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담화를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한덕수가 돌아왔다. 직무정지 87일 만이다. 헌법재판소가 24일 탄핵심판을 기각하면서 한 총리는 다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다.
그가 빠진 사이 한국은 정상외교가 실종됐다. 특히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십자포화에 사실상 속수무책이었다. 대행의 대행을 맡아온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급이 달라 애초에 감당할 몫이 아니었다. 반면 '미국통'인 한 대행은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이로써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들어 밀어붙인 9번의 탄핵심판이 모두 틀어졌다. 무리한 '줄탄핵' 공세라는 점이 재차 입증됐다. 수권정당의 면모와 동떨어진 대목이다. 다만 한 대행도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다 탄핵을 자초한 측면이 있는 만큼 윤석열 대통령 탄핵정국의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 대행의 복귀 첫 일성은 '통상'이었다. 대국민담화에서 “이미 현실로 닥쳐온 통상전쟁에서 국익을 확보하는 데 저의 모든 지혜와 역량을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청사로 출근하는 과정에서 “우선 급한 일부터 추슬러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 대행이 없던 석 달 사이 트럼프 정부는 상당한 관세를 부과하는 국가인 '더티(Dirty·지저분한) 15'에 한국을 포함시켰다. 내달 2일 국가별로 상호 관세율을 발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에 한미 정상급의 소통과 대화가 절실해졌다. 하지만 최 대행은 부총리 또는 장관급에 불과해 트럼프 정부를 맞상대할 수 없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율이 한국이 미국보다 4배 높다’고 고집을 피우며 압박수위를 높였지만, 정부의 대응은 정상 간 채널이 아닌 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오류를 정정하는 수준에 그쳤다. 여권 관계자는 “비상시국으로 대응해온 정부를 넘어 한 대행의 복귀를 계기로 민간, 재계와 전방위로 협력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고 기대했다.
한 대행의 복귀에서 드러나듯, 민주당의 탄핵 남발은 제동을 걸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민주당은 윤 정부 출범 이후 30건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13건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이번 한 대행을 포함해 헌재가 결정을 내린 탄핵안 9건 모두 기각됐다. 심지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온 최 부총리의 탄핵안까지 발의된 상태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공방만 주고받았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재명 세력'의 입법 권력을 동원한 내란 음모에 헌법의 철퇴가 가해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반면,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헌재가 한 대행의 탄핵을 기각한 것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다만 탄핵 사유에 담긴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보류 문제는 짚어봐야 할 부분이다. 만약 한 대행이 계속 고집을 피우고 버텼다면 헌재의 재판관이 6명에 불과해 윤 대통령 탄핵심판 절차가 가동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날 헌재에서 유일하게 탄핵 인용 의견을 낸 정계선 재판관은 “임명 의무를 방기해 헌법과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