구간(94.6㎞)과 중앙고속도로 의성나들목~서안동나들목 구간(37.7㎞)을 전면 차단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도 중앙선 안동~의성역 간 하화터널 부근(의성역 인근)에서 산불이 발생해 안동~경주역 열차 운행을 중지했다. 이날까지 운행이 중지된 열차는 고속철 4대와 일반열차 3대다. 코레일은 대신 연계버스로 승객을 수송했다.

불길이 청송까지 번지자 교정당국은 경북북부교도소(옛 청송교도소)와 안동교도소 등의 재소자를 대피시키기로 결정했다. 대피하는 재소자 규모는 3400명에 이른다. 법무부 교정본부는 경북북부제1~3교도소, 경북직업훈련교도소, 안동교도소 재소자들을 이동 차량이 마련되는 대로 대피시키기로 했다. 이들은 대구지방교정청 산하 14개 수감시설로 옮겨진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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