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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경북 안동시 남선면 마을에서 주민들이 야산에 번진 산불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걸 두고 어찌 가, 못 가지. 내 인생이 걸린 건데.”

25일 오전 경북 안동시 길안면 백자리 들머리에서 만난 서무장(65)씨는 이렇게 말했다. 서씨와 세 식구는 전날 오후 받은 대피명령 재난문자를 보고도 차마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전날부터 손수 설치한 스프링클러 10개를 틀었다 껐다 하며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서씨는 “정말 불이 붙으면 그때는 도망가야 한다. 사람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지만, 불에 타더라도 내 눈으로 보고 가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발생한 의성 산불이 안동 풍천면으로 번지면서 세계문화유산인 하회마을까지 직선거리로 10㎞ 앞까지 닥쳤다. 불은 건조한 날씨와 강풍 탓에 불길을 잡는 데 애를 먹고 있다. 불길은 안동 길안면, 풍천면까지 번졌다. 풍천면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하회마을, 병산서원 등이 있다.

중앙고속도로 안동시 남후면 고상리 인근 CCTV 갈무리

경북 의성 산불이 안동 길안면으로 번져 25일 이틀째 확산하고 있다. 지난 22일 의성군 안평면·안계리에서 발생한 산불의 불씨는 24일 오후 4시께 강풍을 타고 북동쪽으로 20여㎞ 이상 떨어진 안동시 길안면까지 덮쳤다. 안동시 제공

안동시는 이날 오후 5시 “관내 산불이 우리 시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으니 전 시민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고 안내했다. 이어 5시 5분에도 “관내 전역으로 산불이 확산 중”이라며 “전 시민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고 먼저 대피하신 분들은 안전한 곳에 머물러 달라”고 요청했다.

한국도로공사는 25일 오후 3시30분 서산영덕고속도로 안동분기점(JCT)~청송교차로(IC) 구간 양방향을 통제했다. 한국철도공사도 이날 안동-경주 구간 철도 운행을 일시 중단했다.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안동으로 번진 가운데 25일 오전 경북 안동시 길안면 백자리 일대 야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오후 3시 기준 진화율은 62%다. 산불영향구역 추정치는 1만4501㏊로 늘었다. 이는 지난 2000년 4월 동해안 산불(2만3794㏊), 2022년 3월 울진·삼척 산불(1만6302㏊)의 산불 피해 구역에 이어 역대 3번째로 큰 피해 규모다. 이번 불로 주민 2816명이 대피했고, 주택 26채 등 건물 101곳이 피해를 보았다. 다행히 큰 인명 피해는 없지만, 40대 진화대원 1명이 구토 등 증세를 보여 치료를 받았다.

이날 오후 안동시 운흥동 안동체육관에는 의성에서 번져 온 산불을 피해 대피한 주민들로 북적였다. 길안면 백자리 주민 김수연(88)씨는 “내 여태 살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연신 아픈 다리를 두드렸다.

25일 오전 경북 의성군 산불이 번진 안동시 길안면 백자리 주민 서무장·추신애 부부가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주성미 기자

김씨를 포함한 백자리 주민들은 이번이 벌써 두 번째 대피다. 의성 산불이 마을로 번질 수도 있다는 소식에 지난 23일 밤부터 마을회관과 길안초등학교 등으로 한 차례 대피했다. 다음날 사정이 나아졌다는 소식에 집으로 돌아갔지만, 이내 다시 대피명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집에 누워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다리가 아픈 나를) 경찰 둘이 와서 나를 양쪽에서 들고 대피시키더라.”

같은 마을에 사는 김잎분(64)씨는 “처음에는 정신이 없이 나오느라 당뇨약을 챙기지 못했다. 두 번째는 점심 먹으려고 하는데 또 대피해야 한다고 해서 뛰쳐나왔다. 한참 나오다 보니 또 약을 챙기지 않았더라”며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소방당국이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에 있는 조선시대 누각 ‘만휴정’에서 방수 작업을 하고 있다. 경북소방본부 제공

당국은 길안면 묵계리에 있는 조선시대 누각 ‘만휴정’도 불길이 번질까 봐 긴장하고 있다. 드라마 ‘미스터선샤인’ 촬영지로 유명해진 만휴정은 국가지정문화유산 명승 제82호로 지정돼있다. 산림당국이 물을 뿌리고 방염포를 씌우는 등 대비하고 있다. 또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본사인 의성군 단사면 고운사에도 25일 대피명령이 내려져 스님들이 모두 대피했다. 고운사에는 보물인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25일 아침 경남 창녕군 창녕전문장례식장에서는 지난 22일 경남 산청군에서 발생한 산불을 끄기 위해 지원을 갔다가 불길에 갇혀 목숨을 잃은 창녕군 소속 녹지직 강아무개(32)씨와 산불진화대원 이아무개(64)·황아무개(63)·공아무개(60)씨 등 4명의 발인이 차례로 이어졌다.

오른쪽 가르마를 타서 왼쪽으로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넘기고,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청년 강씨가 ‘프사’ 속에서 살포시 웃고 있었다. 2021년 경남 창녕군 공무원으로 임용될 때 찍은 사진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 사진 앞에서 “안돼. 안돼. 왜 우리 아들을 데려가?”라며 목놓아 울었다. 누나 역시 동생 이름을 부르며 울다가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누구도 이 사진이 영정으로 사용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경남 산청군 산불을 끄기 위해 지원을 갔다가 목숨을 잃은 창녕군 공무원과 산불진화대원 등 희생자 4명의 합동분향소. 합동분향소는 27일까지 운영된다. 최상원 기자

장례식장에서 이들의 마지막 길을 일일이 배웅한 성낙인 창녕군수는 “군정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당장은 산불을 끄고 수습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본다. 이후 수사를 통해 안타까운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을 규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창녕군민체육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는 25일 낮 12시 현재까지 1800여명이 다녀갔다.

한편, 지난 22일 오후 3시30분께 발생한 산청 산불은 25일 오후 현재까지 나흘째 이어지고 있다. 25일 오후 3시 현재 산불영향구역은 1572㏊, 진화율은 90%를 기록하고 있다.

25일 주불 진화를 목표로 했던 울산 울주군 온양읍 산불은 정오 기준 진화율 92%를 보이고 있다. 산불영향구역 465㏊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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