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시작된 산청 산불로 외공마을의 한 단독 주택이 모조리 불에 탔다. 집 주인 하문구(65)씨는 "샌드위치 패널로 만들어져 다 탄 것 같다"고 했다. 박종서 기자
지난 21일 오후 시작된 경남 산청군 산불이 나흘째 이어지고 있다. 강풍을 타고 온 불씨는 이튿날 오후 1시30분쯤 시천면 외공마을을 덮쳤다. 이후 4시간 동안 주택 등 건축물 10동을 완전히 태웠다.
24일 오전 찾은 외공마을에선 초입부터 탄 냄새가 진동했다. 불에 탄 집들은 지붕이 주저앉아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고, 자재들이 땅에 널려있었다. 대나무들이 불에 탄 채 쓰러져 일부 통행로가 막혔다.
외공마을에서 보살집을 운영하는 정모(80·여)씨의 집은 화마를 피했다. 한때 집 뒤편 잔디밭 50cm까지 불이 붙었다고 한다. 박종서 기자
외공마을 정모씨의 집 화단에 놓인 돌탑이 불에 타 까맣게 변해있다. 오소영 기자
하지만 마을에 사는 30여 가구 중 절반가량은 화마(火魔)를 비껴갔다. 특히 정모(80·여)씨가 살던 15평 남짓의 빨간색 벽돌집은 그을린 흔적도 찾기 어려웠다. 정씨가 운영하는 점집이기도 한 이 건물 뒤편에선 한때 50㎝ 높이까지 불길이 타올랐다고 한다. 마당에 쌓인 돌탑 두 개가 검게 변했고, 잔디밭도 부분부분 타 있었다.
반면 샌드위치 패널 등으로 지은 하문구(65)씨의 집은 잿더미가 됐다. 외벽을 둘러싼 나무 자재가 숯처럼 떨어졌고, 천장을 덮고 있던 철판은 종잇장같이 구겨졌다. 하씨는 “우리 집은 모조리 다 탔는데 정씨 집은 안 탔다”며 “(정씨 집이) 벽돌집이라 끄떡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앙일보가 살펴본 전소한 건축물 10동 모두 경량철골이나 나무가 사용됐다. 반면 벽돌 등이 주자재인 건물은 비교적 형태를 유지했다.
외공마을의 한 주택은 지붕이 통째로 없어지고 나무기둥이 타서 쓰러졌다. 오소영 기자
신재민 기자
전문가들은 건축물에 사용된 자재가 산불 피해 규모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짚었다. 경량철골 등을 사용한 건축물이 콘크리트나 벽돌로 지은 건축물보다 화재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경량철골 등은 고온에서 강도가 약해져 변형 및 붕괴 위험이 크지만, 콘크리트·벽돌은 불연(불에 타지 않는 성질) 재료다.
안홍섭 군산대 건축공학부 명예교수는 “경량철골 건축물은 한번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타서 보통 전소한다”고 말했다. 안형준 전 건국대 건축공학과 학장은 “샌드위치 패널과 슬레이트 등은 가소성 물질로 산불 위험 지역에선 교체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깨비불처럼 불씨를 옮겨 새로운 불을 일으키는 ‘비화(飛火) 현상’도 화재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됐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산불이 나면 불씨가 상승기류와 바람의 조합으로 1~2㎞까지 날아간다”며 “마을에 산불이 덮쳤을 때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화재 피해가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산불로부터 집을 지키기 위해 안팎의 위험요소를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붕과 벽을 불연 재료로 교체하고 콘크리트 담과 같은 방화벽을 설치하는 것이 안전 확보에 도움이 된다. 또한 비닐하우스나 목조 가건물은 주택과 최소 10m 이상 떨어뜨려 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