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헌법적 강경 태도’의 오류와 한계
尹정부 40번째 거부권 헌법권한 정당화
민주당, 헌법 수호 위해 崔대행 또 탄핵
與·野 헌법에 근거했지만 자제 없는 적의
국민은 심리적 내전···흔들리는 민주주의
尹정부 40번째 거부권 헌법권한 정당화
민주당, 헌법 수호 위해 崔대행 또 탄핵
與·野 헌법에 근거했지만 자제 없는 적의
국민은 심리적 내전···흔들리는 민주주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며 개회 선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방통위법 개정안은) 헌법이 정부에 부여한 행정권 중 방송·통신 관련 기능을 국회 몫 위원 추천 여부에 따라 정지시킬 수 있게 해,
헌법상 권력 분립 원칙 위반 소지
가 큽니다.”(3월 18일 최상목 권한대행)
“(최상목 권한대행은) 헌법재판소가 판결로 확정한
헌법 수호 의무
를 3주째 무시하고 있습니다. 최고 공직자가 헌법을 무시하면 이 나라 질서가 유지될 수 있겠습니까.”(3월2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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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정부는 없었다…40번째 거부권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8일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지난달 27일 민주당·조국혁신당 주도로 국회에서 가결된 방통위법 개정안에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최 권한대행까지 현 정부 들어 국회에서 의결된 법안의 거부권은 이렇게 40차례를 채웠습니다. 최 권한대행만도 이번이 아홉 번째입니다.
최 권한대행은 앞서 내란 특검법 1·2차 법안과 김건희 특검법안, ‘고등학교 전 학년 무상교육’에 들어가는 예산의 47.5%를 중앙정부가 3년 더 부담하게 하는 내용의 지방교육교부금법 개정안, KBS·EBS 수신료와 전기 요금의 통합 징수를 강제하는 방송법 개정안,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를 ‘교육 자료’로 격하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수사기관의 직권남용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안’, 명태균 특검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이나 최 권한대행 모두 헌법에 따른 절차를 지켰을 뿐입니다. 이 대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 정부들어 30번째 탄핵인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탄핵소추안에 대해 민주당은 헌법 수호 의무를 강조했습니다. 모두 헌법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헌법수호 뿐만 아닙니다. 양당은
40번째 거부권이나 30번째 탄핵도 헌법에 따른 권한행사
라며 목청을 높이고 있습니다.실제 헌법 제53조는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은 정부에 이송되어 1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한다.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에는 대통령은 제1항의 기간 내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하고, 그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부근 광화문 민주당 천막농성장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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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헌법에 근거해 탄핵
다른 한편 헌법 제65조는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윤 대통령과 최 권한대행은 헌법에 따라 거부권을 행사했고, 이 대표는 헌법에 근거해 탄핵도 했는데 결과는 국민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망신창이 대한민국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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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망신창이 대한민국
양당 지지층은 서로에게 이해할 수 없다는 식입니다. 야당 지지층이나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40년 전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이나 중남미나 아프리카 등의 민주주의가 발달하지 못한 국가에서나 볼 수 있었던 계엄을 선포할 만큼 국가가 비상사태였느냐며 분개해 합니다. 거부권을 40차례나 행사하고 계엄 포고령을 통해 의사들을 ‘처단’시키고, 표현의 자유와 언론 자유를 봉쇄하려 했던 것 자체가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는 얘기입니다.
반대로 여당 지지층이나 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당시까지 28번째 탄핵을 실시해 국정 마비를 일으킬 만큼 야당의 행보가 심했다며 민주당이 내란세력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른데다 정치 양극화가 극심한 상황에서 계엄 이후 윤 대통령 탄핵으로 나라는 반쪽으로 쪼개진 실정입니다.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기와 달리 탄핵에 반대하는 여론이 비등한 배경입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원내수석부대표, 조국혁신당 정춘생 원내수석부대표, 진보당 윤종오 의원이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탄핵소추안을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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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계엄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헌법을 지키려고 헌법에 근거해 줄탄핵을 하고 줄거부권을 행사했다는 양당의 고집이 결국 이처럼 국민을 심리적 내전상태에 빠지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87년 민주화 이후 야당이 국정의 발목을 잡은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닐텐데 집권세력은 왜 거부권을 이처럼 행사하지 않았을까요. 노무현 정부부터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까지 거부권 기록은 모두 합쳐 9번에 그칩니다. 심지어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까지 선포했습니다.
