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현의 검찰을 묻다] 18회
‘절차적 정의’는 왜 권력자에게만 바쳐지나
시민 권리·인권 보호 위한 법치주의의 일부 적법절차
절차적 정의를 처벌 피할 틈으로 악용하는 법기술자
‘절차적 정의’는 왜 권력자에게만 바쳐지나
시민 권리·인권 보호 위한 법치주의의 일부 적법절차
절차적 정의를 처벌 피할 틈으로 악용하는 법기술자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오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돼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며 주먹을 쥐고 있다(왼쪽). 김영원 기자 [email protected] 오른쪽은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연합뉴스
내란이라는 중죄 중의 중죄를 저지른 대통령 윤석열이 구속·기소 과정의 ‘절차상 이유’로 석방됐습니다. 또 탄핵심판 과정에서도 절차상 문제를 줄기차게 제기했습니다. 12·3 비상계엄은 내용상 파면 선고를 피할 수 없는 명백한 위헌·위법인 만큼 탄핵 인용에 딴죽을 걸 핑곗거리는 ‘절차상 이유’밖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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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헌정 파괴라는 너무도 심각한 위헌·위법 사태가 벌어졌는데 그 수괴가 ‘절차상 이유’로 구속을 면하는 모습에 많은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탄핵심판에서 ‘절차상 이유’를 들어 각하를 주장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한마디로, 절차라는 ‘형식적 문제’가 헌정 파괴범 처벌이라는 중차대한 ‘내용적·실체적 문제’를 덮어버려도 되느냐는 상식적 의문입니다.
어린이 납치살해범이 제기한 절차 문제
적법절차, 즉 절차적 정의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절차적 정의가 유독 권력자, 그것도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권력자들을 편드는 수단으로 주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또 이 같은 목적을 위해 과도하고 억지스럽게 이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만을 위한 법기술’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출국금지 사건입니다. 대통령 윤석열 구속취소와 여러 모로 유사합니다. 이 사건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실체적 정의와 절차적 정의의 관계를 생각해볼 수 있는 사례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열살 소녀를 납치한 범인을 경찰이 체포했습니다. 범인은 변호사를 선임했지만 경찰은 변호사가 없을 때 범인에게 소녀가 있는 곳을 캐물었습니다. 취조가 진행되는 동안 경찰 수색팀 200여명은 소녀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수색하고 있었습니다. 범인은 결국 소녀를 살해했다고 자백하고 주검을 놓아둔 장소를 털어놨습니다. 수색팀으로부터 2마일가량 떨어진 도랑이었습니다. 범인의 자백 직후 경찰은 수색을 중단하고 범인을 앞장세워 주검을 찾아냈습니다. 이후 기소된 범인은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변호사 입회 없이 불법적인 취조로 얻어낸 자백은 무효이며, 따라서 그 자백의 결과로 발견한 소녀의 주검은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적법절차 위반, 즉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침해된 것은 분명합니다. 이에 따라 범인의 자백과 소녀의 주검을 증거로 사용할 수 없게 되면 납치살해범을 풀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이 사례는 1984년에 나온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닉스 대 윌리엄스)입니다. 연방대법원은 새로운 법원칙을 세움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적법절차 위반(변호사 없는 취조)이 없었더라도 다른 합법적 수단(경찰 수색팀의 자체 수색)으로 증거(소녀의 주검)를 발견했을 가능성이 높다면, 이 증거는 합법적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런 경우까지 적법절차 위반을 이유로 증거 사용을 금지한다면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이를 ‘불가피한 발견 원칙’(inevitable discovery rule)이라고 부릅니다. 실체적 정의와 절차적 정의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자 한 대표적 판결입니다.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범인이 적법절차라는 틈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법적 안전망을 만든 것”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한겨레 자료
윤석열 구속취소와 ‘판박이’, 김학의 출국금지 사건
이제 김학의 전 차관 출국금지 사건을 보겠습니다. 그 유명한 ‘별장 성접대’와 뇌물수수 혐의로 재수사를 앞두고 있던 김 전 차관이 2019년 3월 심야에 인천공항에 나타났습니다. 누가 봐도 임박한 수사를 피해 해외로 도피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이규원 검사(현 조국혁신당 대변인)와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현 조국혁신당 의원) 등이 급히 움직여 김 전 차관을 긴급출국금지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2021년 1월 난데없이 해당 긴급출국금지가 절차상 불법이었다며 대대적 수사를 벌여 이 검사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검찰이 불법이라고 주장한 대목은 ①긴급출국금지를 하려면 범죄 혐의가 상당한 수준으로 인정돼야 하는데 당시는 수사가 미처 시작되기도 전이므로 상당한 범죄 혐의를 확인하기 전이었다는 점, ②이규원 검사가 상부 승인 없이 지검장 명의로 긴급출국금지 승인요청서를 작성했다는 점 등이었습니다. 검찰 주장대로면 범죄자가 해외로 도망가는 것을 알고도 멀뚱히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1심 재판에서 법원은 긴급출국금지가 요건을 일부 충족시키지 못해 위법한 것은 사실이지만 “재수사가 임박한 상황에서 출국 시도를 저지한 것은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며 직권남용이 아니라고 판결했습니다. 절차적 정의와 실체적 정의를 비교해 후자의 무게가 훨씬 무겁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위에 소개한 미국 사례와 일맥상통하는 지적을 했습니다. 김 전 차관의 도피를 막기 위해 긴급출국금지가 아닌 일반출국금지를 선택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일반출국금지는 요건이 훨씬 간단하기 때문에 ①과 ② 같은 논란이 벌어질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절차적 위반(긴급출국금지)이 없었더라도 다른 합법적 수단(일반출국금지)으로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만큼 이때의 절차적 위반을 절대시하면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게 법원 판단이었습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지난해 11월 나온 2심 법원의 판결은 더욱 선명합니다. 법원은 ①의 쟁점과 관련해 이규원 검사가 검찰과거사진상조사단 조사 활동을 통해 김 전 차관의 혐의가 상당한 수준이라고 파악하고 있었고 ②의 쟁점과 관련해서도 당시 긴박한 소통 과정에서 상부의 승인이 있었다고 인식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고 결론냈습니다. 긴급출국금지 자체에도 아무런 절차적 위법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검찰이 말도 되지 않는 절차 문제로 몽니를 부린 셈이 됐습니다. 검찰은 ‘검찰의 치부’인 김 전 차관이 해외도피라도 해서 잊히기를 원했던 것일까요. 검찰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김 전 차관의 해외도피를 막았던 이들을 도리어 보복하려 했습니다. 이럴 때 들고온 게 절차 문제였습니다. 그것도 완전히 왜곡한 채로 말입니다.
