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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대원 등 4명 사망·9명 부상
울산·경북·경남 특교세 긴급지원
산불로 대피한 이재민 1500명 넘어
예초·성묘 등 화재 원인 인재 무게
정부, 헬기 111대 투입 전력대응
경남 산청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
경남 산청군에서 발생한 산불 사흘째 23일 단성면 일대에 산불이 마을 쪽으로 향하자 헬기가 물을 뿌리며 산불을 진압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경남 산청, 경북 의성 등 영남권을 중심으로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해 축구장 1만 900여 개 규모의 산림이 불에 탔다. 산청에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투입된 산불 진화 대원과 공무원 등 4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을 입는 등 인명 피해도 이어지고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23일 오후 6시 기준 경남 산청과 경북 의성, 울산 울주, 경남 김해 등 영남 지역에서 산불이 발생해 7689㏊ 규모의 임야가 불에 탔다. 이 외에도 충북 옥천군, 경북 경산시, 경북 경주시, 인천 서구 등 전국 40곳 이상의 지역에서 산불이 나 전체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산불이 발생한 이달 21일부터 당국은 진화를 계속하고 있지만 강풍과 건조한 날씨 때문에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불 진화율은 이날 오후 6시 기준 산청 70%, 의성 60%, 울주 70%, 김해 96%다.

정부는 산청과 의성·울주 지역에 산불 대응 3단계를, 김해에는 산불 대응 2단계를 발령하고 4개 지역에 헬기 111대 등 각종 장비와 인력을 동원해 불길을 잡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남 산청 산불로 피해를 입은 대피자와 이재민을 위해 재난구호사업비 5000만 원을 지원하고 재난 사태를 선포한 울산·경북·경남 3개 시도에 재난안전특별교부세 26억 원을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

"불이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폐허로 변한 마을에 '오열'




화재 현장에서 진화 작업 중인 산림청 소속 진화 대원들의 모습. 사진 제공=산림청


“바람이 부니까 시뻘건 불길이 솟구치는데 몸이 뻣뻣하게 굳었어요. 상비약만 챙기고 나머지 살림살이는 모두 팽개치고 도망쳤습니다.”

경상남도 산청의 조용했던 시골을 삼켜버린 대형 화마에 보금자리를 잃은 이재민들은 말을 잃었다. 23일 이들을 위해 마련된 임시 대피소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서로를 위로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뉴스에서 폐허로 변한 마을의 모습이 나올 때마다 이재민들의 한숨과 탄식이 연신 터져 나왔다.

산림청 등에 따르면 21일 시작된 대형 산불로 대피한 이재민은 15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경북 의성과 경남 산청, 울산 울주 등 영남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퍼진 산불에 당국이 총력 진화에 나섰지만 불길을 잡지 못하며 이재민들은 임시 주거 시설을 전전하고 있다. 소방 당국은 산불 대응 3단계를 발령해 진화에 총력을 다하고 있지만 건조한 날씨와 강풍으로 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밤에는 기상 여건상 헬기를 투입할 수 없는데 고온건조한 바람이 이어지니 진화율이 들쭉날쭉하다”고 전했다.

35년간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산청에서 노후를 보내던 80대 이춘융·김순정 씨는 한순간에 전 재산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이 씨는 “전원주택에서 한적한 생활을 꿈꿨지만 큰 산불로 인생의 마지막 계획이 무너지고 있다”며 “겨우 몸을 피했지만 참담한 마음에 물 한 모금도 넘어가지 않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정옥(78) 씨도 화마가 마을을 덮쳐오자 산청군 단성면 단성중학교 임시 대피소로 대피했다. 이 씨는 “밭일을 하다 뒷산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발견했다”며 “우리 동네까지 불길이 번지는 데 불과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마치 불이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고 했다.

앞으로 생계를 어떻게 이어갈지 걱정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양봉업을 하는 김용한(71) 씨는 “월동을 마친 벌들이 새끼를 낳고 한창 먹이를 구할 시기에 산불이 발생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발을 굴렀다. 강풍이 양봉장이 있는 뒷산으로 불어 연기가 뒤덮인 바람에 벌들도 상태가 온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산청뿐 아니라 산불이 발생한 경북 의성, 울산 울주, 경남 김해 등 인근 지역 주민들도 마을회관·경로당·체육관 등으로 대피했다. 울주의 경우 당초 76명에 대해 대피하라고 지시했지만 불길이 확산하면서 5개 마을 주민 791명에게 추가 대피령을 내렸다. 산림청은 산불이 발생한 지 3시간여 만인 오후 6시 40분쯤 올해 처음으로 ‘산불 3단계’를 발령했다. 3단계는 피해 추정 면적 100㏊ 이상, 평균 풍속 초속 7m 이상, 진화 예상 시간 24시간 이상일 때 발령된다.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로 인해 축구장 1만 900여 개 면적의 산림이 불에 탔다. 산청에서 발생한 산불은 최초 발화 지점 인근에서 예초기로 풀을 베던 작업 중 불씨가 튀어 산불이 발생한 것으로 산림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의성 산불의 경우 성묘객이 묘지를 정리하던 중 실수로 불을 낸 것으로 추정되는 등 4곳의 산불 모두 인재(人災)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산청에서만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투입된 산불 진화 대원과 공무원 등 4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을 입는 등 인명 피해도 이어지고 있다. 숨진 대원은 모두 60대였고 인솔 공무원은 2021년 입직한 30대인 것으로 전해졌다. 부상자들도 화상을 입어 병원으로 후송됐다.

