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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와인 리스트 ‘3년 전 그대로’
경쟁사들은 1조4000억원 투자도
‘통합은 시급, 와인은 후순위’
대한항공 ‘하늘 위 품격 유지’ 숙제

영화를 보다 보면 항공기 일등석이나 대부호가 소유한 전용기에서는 탑승객이 기내에 오르자마자 웰컴 드링크(welcome drink)로 샴페인 한 잔을 권한다. 얼핏 보면 사소해 보이는 이 와인 한 잔이 항공사들 사이에서 치열한 경쟁 무대가 되고 있다.

대한항공이 항공사의 자존심이자, 기내 서비스의 꽃으로 불리는 일등석 와인 서비스에서 최근 호주 콴타스와 카타르항공에 밀려 경쟁력이 약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조선비즈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항공사 와인 경연대회로 꼽히는 ‘셀러스 인 더 스카이 어워즈(Cellars in the Sky)’ 최근 5개년 수상 결과를 분석한 결과, 한때 전 세계에서 손꼽힌다는 평가를 받았던 대한항공은 지난해 퍼스트클래스 주요 부문에서 수상 실적이 없어 위상 하락이 뚜렷했다.

일등석 와인 ‘명예의 전당’에서 사라진 대한항공
이 시상식은 1985년 처음 시작해 지난해 39회를 맞은 유서 깊은 대회다. 평가는 온전히 블라인드 테이스팅(blind tasting·와인 겉면을 가린 채 하는 시음회)으로 이뤄져 선입견이 끼어들 가능성을 배제했다.

대한항공은 2022년 10월에 대대적으로 와인 리스트를 개편했다. 이후 일등석 스파클링 와인과 디저트 와인 부문에서 2관왕을 차지했다. 종합 부문에서도 3위에 오르며 선전했다.

그러나 지난해는 일등석 디저트 와인 부문에서 은메달을 받는데 그쳤다.

대한항공 자리는 호주 콴타스항공과 카타르항공이 차지했다. 콴타스항공은 일등석 레드 와인에서 카타르항공 역시 퍼스트클래스 화이트 와인 부문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대한항공을 제치고 아시아 시장을 장악했다.

그래픽=정서희

대한항공은 현재 서울과 로스앤젤레스 노선에서 호주산 헨쉬키 마운트 에델스톤 쉬라즈를 포함한 3개 레드 와인을 제공한다. 화이트 와인은 프랑스산 구스타브 로렌츠 리슬링 알텐베르크 등 2종을 서비스한다.

이 와인들은 모두 2022년 신규 기내 와인 선정 당시 채택된 와인들이다. 최근 통합을 앞두고 진행한 대대적인 서비스 개편에서도 와인 라인업은 거의 그대로 유지됐다.

통합 앞둔 서비스 개편에도… 와인 ‘3년 전 그대로’
대한항공은 최근 아시아나항공과 통합을 앞두고 신규 기업 상징 문양(CI)과 새 도장을 발표했다. 동시에 기내식 메뉴와 편의 서비스를 대대적으로 개편해 서비스 고급화에 나섰다.

지난 12일부터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등 주요 장거리 노선에서 새 일등석 기내식을 도입했다. 궁중 음식 신선로와 문어 영양밥이 기존 금태구이, 우엉 떡갈비, 비빔밥을 대체했다. 일등석 식기 역시 프랑스 베르나르도 차이나웨어, 크리스토플 커트러리와 독일 리델 와인잔 등으로 바꿨다. 수면복과 침구 역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프레떼 제품을 사용한다.

이러한 전방위적 서비스 고급화 노력에도 와인 라인업은 3년 전과 변함이 없었다.

한국소믈리에협회 관계자는 “대한항공 와인들은 선택 당시에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이후 경쟁 항공사들이 와인 라인업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면서 상대적 경쟁력이 약화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와인 개편에 대해 “가장 좋은 와인 물량을 미리 선점하는 사전 구매 방식으로 서비스 품질을 높였다”며 “기내에서 제공하는 와인 원산지와 품종을 최대한 늘려서 탑승객 만족도를 높이려 한다”고 말했다.

경쟁 항공사, VIP 잡기 위한 공격적 와인 투자
경쟁 항공사들은 단순히 물량 선점과 다양성 확보에 그치지 않는다.

에미레이트항공은 일등석과 비즈니스석에 제공할 좋은 와인을 사기 위해 지난 2006년 이후 16년 동안 10억달러(약 1조4300억원)를 쏟아 부었다. 이렇게 사들인 와인 650만병을 보관하기 위해 프랑스에 별도로 대형 저장고를 지었다.

이 와인들 가운데 일부는 저장고에 가만히 보관했다가 2035년이 되서야 아랍에미리트로 옮겨질 예정이다. 13년 넘게 직접 와인을 잘 익힌 후 가장 맛있을 만한 시기에 일등석 탑승객에게 제공하기 위한 조치다.

