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탄핵 소추 기각으로 24일 직무에 복귀한 한덕수 국무총리가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해 국무위원들과 오찬 간담회를 하기 위해 대회의실에 들어서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헌법재판소는 24일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을 기각하면서 비상계엄의 위헌ㆍ위법성이나 선포 절차와 관련한 판단을 하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선고를 앞두고 이 내용에 대한 결론을 보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사건에서도 주요하게 다뤄지는 ‘비상계엄’에 대한 재판관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지만 어긋났다.
한 총리 탄핵사건에서 가장 관심이 쏠렸던 대목은 소추 사유 중 ‘비상계엄 전 위헌‧위법한 국무회의 소집’에 대한 헌재의 판단이었다. ▶비상계엄 자체의 위법 여부 ▶비상계엄 국무회의의 위법 여부 ▶이에 대한 한 총리의 개입 여부 등을 순차적으로 판단하면서, 결국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사건에서도 주요하게 다뤄지는 ‘비상계엄’에 대한 재판관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을 거란 기대에서다. 그러나 헌재가 비상계엄 자체, 내지는 국무회의 자체의 위법성에 대한 판단을 모두 피한 채 ‘한 총리의 개입 여부’만 따져본 뒤 결론을 내리면서, ‘대통령 탄핵 사건의 예고편’으로 간주해 윤 대통령 사건의 결론을 가늠해보긴 사실상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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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추사유보다 더 짧은 16줄 판단
비상계엄 선포 과정에 대한 탄핵소추 사유는 결정문에 19줄 분량이 적혔는데, 헌재가 이에 대한 판단을 적은 건 그보다 더 적은 16줄에 불과하다. 비상계엄 자체가 위법했든 위법하지 않든, 국무회의가 위법했든 위법하지 않든 헌재는 그와 무관하게 한 총리가 ‘적극적으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보고 판단을 끝냈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비상계엄 선포 두 시간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획을 듣게 되었을 뿐, 그 전부터 이를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며 “국무회의를 소집하자고 건의한 것은 맞지만,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하거나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등 적극적 행위를 했다는 증거가 없다”면서 한 총리가 회의를 소집한 것은 맞지만 그에 어떤 의도가 있었다는 소추사유의 사실관계부터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로부터 더 나아간 쟁점들에 대해선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한 총리 스스로도 다투지 않은 ‘국무회의 자체의 적법성’조차 판단하지 않았다.
이를 놓고 헌재가 소추사유 중 가장 첫 단계의 사실관계만 따져본 뒤 최소한의 범주만 판단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한 헌법연구관 출신 변호사는 “워낙에 외부의 관심이 큰 사안이다 보니 문구 하나도 조심하고, 사건 해결에 필요한 내용만 간결하게 쓴 느낌이 든다”며 “혹은 모든 에너지를 대통령 사건에 집중하느라 더 확장적인 내용을 정확하게 쓰기가 무리였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해석은 엇갈린다. 우선은 “사실관계가 겹치는 대통령 사건에 대한 예단 내지는 논란을 피하기 위함”(한 헌법학 교수)이라는 추측이 가장 다수다. 김대환 서울시립대 로스쿨 교수는 "그 판단을 담든 안 담든 결론이 같다고 판단했을 것이고, 굳이 더 자세한 내용을 써서 예단을 주고 엄청난 압박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한 총리가) 비상계엄의 정당화를 위해 아무런 적극적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헌재가 기각 사유를 제시한 건 반대로 보면 한 총리가 계엄을 위한 정식 국무회의를 소집하는 등의 행위를 했을 경우 탄핵 근거가 되는 걸 함의한다는 해석도 있다. 헌재가 계엄 자체를 불법으로 전제했다는 해석이다.
반면 주요 쟁점인 ‘비상계엄 자체의 위법성’ 및 ‘국무회의의 위법성’에 대해선 아예 의견 근접도 못했거나, 사실관계부터 이견이 있을 거란 예측도 있다. 승이도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사실상 판단을 않고도 한 총리 사건은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일찍 선고를 낸 것이고, 핵심 쟁점에서 이견이 있기 때문에 윤 대통령 사건 선고가 늦춰지고 있던 것이란 예상을 더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며 “의견이 합치되지 않은 부분 판단을 굳이 적으면서 재판관마다 다른 이야기를 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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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관 8명 중 6명 “권한대행 의결정족수, 151석”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위원간담회에 참석하며 최상목 부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헌재는 최초로 “대통령 권한대행인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 소추 의결정족수는 본래 직을 기준으로 한 ‘재적 과반’으로 봐야 하며, 따라서 “국회 재적의원 과반(151석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된 탄핵소추는 적법하다”는 판단도 내놨다. 한 총리 측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탄핵하려면 대통령과 같이 재적 의석 2/3 이상(200석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며, 192석의 동의로 가결된 탄핵소추가 부적법하다고 주장했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재판관 6명은 “국무총리는 직접 선출되지 않아 민주적 정당성이 대통령보다 적고, ‘대통령 권한대행’은 별도의 공직이 아니라 정부조직법이 정한 순서대로 권한을 행사하는 것뿐이므로 본래 지위에 따라 의결정족수를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정형식‧조한창 두 재판관은 A4용지 3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 의결정족수는 대통령과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각하 의견을 썼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궐위‧사고 등 비상상황에서 국가 기능 마비를 막기 위해 직무를 수행하니, ‘대통령에 준하는 지위’로 봐야하며 대통령과 다르게 판단할 이유가 없다는 취지다. 또 이들은 “국무총리일 때의 일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한 직무집행이 탄핵소추사유에 함께 섞여 있다”며 “탄핵소추안 가결 여부는 재적 3분의 2 이상 찬성을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본래 직책을 기준으로만 탄핵소추 요건을 적용한다면, 현행 헌법‧법률상 차관은 탄핵 대상이 되지 않아 만약 차관이 장관 대행을 하다 헌법‧법률 위반을 하더라도 탄핵소추를 할 수 없게 된다”는 주장도 폈다. 그러면서 “본래 직위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는 국무위원들을 대상으로 연속적인 탄핵소추가 가능하게 되고 극단적으로는 국정 마비의 가능성이 우려된다”며 “우리 헌법이 이런 상황까지 허용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