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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격랑을 부를 운명의 한 주가 시작됐다. 24일 헌법재판소의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심판 선고에 이어 26일엔 서울고등법원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선고가 진행된다. 두 개의 선고와 깜깜이 상태인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전망이 맞물리며 정치권에선 각종 시나리오도 난무한다. 누구도 앞날을 쉬이 예상하지 못하는, 이른바 ‘시계 제로’ 상태인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4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영수회담에서 집무실에 도착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맞이하며 악수한 뒤 배석하는 당대표 비서실장 등과 인사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①李 피선거권 박탈, 尹 파면=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탄핵 인용을 바라고, 국민의힘은 이 대표 항소심에서 1심(징역 1년, 집행유예 2년)과 같은 피선거권 박탈형이 유지되기를 기대한다. 그간 정치권의 일반적 관측으로, 여야 모두 이 상황을 대비해 움직여왔다. 다만 ‘선(先) 윤 대통령 선고-후(後) 이 대표 선고’를 전제로 한 예상이었다. 윤 대통령 선고가 이 대표 항소심 선고 이후로 늦춰질 가능성이 커지며 변수가 생겼다.

급해진 건 민주당이다. 이 대표의 피선거권 박탈형이 유지될 경우 윤 대통령 탄핵 선고가 미뤄지는 것은 큰 부담이다. 특히 조희대 대법원장이 강조하는 공직선거법 강행규정 ‘6ㆍ3ㆍ3(1심 6개월, 항소심과 상고심은 각각 3개월 안에 종료)’에 따르면 이 대표 사건의 대법원 판단은 항소심 선고 3개월 뒤인 6월 26일 전에 나올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 탄핵이 4월에 인용되면 조기 대선 역시 6월에 치러지게 돼, 자칫 이 대표 사건의 대법원 판단이 대선 직전에 내려질 수도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이 대표에겐 악재다. 비명계를 중심으로 후보 ‘교체론’이나 ‘양보론’이 터져 나올 수 있다. 심지어 “민주당이 대체 후보를 낼 기회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이준석 개혁신당 의원)는 반응도 나온다.

이 때문에 헌재의 조속한 윤 대통령 탄핵 결정을 촉구하는 야권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23일 자신의 SNS에 “내란사태가 장기화하며 소비 심리가 얼어붙고 자영업자들은 매출 급감으로 고통받고 있다. (헌재는) 더 이상 선고를 지연해서는 안 된다”고 적었다. 광화문 천막당사 운영을 예고한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헌재는 당장 25일(이 대표 항소심 선고 전날)에라도 윤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리길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와 별개로 민노총은 “26일까지 헌재가 파면 선고 일정을 확정하지 않는다면 27일 총파업을 벌일 것”이라고 예고한 상태다.

이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탄핵 선고를 25일로, 민주노총이 총파업 최후통첩 날짜를 26일로 정한 건 대한민국 사법 시계를 이재명 한 사람에게 맞추라는 협잡”이라며 “민주당이 불복 빌드업(준비) 차원에서 천막당사를 설치하는 것”이라고 맹공했다.
'12·3 비상계엄' 관련 한덕수 국무총리의 탄핵 심판 사건 선고를 하루 앞둔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이 각각 탄핵 찬·반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②李 피선거권 박탈, 尹 기각 or 각하=윤 대통령 탄핵 선고가 기약 없이 밀리면서 여권을 중심으로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이 기각 또는 각하될 것이란 전망도 많다. “선고가 지연되는 것은 논의해야 할 쟁점이 많은 것”(나경원 의원)이란 이유다. 이에 여당에선 이 대표가 26일 항소심에서 피선거권 박탈형이 유지된 뒤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이 기각 또는 각하되는 상황을 최고의 시나리오로 여기고 있다. 조기 대선이 사실상 물건너가며 ‘8개 사건ㆍ12개 혐의’로 5개 재판을 받는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야권의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12ㆍ3 비상계엄 사태 직전 10%대의 낮은 국정 지지율을 보이던 윤 대통령은 기각 또는 각하 결정이 내려질 경우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등에 업고 보수 진영에서의 입지가 더 강화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자신의 헌재 최후 진술처럼 임기 단축을 전제로 한 개헌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면 야권의 극렬한 반발 속에서도 정국 주도권을 쥘 가능성도 있다.

다만 탄핵 찬성 여론이 60% 안팎을 기록하는 점을 고려하면 사회적 혼란은 더 커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윤 대통령이 어떤 이유로 복귀하더라도 정치적 권위와 신뢰는 회복이 어렵다고 봐야 한다”며 “(기각이나 각하의 경우) 윤 대통령이 계엄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용납할 수 있는 수준의 무엇인가를 내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윤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한다는 걸 야권 지지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사실상의 ‘광장 내전’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우원식(가운데) 국회의장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권성동(왼쪽)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회동을 주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③李 피선거권 유지, 尹 파면=반대로 이 대표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거나 100만원 미만의 벌금형을 선고 받은 뒤 윤 대통령이 파면될 경우, 두 달 뒤 치러지는 대선에선 이 대표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으로 예측된다. 조기 대선 전에 대법원 판단이 나올 가능성이 가장 컸던 사건이 뒤집혔기 때문이다. 나머지 이 대표의 4개 재판 중 위증교사 사건은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고 나머지 3개 재판은 아직 1심 선고도 이뤄지지 않아, 현직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을 두고 ‘진행 중인 재판을 중지해야 하느냐’는 이른바 헌법 84조 논란도 사그라들 가능성이 크다.

정치컨설팅 ‘민’의 박성민 대표는 “민주당에선 이 대표에 대한 후보 교체론은 전혀 나오지 못할 것”이라며 “그때부턴 대선 자체가 ‘이재명이냐 아니냐’의 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여권에서 윤 대통령 파면 책임을 두고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가 극심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④李 피선거권 유지, 尹 기각 or 각하=이 대표가 피선거권 박탈형을 피하는 동시에 윤 대통령도 직무에 복귀할 경우다. 한마디로 여야의 대표 주자가 모두 사법적 심판대를 뚫고 정치적으로 생환하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여야의 극단 대치는 더욱 가팔라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2022년 대선때부터 이어져 온 ‘윤석열 대 이재명’의 대결 구도도 윤 대통령 임기 마무리까지 이어진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여야의 극단 대치 2라운드가 시작될 것”이라며 “심리적 내전이 아니라 진짜 내전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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