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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경북 의성군 점곡면 구암리에서 만난 김남순(72)씨가 불에 탄 창고 안 농기계들 가르키고 있다. 김규현 기자

“알뜰하게도 다 타뿟제. 인자 우에 살겠노.”

24일 오전 경북 의성군 점곡면 구암리에서 만난 김남순(72)씨가 불에 탄 창고 안 농기계들을 보며 망연자실했다. 지난 22일 안평면 괴산리 산61 일대에서 난 산불이 사흘째 이어지고 있다. 산 아래에 바로 붙은 김씨의 창고는 폐허가 됐다. 트럭, 트랙터, 경운기, 탈곡기, 벼 건조기 등이 시커멓게 타 뼈대만 남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불이 펄쩍펄쩍 뛰댕깄다 카이(뛰었다녔다니까). 기계 안에 쌀 여섯 가마니 있었는데 다 태아뿟제(태웠지). 당장 내일모레 트랙터 써야 하는데, 아무것도 몬한다(못한다).”

그는 불에 타 튀밥처럼 남은 쌀들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다. 잿더미 속에서는 아직 불씨가 덜 꺼져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내가 여 올라오면 눈물만 나서 자세히 보지도 몬했어. 다 융자 내서 산 기계들인데, 평생 농사지어서 갚아 놓으니 홀랑 다 타뿠어.”

평생 벼농사와 고추농사를 지어온 김씨는 올해 생계가 막막한 상황이다. 당장 올봄 농사를 짓기도 어렵다. 그는 “진짜 살길이 막막하다. 나라에서 안 살려주면 우리는 꼼짝도 못 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불에 탄 김남순(72)씨의 창고 모습. 김규현 기자

“저 봐라, 봐라. 불붙었던 게 맞제? 불이 여까지 온다 우야꼬.” 이날 낮 12시께 대피소가 차려진 의성읍 의성실내체육관 앞에서 의성읍 업1리에서 왔다는 구금옥(71)씨가 맞은편 산에서 나는 연기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구씨는 “여기가 안전하다고 대피해 왔는데, 코앞까지 불이 왔다. 아직 우리 동네는 피해가 없지만, 불이 자꾸 번지는 것 같아서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날 산림당국이 헬기 57대, 인력 2589명을 동원해 진화하는 와중에도 곳곳에서 불길이 다시 번졌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의성군은 오후 2시34분께 “현재 산속에 있는 진화대원분들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주시길 바란다”는 재난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24일 낮 의성군 의성읍 의성실내체육관 앞에서 주민들이 맞은편 산에서 난 불을 보며 걱정하고 있다. 김규현 기자

업1리 주민 50여명은 지난 22일 마을 이장의 대피명령을 듣고 곧장 이곳으로 와 사흘째 지내고 있다고 한다. 대피소 텐트 안에서 만난 주민 최선필(84)씨가 불이 나던 날을 떠올리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리 이장이 마이크 들고 쫓아댕기면서 빨리 대피하라고 난리를 쳤어. 우리 집에서 불덩거리가 막 구불러(굴러) 오는기 보이드라 카이.”

최씨는 “오늘 아침에 개밥 주러 집에 갔더니 집은 멀쩡해서 천만다행이다. 그런데 연기가 꽉 끼여서 바로 옆에 있는 사람도 알아보기 어려웠다. 소방관들이 불 끄는데 어려울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낮 12시 기준 산불영향구역은 7516㏊로, 축구장 1만528개 규모다. 불의 길이는 133.9㎞로 이 가운데 95.2㎞는 진화 완료해, 진화율은 71%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지만, 주택 77채 등 건물 116동이 피해를 보았다. 이번 불로 의성군에서는 1723명이 불을 피해 의성실내체육관 등으로 대피했고, 현재는 909명이 대피 중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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