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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대기자
한대선(1922~88)은 한국 미술의 딜레탕트(애호가)였다. 구석기 토기부터 조선 자기(瓷器)까지 연대별로 사들였다. 큰돈을 들일 수 없어 깨진 조각을 붙인 명품을 모았다. 하버드대는 미술관에 그의 이름을 표기한 컬렉션을 소장했고, 한국 도자기 미술사 강좌까지 개설했다. 그는 조선 유학과 다산 정약용 연구로 일가(一家)를 이뤘고, 한국의 정치·역사·철학·미술사를 섭렵한 르네상스적 지식인이었다. 본명은 그레고리 헨더슨이다. 하버드대에서 고전학을 공부해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스물여섯 살이던 1948년 주한 미국대사관 3등 서기관으로 부임해 한국 현대사의 증인이 됐다. 박정희 군사정권과의 불화로 1963년 외교관직을 그만두고 대학교수가 됐지만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한국을 연구했다.

윤석열·이재명 탈선 모두가 방관
국힘·민주 국민은 안중에 없나
윤·이 헌재 결과 승복 선언하고
개헌으로 대통령제 수술해야

1961년 박정희가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키자 매그루더 주한미군사령관은 초기에 진압하려고 했다. 그러나 쿠데타 세력과 내통한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의 반대로 좌절됐다. 헨더슨은 매그루더처럼 “한번 쿠데타가 일어나면 또 다른 쿠데타를 부른다”고 생각했다. 1985년 리브시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쓴 편지에서 5·16 이후의 쿠데타 사례로 박정희의 유신 쿠데타, 전두환의 12·12 신군부 쿠데타, 광주 만행 특전사 쿠데타를 거론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은 군을 동원한 친위 쿠데타(self-coup)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문민시대가 열렸는데 느닷없이 군이 다시 튀어나온 것이다. 초현실적인 역사의 퇴행을 지켜보면서 매그루더와 헨더슨의 선견지명에 감탄하고 있다. 헨더슨은 “원래 조선조는 17,18,19세기 유럽보다도 더 문민화된 정체(政體)였지만 일본 군부정체에 의해 중단됐다. 그런데 해방 후 왜 한국이 미나미나 아베 형(型)의 군사체제로 되돌아가느냐. 일본은 군사체제를 극복하고 문민체제로 들어섰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5·16 군사정권과 야합한 미국의 대(對)한국 정책에 책임을 물었다. 헨더슨은 1980년 5월 특전사 광주 투입을 위컴 주한미국사령관이 승인했다고 주장했다.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대사가 반박했지만 사실로 확인됐다. 박정희 정권이 김대중을 일본에서 납치해 수장(水葬)시키기 직전 지인인 하버드 법대 제롬 코언 교수를 통해 닉슨 대통령의 안보보좌관 키신저에게 알려 구명(救命)한 것도 헨더슨이었다.

헌재 탄핵 선고를 앞둔 윤석열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이 되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석방된 윤 대통령은 개선장군 모드고 극렬 지지층의 우상이다. 탄핵 인용으로 조기 대선판이 열리면 당내 경선에서 영향력을 과시할 것이다. 이 대표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무리하게 탄핵한 것도 모자라 30번째 탄핵 공세의 제물로 최상목 권한대행을 정조준하고 “몸조심하라”고 겁을 주었다. 오래전 잊힌 일을 다시 꺼내 공수처에 고발까지 했다. 26일로 예정된 자신의 선거법 위반 사건 2심 판결 전 탄핵 선고 가능성이 사라지자 이성을 잃었다. ‘대행의 대행’ 체제까지 절단내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두 사람은 탄핵 선고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의사도 밝히지 않고, 광장은 증오와 불복의 함성으로 뒤덮여 있다. 그런데도 양당 의원들은 할 말도 못하고 현재와 미래의 대통령 권력에게 눈도장을 찍는 데 정신이 없다. 건달 패거리보다도 못한 사당(私黨)의 천박한 모습이다. 근본 원인은 승자 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에 있다.

헨더슨은 명저 『소용돌이의 한국 정치(Korea: The Politics of The Vortex)』에서 한국 정치를 원자화된 단위들이 권력의 정상을 향해 소용돌이의 상승기류(updraft)를 타고 돌진하는 모습에 비유했다. 그가 관찰한 한국 정치는 1980년대 후반까지다. 2025년의 한국은 G7의 문을 노크하는 선진국이 됐지만 소용돌이는 더 사나워졌다. 이 눈 밝은 이방인의 대안은 중간지대로의 정치합작이다. 극한지대의 대결 정치로부터 중간지대의 관용정치로 이주해야 한다는 것이다(김정기 『그레고리 헨더슨 평전』).

한국의 기형적 대통령제는 사자·염소·뱀의 머리가 달린 신화 속 키메라처럼 자체 분열과 충돌을 일으키는 괴물이다. 헨더슨이 제안한 대로 합리적 중도·온건파가 힘을 써야 견제할 수 있다. 그러러면 헌법을 수술해야 한다. 승자 독식의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분산하고, 국회의 폭주에 제동장치를 만들어 타협과 통합을 강제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탄핵이 기각되면 임기 단축 개헌을 하겠다고 했다. 대혼란을 초래한 당사자로서 약속을 지켜야 한다. 이 대표도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지지율 1위를 달리는 후보가 개헌을 거부하는 것은 모든 권력을 독식하겠다는 탐욕일 뿐이다. 너나 없이 권력을 향해 돌진하면서 맹렬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불나방 정치와는 이쯤에서 작별해야 한다. 사격 중지! 이젠 고통받는 국민과 나라를 생각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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