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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병한 정치부장

최재형 전 국민의힘 의원은 명절이나 집안 행사 때마다 애국가를 부른다. 본인만이 아니라 형수, 제수 등 온 가족이 함께 4절까지 완창한다. 국민의례도 한다. 그는 시쳇말로 ‘태극기 보수’에 가깝다. 가장 존경하는 역대 대통령도 이승만이다. 2022년 대선 경선에서 국민의힘 일부 강경파 의원은 대세인 윤석열이 아니라 최재형 캠프에 합류했다.

그는 지난달 고교 친구에게 문자 한 통을 받았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심판 국회 측 증인들의 진술은 가짜이고, 내란도 프레임이라는 내용이었다. 친구는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 집회에 가자고 했다. 최 전 의원은 “(12·3 비상계엄은) 명백한 헌법과 법률 위반이고, 탄핵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그는 “보수의 주장은 사실과 진실에 기초해야 한다. 거짓은 더 큰 거짓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 정부 감사원장 임기 도중 원장직을 박차고 나와 국민의힘에 입당해 정치 중립 논란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그러나 비상계엄 후 그는 ‘진짜 보수’임을 증명했다. 쿠데타 앞에 좌우는 없다.

위기는 인간의 본질을 드러낸다. 호시절에는 몰랐던 가면을 벗고 정체를 보여준다. 진짜와 가짜로 나뉜다. 국민의힘 전직 의원은 “위기가 오면 이념과 계파는 사라지고 멀쩡한 사람들과 이상한 사람들로 구분될 뿐”이라고 했다. 윤석열 쿠데타 이후 보수도 제각각의 민낯을 노출하고 있다. 정통 보수를 주장한 이들이 내란을 옹호하고, 극우로 평가받던 인사들이 쿠데타의 반대편에 서 있다.

“40년 동안 빨갱이를 때려잡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은 ‘자칭 보수’로부터 빨갱이 취급을 받고 있다. 부모님과 본인 모두 군 출신인 홍 전 차장은 40년간 블랙요원으로 대공 임무를 했다. 그런 그가 윤석열의 체포 지시에 대해 “그런 게 매일매일 일어나는 나라가 하나 있다. 평양”이라고 했다. 평생 구독한 조선일보가 자신을 ‘거짓말쟁이’ 취급하자 “굉장히 충격적”이라고 했다.

‘우파 이데올로그’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윤석열은 보수를 참칭한 사람이지 보수가 아니다. 윤석열을 버려야 보수가 산다”고 했다. 조 전 편집장처럼 비상계엄을 비판하는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도 자칭 보수로부터 ‘변절자’ ‘위장 우파’라는 융단 폭격을 받고 있다. 사이비가 진짜를 공격하는 꼴이다.

보수 언론도 기로에 있다. 다수 언론사는 내란에 반대하고 민주공화국을 수호하는 입장에 섰다. 일부는 논조가 오락가락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사실상 내란을 옹호하고 윤석열 파면을 반대하는 듯한 목소리를 낸다. 바탕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뒤틀린 양비론이 깔려 있다. 이 대표 비판은 자유고 일리 있는 측면이 있다. 이 대표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취할 수 있는 입장이다.

그러나 쿠데타를 옹호하는 듯한 태도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2024년 대한민국에서 쿠데타를 벌인 사람은 이재명이 아니라 윤석열이다. 진영주의 이분법에 함몰돼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궤변일 뿐이다. 쿠데타 앞에 양비론은 없다. 사실을 중시한다는 언론이 보기에 비상계엄은 쿠데타인가, 계몽령인가.

보수 핵심 가치인 안보에 대한 자칭 보수의 입장은 어떤가. 비상계엄 선포 요건을 만들기 위해 전시 상황을 유도했다는 외환 의혹은 아직 제대로 밝혀진 게 없다. 진짜 보수라면 목소리를 높여야 할 사안이다. 외환 혐의 수사가 오히려 안보를 해친다고 부르짖는 자칭 보수는 성의 없는 윤석열의 거짓말을 못 본 척하며 탄핵 기각·각하만 읊조리고 있다.

윤석열은 ‘인원’이란 말을 써본 적이 없다 했다가 1분15초 후 인원이란 단어를 세 차례나 쓰는 작태를 보였고, 충돌을 막기 위해 불 꺼진 국회 창문을 계엄군이 깨고 들어갔다 했지만 불 켜진 창문으로 계엄군이 들어간 사진은 역사에 남았다. 이런 거짓말을 ‘계몽’이라는 단어를 빌려 확대재생산하는 이들을 언제까지 극우(far-right)라 해야 할까. 그 주장은 보수의 극단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가짜다. 그러니 그들 또한 극우가 아니라 가짜 보수(fake-right)다.

대한민국이 벼랑 끝에 선 지금, 윤석열의 편에 선 이들을 가짜 보수라 부르는 이유다. 권력 중독, 정치적 이해관계 집착이라는 본질을 은폐한 ‘보수팔이’에 불과하다. 윤석열 쿠데타가 한국 사회에 기여한 바가 있다면, 가짜 보수 세력이 누군지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강병한 정치부장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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