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통신연구원 7500만원 투입 영상
윤 취임 2주년 행사 무도 시범 영상 활용
보안 요구해 연구원은 자유롭게 활용 못 해
윤 취임 2주년 행사 무도 시범 영상 활용
보안 요구해 연구원은 자유롭게 활용 못 해
방승찬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원장이 지난해 6월26일 열린 ‘2024 에트리 콘퍼런스’에서 성과발표 및 시연을 하는 모습.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유튜브 영상 갈무리
대통령경호처가 윤석열 대통령도 참석한 취임 2주년 기념 무도 및 상황조치 시범 행사에 국책연구원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트리) 예산으로 제작한 영상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에트리가 7천여만원을 들여 제작한 이 영상은 경호처가 보안을 요구해 정작 에트리는 자유롭게 활용하지 못했다. 경호처가 자신의 행사를 위한 동영상 제작 비용을 에트리에 떠넘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정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에트리로부터 받은 답변과 한겨레 취재를 23일 종합하면, 에트리는 지난해 6월26~27일 열린 ‘2024 에트리 콘퍼런스’에서 ‘혼합현실 대테러 훈련 기술’을 주요 주제 중 하나로 선정하고 이를 홍보·시연하는 콘텐츠를 3억7200만원에 제작했다. 에트리가 제작한 콘텐츠는 인공지능 과학 경호 관련 내용이 담긴 5분짜리 영상과 기술 내용이 담긴 3분짜리 영상, 이를 체험하는 데모 콘텐츠 2종 등 모두 5개였다. 에트리는 이 가운데 경호 영상 제작 과정에서 경호처의 자문을 받았고 대테러 훈련 개념과 시나리오 적용 등에 대한 협조를 받았다. 경호 영상 제작에는 7500만원이 소요된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에트리 콘퍼런스에서 활용된 것은 이 영상들을 재편집한 3분짜리가 전부였다. 이 영상은 방승찬 에트리 원장이 에트리의 성과를 발표할 때만 재생됐고, 콘퍼런스 때 다른 분야 발표나 기술 전시에는 활용되지 않았다.
반면에 경호처는 윤 대통령 취임 2주년 기념행사 때 무도 및 상황조치 시범을 실감나게 하기 위한 배경으로 에트리가 제작한 영상을 활용했다. 윤 대통령은 경호처 관계자들을 포함한 대통령실 직원들과 이 영상을 관람했다고 한다. 경호처 행사는 취임 2주년 당일인 지난해 5월10일 무렵 열렸는데, 에트리는 영상 초안을 콘퍼런스가 열리기 전 경호처에 먼저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에트리가 ‘대테러 훈련 기술’을 행사 주요 주제로 선정한 경위도 불분명하다. 에트리는 콘퍼런스에서 인공지능과의 동행을 주제로 로보틱스·보안·응용 등 구체적 과제를 선보였으나, 당시 에트리의 연구 사업 중 대테러 기술 관련 사업은 없었다. 에트리가 영상 제작 때 보안 문제가 까다로운 경호처로부터 자문을 받은 점도 석연치 않다. 에트리는 이후 경호처와 맺은 보안서약으로 인해 경호 영상을 공개하지도, 원본 그대로 활용하지도 못하고 있다.
이런 특이한 정황들 때문에 경호처가 에트리를 활용해 영상을 제작하도록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출연연구기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과거에도 경호처가 예산 문제 등의 이유로 본인들 예산을 쓰지 않고 연구기관에 돈이 들어가는 특정 결과물을 요청한 사례가 종종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에트리가 경호처 요청으로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영상을 과도하게 제작한 것 아닌지 의문”이라며 “연구기관 에트리에 경호처가 어떤 부담을 줬는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배임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검찰 간부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제삼자가 이득을 취한 경우라 배임 혐의가 성립할 소지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에트리는 “해당 용역은 에트리 연구 개발의 기본 데이터 및 기술자료 활용을 위한 것으로 (경호처에 제공한 영상 이외의 것들은) 콘퍼런스 종료 뒤인 지난해 9월~올해 2월 대학 세미나 등 대내외 행사 7곳에서 소개됐다”며 “경호처 제공을 목적으로 제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호처에 영상을 제공한 이유에 대해서는 “영상 제작 자문을 받는 과정에서 (경호처의) 활용성에 공감해 공유된 것”이라고 했다. 경호처는 “경호 활동과 관련한 행사에 대해서는 보안상 확인해줄 수 없음을 양해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