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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등산 돕는 외골격 로봇 도입한 태산
태산의 6336개 계단,  로봇 다리로 올라보니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듯 가뿐
원인 미상·방전 등 2차례 고장...완주 못해
기술 뛰어나지만 가격·대량생산 등 과제로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샤오홍슈에 태산 등산을 도와주는 '로봇 다리'를 체험한 영상들이 올라와 있다. 샤오홍슈 캡처


중국의 오악(五岳) 중 하나인 산둥성 타이안시 '타이산(泰山·태산)'은 높고 험준하기로 잘 알려져 있다. 최고봉은 1,535m의 옥황봉이고, 그에 이르기까지 장장 6,336개 계단을 다섯 시간 동안 쉼 없이 올라야 한다. "태산이 높다하되"로 잘 알려진 조선시대 산문을 비롯해 한자 문화권의 문학 작품에, 태산이 곧잘 인간사의 고난과 장애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등장하는 이유다.

'로봇 굴기'가 한창인 2025년 태산도 로봇을 이용해 수월하게 올라갈 수 있다는 걸 과거 문인들은 상상이나 했을까.
지난 1월 30일 춘제(중국의 설)를 맞아 인공지능(AI) 외골격 로봇(이하 '로봇 다리')이 태산에 도입됐다. 광둥성 선전의 로봇 업체 '컨칭커지'가 개발한 1.8㎏ 상당의 로봇 다리는 AI로 사용자의 움직임을 감지해 등산할 때 다리에 실리는 하중을 덜어준다. 결과적으로 사용자는 제 힘을 덜 들인 채 이동할 수 있다.

첫 공개 후 '로봇 다리'는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지만 실제 사용기는 찾기 어렵다. 이에 주요 외신 중에선 가장 먼저 '로봇 다리 등반'에 나서기 위해 태산을 향했다.

8일 태산 홍문 여행자센터에 위치한 '등산 보조 로봇 체험관'에서 말로만 듣던 로봇 다리를 대여할 수 있었다. 대여료는 6시간에 160위안(3만2,000원). 등산 기점인 여행자센터에서 도보로 5시간 정도 소요되는 '남천문(해발 1,460m)'에서 반납할 수 있다. 하루에 몇 명 정도 이용하는지 묻자, 태산문화관광그룹(태산관광) 직원 천장량은 "아직 시험 운영 기간이라 기계가 10여 대밖에 없는데 매일 다 나간다"고 대답했다. 태산 관광 당국 측은 순차적으로 기계를 추가 확보해 5월까지 500대를 비치할 예정이다.



무릎과 허리에 장치를 착용하고 첫걸음을 내디뎠더니 '쑤욱' 하고 무릎이 직각으로 올라갔다. 내 무릎이 아닌 듯 스스로 올라온 느낌이다. 기본적으로는 로봇 다리가 사용자에게 최적화된 움직임을 구현하지만, 허리 장치의 '더하기(+)'와 '빼기(-)' 버튼을 누르면 기기의 강도를 직접 조절할 수 있었다. 살짝 움직였을 뿐인데, 누군가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듯한 기분이다. 허벅지와 대퇴부 근육을 많이 사용하지 않아도 쉽게 계단을 올라 피로감이 덜 들었다. 경사 심한 계단을 오르는데도 평지를 걷는 듯했다. "와, 정말 몸이 가벼워 보이네." 다른 등반객들의 부러운 듯한 시선이 쏟아졌다.

감동도 잠시, 한계도 금방 드러났다. 30분쯤 걸었을 뿐인데 갑자기 '원인 미상'의 이유로 작동하지 않았다. 사뿐했던 두 다리는 돌덩이를 얹은 듯 천근만근이다. 원점으로 돌아가 기기를 교환한 뒤 원점부터 산행을 다시 시작했다. 1시간 뒤, 이번엔 배터리가 문제다. 장치에 '황색불'이 들어오더니 이윽고 '빨간불'이 켜졌다. 전기가 없다는 표시다. 결국 짐이 되어버린 로봇 다리를 중간 지점인 '중천문'에서 긴급 반납했다. "로봇에 배터리가 두 개 들어있고, 3만 걸음 이상 걸을 수 있으며, 5~6시간 동안 사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태산관광 측의 설명이 무색해졌다.

컨칭커지의 로봇 다리는 지난 15일 선전의 한 자선 걷기 행사에도 등장했다. 행사 관련 보도에 달린 댓글이 중국 로봇 산업의 현주소를 명확히 꿰뚫고 있었다.
"외골격 로봇은 인기 있지만 대중화까진 갈 길이 멀다. 배터리 수명, 편안함, 가격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자들만의 장난감'일 뿐이다."


