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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 반발 부른 필수의료 배상 판결
해당 병원 보험 가입, 의사는 책임 안 져
전체 의료기관 30%가량 미가입 상태
정부 "보험·공제 가입 의무화 추진" 밝혀
게티이미지뱅크


여성 A(30)씨는 2017년 10월 6일 새벽 광주 광산구 한 건물 화장실에서 연인 사이었던 B씨와 말다툼을 하다, B씨가 밀쳐 화장실에 있던 스테인리스 소재 수건걸이에 머리를 세게 부딪혔다. 피해 직후 직접 112에 "남자친구가 때렸다"고 신고 전화를 걸었고, 지역 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러나 뇌 혈종 제거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실에 들어간 후 숨졌다.

유족은 병원에서 수술 동의서를 쓸 때만 해도 의식이 명료했던 A씨가 수술부위가 아닌 다른 부위 관통상을 입고 숨져야 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뇌 혈종 제거 수술의 성공률은 99%(판결문 설명 기준)에 이른다. 부검 결과 A씨 사인은 왼쪽 쇄골 밑 동맥 관통상으로 밝혀졌다. A씨의 언니와 부모 등 유족은 B씨와 1년 차 전공의 C씨, 병원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시작했다.

1심에 이어 최근 항소심도 의사, 병원, 교제폭력 가해자가 공동으로 거액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의사계가 들끓었다. "데이트 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를 살리려던 의사를 동일선상에 뒀다" "이러니 누가 필수의료를 하려고 하겠느냐"고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한국일보 취재 결과,
해당 병원은 민간 책임보험에 가입해 있고, 담당 전공의가 배상을 하지는 않는 것으로 확인
됐다. 유족 측 입장에선 합당한 배상이 필요한 만큼, 무조건적인 의사 면책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보험 가입 의무화로 환자와 의사 모두 위험을 분산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
이다. 한국은 전체
병・의원의 30% 이상이 전혀 배상보험・공제에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픽= 강준구 기자


필수의료 사고 배상 판결, 의사는 반발하지만



이 판결이 알려지자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입장문을 내고 "의료 소송 판례들을 살펴볼 때 중증·응급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최전선에 있던 전공의들은 높은 의료사고 위험을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고 비난했고, 대한응급의학회도 "이번 판결로 응급의료 수행이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A씨 측 변호를 맡고 있는 법률 대리인은 "(수술 과정에서 발생한 합병증 등이 아닌)
명백한 의료과오라 의사단체의 지적에 당황
스럽다"고 했다.

실제 1심부터 과실에 의한 의료사고가 인정됐다. 광주지법은 2022년 10월 28일 "일반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주위 동맥을 건드리는 가능성은 적지 않지만, 1~2㎜ 크기로 관통돼 다량의 출혈이 발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밝혔다. 수술 전 마취를 담당했던 전공의가 오른쪽 목 안쪽에 있는 속목에 중심정맥관삽입술을 하던 중 시술 기구 중 하나로 쇄골 아래 동맥에 관통상을 냈고, A씨가 대량 출혈로 숨졌다는 것이다.

항소심을 맡은 광주고법은 지난달 25일, 책임 비율을 1심(60%)보다 높은 70%로 보고 피고들이 공동으로 손해배상금 약 4억4,000만 원과 지연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해당 병원 관계자는 "
민간보험사 책임보험에 가입해 손해배상금은 담당 의사가 아닌 병원이 부담할 것"이라며 "B씨와의 배상 비율 등은 상고 결과 등 추후 재판 결과를 따져봐야 한다"
고 말했다. B씨는 2018년 11월 22일 폭행치상 혐의로 징역 4개월, 집행유예 1년형을 받았다.

정부, 보험 가입 의무화 추진



필수의료 사고를 완전히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사건도 C씨가 속목정맥을 찾지 못하자 2년 차 전공의가 대신 찾고 그 이후에 C씨가 삽입시술을 하다가 사고가 났다. 선배가 후배를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다.

이런 필수의료 종사자의 부담을 덜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모든 의료기관 개설자의 책임보험 가입 의무화를 추진하고, 필수의료 특별배상 등 공적 기능이 강화된 보험상품 등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민간 의료배상 책임보험에 병·의원급 30∼40%(이하 기관수 기준)가 가입돼 있고, 의협이 운영하는 의료배상공제 조합에는

전체 의원의 약 33%, 전체 병원의 약 34.8%가 가입해 있다. 최소한 나머지 30%가량의 의료기관은 공제·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이다.

보험 등이 활성화되지 않은 이유는 보험료 등에 비해 보상한도가 낮기 때문이다. 의료사고 책임보험 손해율(보험회사가 받은 보험료 가운데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에게 지급한 보험금의 비율)은 2021년 57.3%에서 2023년 45.1%로 떨어졌다.

복지부는 "모든 의료기관 개설자가 의료사고 보험‧공제에 가입하게 되면 규모의 경제에 따라 보험‧공제료 부담은 대폭 줄어들게 된다"며 필수의료 분야 중심 보험료 지원 등 정부 책임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영국·스웨덴 등 주요 선진국들은 의료배상 책임보험·공제 가입을 의무화하고 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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