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플렉스콘 홍콩’ 콘서트 현장
신곡 ‘피트 스톱’ 가사에서 변화 보여
사뭇 성숙해진 ‘헤메코’도 눈길
어도어 “일방적 활동 중단 안타까워”
신곡 ‘피트 스톱’ 가사에서 변화 보여
사뭇 성숙해진 ‘헤메코’도 눈길
어도어 “일방적 활동 중단 안타까워”
뉴진스가 23일 밤 홍콩 레이더우구 아시아월드 엑스포에서 열린 ‘컴플렉스콘 홍콩’ 공연에서 신곡 ‘피트 스톱’ 무대를 펼치고 있다. 홍콩/이정국 기자
‘성인 그룹으로의 변신과 미래를 위한 잠시 멈춤.’
23일 밤 홍콩 레이더우구 아시아월드 엑스포에서 열린 뉴진스의 ‘컴플렉스콘 홍콩’ 공연은 1시간 동안 6곡을 부른 짧은 이벤트였지만, 팀 색깔의 변화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이 자리에서 뉴진스는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잠정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최대 수용인원 1만4000명의 아레나급 공연장은 스탠딩석은 물론 스크린과 바로 맞닿은 시야제한석까지 뉴진스를 보러 온 버니즈(팬덤명)로 가득 찼다. 공연 시작 전부터 관객들은 텅 빈 무대를 향해 “엔제이지”(NJZ·멤버들이 새로 내건 팀명)를 연호했다. 객석을 가득 채운 빙키봉(응원봉)이 형형색색 수 놓았다.
이번 공연은 복합문화 축제 ‘컴플렉스콘 홍콩’ 행사 가운데 하나로, 여러 음악인들이 21~23일 공연을 펼쳤다. 뉴진스의 출연이 확정되자마자 23일 표는 바로 매진됐다. 축제 마지막 날인 이날, 홍콩 여성 싱어송라이터 제이스, 일본 힙합 뮤지션 옐로벅스 등이 뉴진스에 앞서 공연을 펼쳤다. 네번째 출연자로 피날레를 장식하는 뉴진스가 등장하는 순간 “엔제이지”를 외치는 관객들 함성으로 귀가 멍멍해졌다. 지난 21일 서울지방법원이 ‘어도어의 허락 없이 엔제이지라는 이름의 독자 활동이 불가하다’는 내용의 가처분 인용 결정을 내렸지만, 이날 관객들에게 뉴진스는 ‘엔제이지’였다.
뉴진스가 23일 밤 홍콩 레이더우구 아시아월드 엑스포에서 열린 ‘컴플렉스콘 홍콩’ 공연에서 신곡 ‘피트 스톱’ 무대를 펼치고 있다. 홍콩/이정국 기자
공연은 각 멤버들의 솔로 무대로 꾸려졌다. 다니엘은 199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미국 걸그룹 티엘시(TLC)의 히트곡 ‘노 스크럽스’로 오프닝을 열었다. 기존 뉴진스와는 다름이 느껴졌다. 2022년 데뷔한 뉴진스는 레트로 감성의 편안한 이웃집 10대 소녀의 감성을 내세웠다. 데뷔 때는 멤버 전원이 검은 생머리였다. 하지만 이번 공연에선 사뭇 성숙해진 ‘헤메코’(헤어∙메이크업∙코디)였다. 다니엘뿐만이 아니었다. 뒤이어 나온 민지도 옅은 붉은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짧은 반바지를 입었다. 민지는 미국 여성 싱어송라이터 업살의 ‘스마일 포 더 카메라’를 무대를 휘저으며 로커처럼 불렀다. 올해 성인이 된 해린은 미국 밴드 디 인터넷의 ‘돈차’를 부르며 고등학생 이미지를 벗어 던졌다. 노래를 부른 뒤 해린은 “좋은 노래를 좋은 사람과 나누는 건 즐거운 일”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팀 내 유일한 미성년자인 혜인도 모피를 입는 등 성숙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미국 걸그룹 에스더블유브이(SWV)의 진득한 알앤비(R&b) 곡 ‘유즈 유어 하트’를 부른 혜인은 “여러분들을 보고 오랜만에 보여드릴 수 있는 모든 걸 보여드릴 수 있어서 속이 후련하기도 하지만, 뭔가 다양한 감정이 든다”고 복잡한 심경을 말했다. 혜인의 말을 떠나, 법원의 활동 금지 등 가처분 인용이 준 여파가 공연 내내 어른거렸다. 멤버들은 무대 중간 말을 하다가 감정이 북받치는 듯한 표정을 자주 지었다. 그때마다 팬들은 “엔제이지”를 외쳤다.