지난 8일 중국 산둥성 태산에서 기자가 로봇 다리를 착용하고 계단을 오르고 있다. 타이안=이혜미 기자


지금 중국은 '로봇 천하 시대'



AI, 로봇 등으로 대표되는 '신품질 생산력'은 중국의 '첨단기술 굴기' 정책을 상징하는 구호다. 고품질 제품을 단순 제조하는 것을 넘어 첨단 과학 기술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얼마 전 '딥시크 쇼크'로 서방의 기술 봉쇄를 막아내고 자체 기술력을 확보했다는 자긍심에 한껏 고무된 중국은 중앙·지방 정부를 막론하고 AI·로봇 투자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내친김에 첨단기술을 선도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도 읽힌다. 중국 최대 명절 춘제 당시 온 가족이 모여 시청하는 관영 중국중앙(CC)TV 갈라쇼에선 '유니트리 로보틱스(위수커지)'의 휴머노이드 로봇 16대가 무용수 16명과 짝을 이뤄 군무를 추는 장관이 연출됐다. 지난 11일 폐막한 연례 최대 정치행사 양회에서 이뤄진 정부 업무보고에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체화 지능(실제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AI 로봇) 같은 언급이 처음 등장했다.

로봇의 활용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자동차 제조 등 공장 라인에 투입되는 산업용 로봇은 기본이다. 인상적인 묘기를 선보이는 휴머노이드 로봇이나 달리기, 점프, 짐 나르기를 할 수 있는 로봇 개 등 응용 분야는 점점 확장하고 있다. 일례로 최근 중국 상하이 기반 휴머노이드 제조업체 애지봇은 노인 돌봄 노동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상호작용과 신체 기능을 갖춘 최신 모델 '링시 X2'를 공개했다. 선전에서는 실제 경찰 순찰 업무에 휴머노이드 로봇이 등장하는가 하면, 베이징 시내엔 교통 안내를 하는 로봇이 등장하기도 했다.

로봇이 '부자들만의 장난감' 되지 않으려면

중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업체 '애지봇'이 공개한 새로운 로봇 '링시 X2'가 호버보드에 올라 균형을 잡거나, 자전거를 타고 있다. 바이두 캡처


새로운 산업은 결국 시장에서 돈을 벌어야 무기가 된다. '상용화'하지 않으면 투자금만 집어삼킨 하마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 TV나 휴대전화 속 홍보 콘텐츠에서 '로봇'이 화려한 동작을 선보인다한들, 길거리에서, 가정에서, 병원에서, 학교에서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으면 실리가 없다. 기술 전문지 '씬커두'는 "많은 사람들은 로봇이 여전히 우리 일상과는 떨어져 있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짚었다.

상용화의 걸림돌은 역시 '가격'이다. 춘제 갈라쇼 주인공 유니트리 H1은 최초 65만 위안(1억2,981만 원)에 출시됐다. 같은 회사 G1의 소매 가격은 9만9,000위안(2,000만 원)으로 대폭 저렴해졌지만, 아직 소비자가 선뜻 지갑을 열기에는 쉽지 않은 가격이다. 왕싱싱 유니트리 설립자는 "향후 5년 내 1가구가 최소 1개의 휴머노이드를 소유하게 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낙관하기는 어렵다.

높은 생산 비용 부담에 당장 가격을 더 낮추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현지 매체 펑파이에 따르면 휴머노이드 로봇의 평균 단가는 50만 위안(9,990만 원)에 육박하고, 관절, 모터, 감속기, 구조 부품 등 하드웨어 비용이 그중 70%를 차지한다. 테슬라 등 업계에서는 휴머노이드를 대량생산하기 위해서는 비용을 20만 위안(4,000만 원) 이하로 통제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2022년 샤오미의 레이쥔 회장은 자사 휴머노이드 로봇 '사이버원'을 처음 선보이면서 제작 비용을 60만~70만 위안(1억2,000만~1억4,000만 원)으로 발표했다. 당시 그는 "아직 대량생산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는데, 3년이 지난 지금도 양산화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로봇 '맛 보기'로 수요 창출할까

지난 1월 춘제 갈라쇼에서 유니트리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군무를 추고 있다. 중국중앙티비(CCTV) 캡처


진입 장벽이 높은 '구매' 대신, '대여'로 눈을 돌린 소비자들을 겨냥한 시장도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있다. 돈은 없지만 일단 휴머노이드의 매력을 '맛이라도 봤던' 소비자들이 잠재적 구매 고객으로 이어질 것이라 업계는 기대한다.

실제, 최근 중국의 주요 전자상거래 및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을 검색하면 하루 2,500위안(50만 원)에서 10만 위안(2,000만 원)까지 다양한 가격대로 로봇을 대여해주는 업체가 늘어나고 있다. 가령 한 업체는 중고 플랫폼에 올린 게시물에서 전시회, 기업 행사 등 상업 활동에 적합한 유니트리 G1 휴머노이드 로봇을 5,500위안(약 110만 원)에 하루 빌릴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다.

업계에선 '대여 시장' 형성이 수요 창출의 첫걸음이라고 본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업계 관계자들을 인용, "대여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상업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에 걸쳐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응용 프로그램이 증가하고 수요가 급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이런 추세가 모든 가정이 휴머노이드 로봇을 보유하는 미래로 가는 전 단계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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