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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가면 꼭 한 번 들려야 한다는 곳이 있습니다. 캐나다의 국민 카페라고 불리는 '팀 호튼스'입니다.

그런데 이 '팀 호튼스'가 캐나다인들 사이에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과연 여기에서 커피나 음식을 사 먹는 게 맞느냐는 겁니다. 바로 미국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뒤 틀어진 미국과 캐나다 사이의 관계 때문입니다.

'팀 호튼스'는 약 60년 전 캐나다 온타리오 출신의 하키 선수가 만든 작은 도넛 가게에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본사는 온타리오주에 있어 왔고, 캐나다 토론토 증권거래소에서 주식이 거래되고 있습니다. 전체 5천7백여 개 매장 가운데 4천 개가량이 캐나다에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캐나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되는 건 그 소유주 때문입니다. 브라질계 미국 투자 회사가 '팀 호튼스' 모회사 RBI(Restaurant Brands International)의 지분 32%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소비한 돈이 결국 미국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겁니다.

■ 트럼프 도발에 캐나다인들 '모욕·배신감'

캐나다인들이 소유주까지 따지며 미국에 이익이 되는 일을 피하려 하는 건 관세 때문이 아닙니다. 관세가 오르더라도 버티며 살 수 있다는 게 캐나다인들의 생각입니다. 정치적인 문제이고, 캐나다 정부가 잘 대응할 거라는 기대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미국의 51번째 주가 돼라. '주지사' 트뤼도"라고 한 트럼프의 말 때문입니다. 그냥 좀 힘들게 사는 게 아니라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말입니다.

군인이었던 존 영 씨는 캐나다 국가 스포츠인 하키 스틱에 새 캐나다 국기를 내걸었다.

취재 중 만난 캐나다 군인 출신 존 영 씨는 "관세는 걱정하지 않는다"며 "트럼프의 말처럼 캐나다는 쉽게 가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캐나다인들은 그동안 미국을 형제와 다름없는 가족 같은 나라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1, 2차 세계대전에 함께 참여했고, 핵무기를 개발했던 '맨해튼 프로젝트'에도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미국인과 결혼한 가족이나 친구가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 있는 미국의 행정가에 가장 가까운 곳에 대사관을 둔 나라가 캐나다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가깝게 생각했던 나라가, 그리고 자신들보다 경제 규모는 10배나 크고, 군사력도 압도적이고, 인구도 많은 나라가 합병하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자신의 행정부 수반을 '주지사'라고 부르니, 캐나다인들로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캐나다인들은 "모욕적이다", "화가 난다", "배신당했다", "믿을 수 없는 파트너다"라는 말들을 합니다. "길을 지나가던 사람이 아니라 형제한테 얻어맞은 격"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 캐나다 국기 내걸고 '미국산'만 아니면 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도발은 캐나다인들의 애국심에 불을 지폈습니다. 캐나다 국기 판매량이 늘고 있습니다. 겨울은 국기가 쉽게 훼손되는 계절이어서 잘 팔리지 않지만, 이번 겨울은 다르다고 합니다. 캐나다 내에서 만든 국기는 동이 나서 해외에 주문해야 한다고 할 정돕니다.

캐나다 국기를 집 밖 국기봉에 걸어 둔 로리 스틸 씨는 "우리는 미국인들처럼 국기를 여기저기 걸어두고 존경을 표하는 모습이 별로 없다. 하지만 요즘은 여기저기 국기가 걸려 있는 걸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게 바로 우리다. 우리는 51번째 주로 합병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지의 표현이라고도 했습니다.

식료품점 곳곳에 ‘자랑스러운 캐나다산’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다.

식료품점에선 미국산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미국산 대신 캐나다산을 들여놓거나, 과일 등 신선 제품은 미국이 아닌 멕시코, 스페인, 튀르키예 등에서 들여옵니다. 한 매장의 경우 미국산 제품의 비중이 15%였는데, 한두 달 사이 5% 수준까지 낮아졌습니다. 앞으로 더 낮출 계획입니다.

매장에 들어서는 고객 역시 미국산과 캐나다산이 있으면 당연히 캐나다산을 살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미국산만 아니면 된다고 했습니다. 한 고객은 자신이 좋아하는 매운 소스를 집으며 "이게 미국산인데, 더 이상 사지 않을 것"이라면서 "아직 어떤 걸 살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소셜미디어의 캐나다산 사기 그룹 첫 페이지. 회원 수가 130만 명을 넘었다.

이런 분위기를 더 잘 볼 수 있는 게 소셜미디어의 '캐나다산 사기' 운동 그룹입니다. 한 그룹의 경우 올해 초만 해도 5만 명 수준이었던 회원 수가 13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어떤 게 캐나다산이냐는 질문도 있지만, 미국산 아닌 건 어느 제품이냐를 묻는 말도 올라옵니다.

이 그룹의 운영진인 키스 다우 씨는 회원 수가 증가하는 이유를 묻자 "많은 사람들이 걱정이나 두려움 같은 걸 풀어낼 통로를 찾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 캐나다 자립의 길로?

이런 '미국산 안 사기' 운동의 어려움은 수십 년간 진행돼 온 세계화로 인해 국제 분업 구조가 너무 복잡해졌다는 데 있습니다. 캐나다산 원재료가, 미국으로 수출돼 가공된 뒤, 다시 캐나다로 수입돼 팔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공지가 미국이 아니더라도 그 공장의 소유주가 미국인일 수도 있습니다. 미국인이 캐나다에 와서 법인을 세우고 제품을 가공할 수도 있습니다.

칼로 무 자르듯이 이건 미국산, 이건 캐나다산이라고 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겁니다.

그래서 개발된 애플리케이션도 있습니다. 제품의 바코드를 찍으면 가공 공장 위치, 원재료 생산지, 브랜드 소유주를 5점 만점으로 평가해 얼마나 캐나다산인지를 보여주는 애플리케이션입니다.

5점 만점을 기준으로 어느 정도가 캐나다산인지를 보여주는 애플리케이션을 시연하고 있다.

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 크리스토퍼 딥 씨는 "일부 사람들은 캐나다인을 고용하고, 캐나다에 도움이 된다면 소유주가 미국인이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수익의 일부가 미국으로 들어가는 걸 원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팀 호튼스'에서의 소비가 논란이 되는 것도 이 이유에서입니다.

이런 움직임이 계속되면 캐나다와 미국의 경제 연결고리는 점차 약해질 수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마트의 대표 고든 딘 씨는 지금 분위기를 "캐나다에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존의 거래 관계를 끊고, 새로운 거래 상대를 찾으면서 더 품질 좋고, 가격은 저렴한 제품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겁니다. 또 캐나다는 농산품 가공 능력이 미국에 비해 떨어졌는데, 이와 관련한 투자도 시작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트럼프 행정부가 정책을 바뀌거나 임기가 끝나더라도 캐나다와 미국 사이의 심리적, 경제적 유대 관계는 예전과 같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로리 스틸 씨는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만일 형제가 당신한테 잘못했다. 그런데 2년 뒤에 사과했다면 곧바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좀 더 두고 보자고 말하게 될까요"

당신은 어떻게 하겠냐고 되묻자 로리 씨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캐나다는 수출의 70%, 수입의 절반가량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영향권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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