뉴진스가 23일 밤 홍콩 레이더우구 아시아월드 엑스포에서 열린 ‘컴플렉스콘 홍콩’ 공연에서 얘기하고 있다. 홍콩/이정국 기자
지난해 일본 도쿄돔에서 ‘푸른 산호초’를 불러 화제가 됐던 하니는 이번엔 고스트 타운 디제이스가 1996년 발표한 마이애비 베이스 사운드의 경쾌한 댄스곡 ‘마이 부’를 댄서들과 함께 춤추며 불렀다. ‘푸른 산호초’ 무대의 아련한 소녀가 아닌, 씩씩한 20대 청년의 모습이었다.
개별 무대에 이어, 최초 공개하는 신곡 ‘피트 스톱’도 뉴진스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피트 스톱’은 자동차 경주에서 정비 등을 위해 차량을 잠시 멈추는 것을 말한다. 공연장에서 들은 ‘피트 스톱’은 자동차가 질주하듯 빠르고 강렬한 비트와, 몽환적이면서도 귀에 쏙 박히는 멜로디가 잘 어우러지는 노래였다. ‘이지 리스닝’으로 대변되던 기존 노래보다 묵직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강했다. 음악적 변화를 꾀한 것이다. 퍼포먼스도 절도 있고 조금은 관능적인 댄스로 구성했다.
지난 2월 뉴진스는 엔제이지라는 새 팀명을 공개하고, 신곡을 컴플렉스콘 홍콩에서 발표한다고 밝혔다. 그 이전부터 10대 소녀 콘셉트를 벗어던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잠깐 잠시만 리셋 널리 퍼져가기 위해” “아무리 돌려도 색깔은 파란 바지”라는 노랫말은 그룹이 처한 상황을 말해주는 듯했다. 이날 공연에서 첫선을 보였지만, 어도와의 끝나지 않은 분쟁 상황에서 이 곡의 음원이 공식 발매될지는 미지수다.
뉴진스가 23일 밤 홍콩 레이더우구 아시아월드 엑스포에서 열린 ‘컴플렉스콘 홍콩’ 공연에서 인사하고 있다. 홍콩/이정국 기자
민지는 공연 말미에 “법원 결정을 존중하며 당분간 한걸음 물러나서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고 마음을 다잡는 시간을 가진 뒤 다시 힘내서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며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걸 여러분들이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저희는 반드시 돌아온다”라고 말했다. 팬들은 “울지마” “괜찮아”를 외쳤다.
뉴진스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도어는 법원의 결정으로 뉴진스가 자신들 소속임을 확인받았다는 입장인데, 뉴진스는 활동을 멈추겠다고 선언한 것이라 또 다른 갈등이 예고된다. 예컨대, 어도어가 뉴진스의 콘서트나 새 앨범을 추진하려 해도 활동 중단을 선언한 멤버들이 따르지 않을 수 있다. 컴플렉스콘 홍콩 공연과 굿즈 판매 수익도 원칙적으론 소속사와 나눠야 하지만, 뉴진스 멤버들이 응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뉴진스는 이날 공연에서 ‘하이프 보이’ ‘디토’ 같은 기존 히트곡을 부르지 않았다. 뉴진스와 엔제이지라는 팀명 모두 사용하지 않고, 멤버 각자의 이름으로 인사했다. 어도어와 선을 그으려는 의지가 확연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날 공연 현장에 온 어도어 직원은 뉴진스와 접촉하려 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활동 중단 발표도 사전에 알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어도어는 공연 뒤 “법원 결정에도 불구하고 뉴진스 아닌 다른 이름으로 공연을 강행한 것과 일방적으로 활동 중단을 선언한 데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유효한 전속계약에 따라 뉴진스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빠른 시간 안에 아티스트와 만나 미래에 대해 논의를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다음달 7일부터 어도어가 제기한 전속계약 유효 확인 본안 소송이 진행된다. 뉴진스가 이번 가처분 결정에 대한 이의 신청을 한다고 이미 밝혔기 때문에 조만간 이에 대한 절차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일단 어도어 손을 들어줬지만, 뉴진스 사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