심우정 검찰총장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email protected]
숭고한 ‘적법절차’를 하찮은 ‘법기술’로 오염시킨 판검사
똑같은 패턴이 대통령 윤석열 구속취소에서 반복됐습니다. 헌정질서를 파괴한 내란 우두머리를 절차상 이유로 풀어줬습니다. 그 절차상 이유라는 것들도 하나같이 왜곡돼 있습니다. 일반 시민들에게 적용되던 것과 전혀 다른 절차적 기준을 만들어내 유독 대통령 윤석열에게만 적용했습니다. 심지어 현행법과도 어긋나는 기준입니다(여기에 대해서는 17회 ‘검찰은 윤석열이다, 둘은 민주공화국의 적이다’와 논썰 ‘윤석열 석방 이중트릭…쉽게 설명해 드립니다’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설령 기존의 절차상 기준에 비춰 문제가 있더라도 실체적 정의를 지킬 수 있는 새로운 방도를 찾아 문제를 해결해야 맞습니다. 헌정파괴 내란이라는 사안의 무게가 그만큼 무겁습니다. 그런데 법원과 검찰은 정반대로 기존의 절차상 기준을 바꿔가며 내란범을 석방함으로써 실체적 정의를 완전히 저버렸습니다.
범죄를 처벌하는 형사사법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는 실체적 진실 규명을 통해 국가의 형벌권을 실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국가가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억울한 사람을 처벌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적법절차를 둡니다. 이 두가지 가치는 때로 모순됩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그 적절한 조화를 찾아가는 게 법과 법관, 검사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김학의 전 차관 출국금지 사건과 대통령 윤석열 구속취소에서 보듯 권력자가 관련된 사건에서 유독 절차 문제가 강조되며 실체적 정의의 요구마저 덮어버리는 일이 벌어집니다. 일반 사건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던 절차적 주장이 갑자기 중심 이슈로 떠오릅니다. ‘적법절차’라는 숭고한 가치가 ‘법기술’과 동의어가 돼버릴 지경입니다. 이는 절차적 정의를 희화함으로써 적법절차가 올바로 형성·발전돼 나가는 데도 부정적 해악을 끼치는 일입니다. 구속취소 결정을 내린 지귀연 부장판사나 이에 대해 즉시항고를 하지 않은 심우정 검찰총장은 겉으로는 적법절차를 중시하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적법절차를 욕보인 셈입니다.
용납 못 할 ‘법치의 자살’
대통령 윤석열 쪽은 탄핵심판 과정에서도 여러가지 절차적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①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조사 없이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점 ②국회가 탄핵소추 사유에서 내란죄 부분을 철회한 점 ③헌재가 검찰 수사기록을 받아 증거로 채택한 점 등이 위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①과 ③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 이미 전례가 있는 일입니다. ②의 경우 탄핵소추 사유를 추가했다면 모를까 덜어낸 것이 대통령 윤석열 쪽에 불이익이 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
헌법재판소가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심판을 선고한 24일 오전 헌법재판관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앉아 있다. 김혜윤 기자 [email protected]
헌재는 박 전 대통령 탄핵 결정문에서 탄핵심판이 형사절차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탄핵소추 절차는 국회와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 사이의 문제이고,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에 따라 사인으로서 대통령 개인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기관이 국민에 대하여 공권력을 행사할 때 준수하여야 하는 법원칙으로 형성된 적법절차의 원칙을 국가기관에 대하여 헌법을 수호하고자 하는 탄핵소추 절차에 직접 적용할 수 없다.” 탄핵심판에서는 실체적 정의와 절차적 정의 사이의 저울질에서 전자의 무게가 더 크다는 말입니다.
헌법은 통치자가 왕이나 독재자처럼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틀입니다. 법치주의는 이런 권력자의 횡포로부터 시민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적법절차도 그 일부입니다. 그런데 대통령 윤석열은 비상계엄으로 헌법의 틀을 부숴버렸고 시민들을 함부로 처단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계엄 실패 뒤에는 체포영장 집행이라는 적법절차에 물리력으로 저항했습니다. 이런 법치 파괴범이 법치라는 이름을 빌린 법기술로 처벌을 회피하도록 놓아둔다면 이는 ‘법치의 자살’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박용현의 ‘검찰을 묻다’는?
검찰공화국을 사는 요즘 시민들에게 검찰에 대한 상식은 교양필수가 됐습니다. 무겁지 않게 검찰에 대한 질문을 하나씩 던지고 독자 여러분과 생각을 나누겠습니다. 격주 화요일 낮 12시에 새로운 글이 올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