에티하드항공은 올해 초 더 레지던스라 불리는 초호화 일등석에서 샤토 라피트 로쉴드 2000년산(병당 약 1000~1500달러, 약 140만~210만원)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에티하드항공은 와인 품질 저하를 막기 위해 공항에서 항공기까지 온도와 습도를 철저히 관리하는 전용 헬리콥터를 도입했다. 와인을 위해 소믈리에가 기내에 동승해 실시간으로 조언을 제공하는 서비스도 선보였다.

항공사들, 고도에 맞춘 와인 맛 ‘집요한 연구’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통계를 보면 비즈니스석과 일등석은 좌석 수로는 항공사 전체 좌석 가운데 3분의 1 정도에 그친다. 반면 이 자리에서 나오는 수익은 전체 수익 가운데 최대 70%를 차지한다.

단순히 이미지 관리 차원을 넘어, 일등석 탑승객을 얼마나 확보하는지 여부는 항공사 명운을 건 문제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항공사들은 미묘한 맛과 향에 민감한 일등석 탑승객을 위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노력을 기울인다.

그래픽=정서희

일등석을 갖춘 대형 여객기는 보통 3만피트(약 9100미터)가 넘는 고도를 유지한다. 이 정도 높이로 비행을 하다 보면 지상보다 기압이 낮아지고 습도가 떨어진다. 코 속과 혀 기능이 떨어져 상대적으로 후각과 미각이 둔해진다.

카타르항공은 와인 총괄 책임자를 아프리카 최고봉(奉) 킬리만자로 산에 올려 보내 와인 맛을 시험한다. 기내 고도와 비슷한 기압에서 와인 맛이 어떻게 변하는지 정확히 잡아내기 위한 조치다.

카타르항공은 이후 고도에서 변하는 와인 맛을 보정하기 위해 산소 농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특수 와인 캐비닛을 기내에 설치했다.

콴타스항공은 비행 중 와인 맛을 극대화하기 위해 특별 제작한 와인 글라스를 제공한다. 이 글라스는 와인 향을 집중시키는 독특한 곡선 설계로, 기내 저압 환경에서도 지상과 같은 향을 느낄 수 있게 설계했다.

고급 와인 경쟁에 비교적 무관심했던 유럽계 항공사들도 최근에는 일등석 제공 와인을 위한 더 창의적인 방법을 찾고 있다.

독일 루프트한자는 최근 ‘고도의 맛(Taste at Altitude)’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독일 와인 연구소와 협력해 고도 3만5000피트에서 와인 맛 변화를 과학적으로 실험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특수 압력 용기를 도입했다. 와인은 개별 전용 디캔팅(다른 용기에 옮겨 담아 공기와 맞닿는 과정) 장비를 사용해 서빙한다.

프리미엄 경쟁력 쌓으려면 일등석 병마개 열어야
항공 전문가들은 “아시아 노선에서 치열해진 프리미엄 좌석 경쟁에서 와인 서비스는 필수 경쟁 요소”라며 “대한항공이 과거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와인 투자와 서비스 차별화를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반적으로 와인에 대한 경험이 많고, 지식이 높은 일등석 탑승객 시선을 사로잡으려면 고가 프리미엄 와인 확보와 기내 고도에 맞춘 서비스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한항공은 “월드 베스트 소믈리에 대회 챔피언 마크 알메르가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통해 고품질 와인을 엄선했다”며 “일등석과 프레스티지(비즈니스)석에는 유기농, 바이오다이나믹, 비건 같은 친환경 와인을 다수 포함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내 서비스에 대해서도 “기내 환경, 기내식과 조화를 고려해 와인을 편성했다”며 “다양한 와인을 맛보실 수 있도록 분기별로 와인 리스트를 순환해 가면서 서비스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아시아나항공과 통합 과정에서 추가 와인 라인업 개편은 상대적으로 우선순위가 밀려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일등석 와인은 통합 완료 후에 본격적으로 개선이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대형 와인기업 벤치마크 그룹 조너선 베리 컨설턴트는 조선비즈에 “일등석 탑승객에게 ‘블라인드 테이스팅 여부로 고른 맛있는 와인’이라거나 ‘친환경’ 혹은 ‘다양성’ 같은 미사여구는 통하지 않는다”며 “이들은 직관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최고급 와인을, 1만달러가 넘는 일등석 자리에 맞는 방식으로 제공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내 좌석은 이미 상향 평준화 됐고, 기내식은 단가 면에서 모든 항공사가 비슷하기 때문에, 일등석 승객에게 와인은 중요한 선택 요소”라며 “글로벌 톱 항공사에 일등석 와인 선정은 효율성(efficiency) 문제가 아니라 항공사 자존심(pride)을 건 중대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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