반대로 대통령과 집권당이 독선적이지 않은 날이 없었을 텐데 야당이 탄핵을 남발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과반을 차지한 야당 우위의 국회는 이번 22대 국회만이 아닙니다. 16대 국회에선 2001년 DJP 연합 붕괴 이후 3년 간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1명을 탄핵소추(기각) 하는 데 그쳤습니다. 3당 체제였던 20대 국회에선 두 야당이 손을 잡으면 과반을 훌쩍 넘겼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만 이뤄졌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월 17일 서울 서초구 청계재단을 찾은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최근 여당 의원들과 식사자리에서 한 참석자가 “2008년 광우병 파동을 언급하며 '당시 가짜뉴스로 인한 사회 혼란이 극심할 때였는데 혹 계엄을 검토하진 않으셨나”고 묻자, “그런 건 가능한 일이 아니다”고 일축했다고 알려졌습니다. 40차례의 거부권도 문제지만 결국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 대통령과 달리 이명박 전 대통령도
헌법에 명시된 권한을 자제해야 한다는 규범
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헌법적 강경 태도(constitutional hardball)’의 한계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와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의 저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는 미국과 남미의 여러 사례를 들어 “
헌법이 합법적인 형태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다시 말해 위법은 아니지만 법적 테두리 내에서 최대한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정치적 경쟁자를 영원히 퇴출시키겠다는 적의가 작동하면서 민주주의가 흔들리게 된다는 지적입니다. 40차례의 거부권과 30번의 탄핵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미국 법학자 마크 터쉬넷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일찌감치
'헌법적 강경 태도(constitutional hardball)'
라고 규정했습니다. 헌법이 보장한 근거가 있더라도 자제할 수 있는 규범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실제 1892년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민주당 출신)은 세번째 대통령 임기를 이어가고 싶어했지만 집권당인 민주당이 후보 지명을 거절했습니다. 세번째 출마 자체가 헌법 위반은 아니었지만 자제의 규범을 위반한다고 봤던 것입니다.
상호관용과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의 전형
이었습니다. 현재 한국 정당에서 이런 제도적 자제가 가능할까요.지난 22일 서울 시내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집회가 열리고 있다. 위쪽은 종로구 동십자각 앞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16차 범시민대행진, 아래쪽은 중구 세종대로에서 열린 대한민국바로세우기운동본부 윤석열 대통령 탄핵반대 광화문국민대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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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시리아 같은 내전 국가…정치적 양극화 징후
불가능할 것입니다. 자제는 커녕 오히려 헌법적 강경태도로 말미암아 국민은 심리적 내전 상태를 가속시킬 것입니다. 미국 정치학자 바버라 월터는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에서 이라크, 유고슬라비아, 시리아, 북아일랜드 등의 내전은 최근 민주주의 선진국의 정치적 양극화 징후와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정치 지도자들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지지자들의 공포와 원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국가는 아노크라시(독재와 민주주의의 중간 상태) 상태
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느 상태에 있을까요. 정치지도자들의 상호관용과 제도적 자제를 기대하기는 정말 어려운 것일까요.레비츠키와 지블랫은 민주주의 공고화는 제도나 헌법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상호관용과 권한 행사의 자제가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있는 열쇠라고 했습니다. 조기 대선이 임박해 보입니다. 바람 앞에 등불 같은 한국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현명한 지도자를 고대합니다.
*여쏙야쏙은 여당과 야당의 ‘속’사정을 ‘쏙쏙’알기 쉽게 전달하는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