산불 영향권에 있는 학교들은 잇따라 휴교에 나섰다. 산청군에 따르면 산불이 번질 위험이 있는 신천초, 덕산초, 덕산중·고등학교 등 4개 학교는 24일 학생들에게 휴교령을 공지했다.

산림 당국은 산청과 의성, 울주에 산불 대응 최고 단계인 3단계를 발령하는 등 총력 대응에 나섰지만 역부족이다. 정부는 이들 지역에 헬기 111대를 비롯해 장비와 인력을 파견했다. 피해가 큰 지역 외에도 충북 옥천군, 경북 경산시, 경북 경주시, 인천 서구 등에서도 크고 작은 산불이 잇따라 발생했다.

특히 불씨가 바람을 타고 옮겨붙으며 진화율이 널뛰고 있다는 점도 소방 당국의 골머리를 앓게 하고 있다. 산청 산불의 경우 22일 정오 75%까지 올랐던 진화율이 강풍에 불씨가 하동 옥종까지 번지며 오후 10시 25%로 되레 떨어지기도 했다. 정부는 22일 산청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는데 대형 산불에 따른 정부의 특별재난지역 선포는 이번이 역대 6번째다.

앞으로의 기상 여건도 불씨를 잡기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날 잦아들었던 강풍이 24일부터 다시 강해지는 데다 26일까지 뚜렷한 비 소식이 없기 때문이다. 기상청은 이날 기준 초당 4~5m 수준이던 풍속이 24일 초속 15m 수준으로 오른다고 보고 있다. 약한 기압골이 남해안을 통과하면서 비는 별로 내리지 않는데 바람의 영향만 더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비 소식은 27일에나 있다. 공상민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현재로서는 27일 강수가 약하지는 않지만 봄철 저기압이 지나갈 때처럼 강하지도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구체적인 강수량과 강수 구역은 추후에 예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난 사태를 선포한 울산·경북·경남 3개 시도에 재난안전특별교부세 26억 원을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 최 권한대행은 “정부는 중대본을 중심으로 이번 산불을 완전히 잡을 때까지 모든 자원을 아끼지 않고 투입하겠다”면서 “유가족과 피해자 지원, 이재민의 일상 회복에도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더욱 세심하게 살피겠다”고 강조했다.



산 정상 넘은 고온 강풍이 순식간에 불씨 날라[산불 피해 키운 '푄 현상']
경상남도 산청과 경상북도 의성, 울산 울주 등에서 발생한 불씨가 어마어마한 피해로 이어진 배경에는 봄철 특유의 건조한 대기에 더해 기후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낙엽과 나무가 바싹 말라버린 데다 산 정상을 빠르게 넘는 강풍이 불며 삽시간에 대형 산불로 번졌다.

23일 기상청 등에 따르면 남부 지역의 산불이 크게 번진 원인으로 ‘푄 현상’이 꼽힌다. 푄 현상은 바람이 산꼭대기에서 내려가며 더 건조하고 뜨거워지는 현상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강원 양양과 간성 사이에 부는 ‘양간지풍’으로 알려져 있다. 산 정상을 넘는 바람은 고온 건조한 데다 속도가 매우 빨라 산불이 발생할 경우 불씨를 순식간에 주변 지역으로 번지게 한다. 2005년 4월 강원 양양 지역의 산불이 사흘간 이 바람을 타고 확산해 임야 1161㏊와 낙산사가 소실됐고 2019년 4월에는 강릉과 삼척, 2023년 11월에는 속초와 고성에 큰 피해를 낳았다.

이번 의성 산불 역시 초속 5.6m의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동쪽으로 번졌다. 기상청에 따르면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넘은 바람은 강원 영동과 경북 동해안에 순간 풍속이 시속 90㎞에 달하는 강도로 불었다. 특히 남쪽에 고기압, 북쪽에 저기압이 자리하며 대기가 매우 건조해졌고 이는 푄 현상을 불러일으키며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피해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전날 서해안 쪽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 지역의 습도는 25% 이하를 기록했다. 고온건조한 바람의 영향으로 이날 대구와 경북의 5개 지방자치단체에는 건조 경보가 발표됐고 그 밖의 경북 지역과 강원·충북·전북 지역에도 건조주의보가 발효됐다.

여기에 기후변화로 봄철 기온이 오르고 강수일수가 줄어들면서 산불이 생기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점도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기상청과 국립기상과학원이 낸 ‘우리나라 109년 기후변화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9년 동안 봄 기온은 평균 0.26도 올라 사계절 중 가장 큰 변화를 기록했다. 강수일수는 모든 계절이 줄었는데 최근 10년간 봄과 여름에 두드러지게 감소했다.

최근 산불의 특징은 대형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앞서 산림청은 ‘2024년 산불통계 연보’에서 2020년대의 산불 면적이 2010년대보다 7.3배 늘고 대형 산불이 3.7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산불은 봄철(65%)에 집중됐고 월별로는 3월(38건)에 가장 많이 발생했다. 아울러 4월 청명과 식목일, 5월 어린이날과 부처님오신날에도 최근 10년간 각각 연평균 10.9건, 6.7건씩 산불이 발생해 화재 위험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산림청의 분석이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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