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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산청 산불 피해 현장 르포

주민들 체육관 마련 임시대피소로
소방대원 라면으로 끼니 화마 맞서
연무로 시야 확보 불가 헬기 못띄워
경남 산청군 중태마을 주민 손성주(왼쪽)씨가 23일 자신의 집 마당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비료 포대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손씨는 간밤에 주택 인근으로 번진 불을 끄다가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 산청=윤웅 기자

대구에서 23일 오전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의성IC를 나오자 희뿌연 하늘과 텁텁한 대기가 주변을 감쌌다. 산불이 발생한 경북 의성은 이틀째 잿빛 하늘에 매캐한 냄새로 가득했다.

의성읍 읍리 주민 이춘자(82)씨는 “집 뒤편으로 불덩어리가 ‘휙휙’ 날아다니는 걸 보고 기겁했다”며 “어릴 적 6·25전쟁 당시 포화로 산불을 본 이후 처음으로 마주한 산불이 너무너무 무서웠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산불 발화지역인 안평면과 의성읍 일대는 물주머니를 단 헬기들이 부지런히 산불 현장으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발화지점 인근 마을인 안평면 괴산2리 김규호(69) 이장은 “불길이 얼마나 거센지 한숨도 못 자고 순찰을 세 차례나 돌았다”며 “나머지 주민들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전했다.

의성군체육관에 마련된 임시대피소에는 392명의 주민들이 자원봉사자들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대부분 체육관 안에 마련한 텐트 내부에 있었지만 요양원에서 대피한 어르신 63명과 요양보호사 20명은 바닥에 매트를 깔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다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탓인지 이들 대부분 침울하고 힘이 없어 보였다.

의성읍 철파리 이행복한요양원 김드온(71) 요양보호사는 “불길이 점점 요양원 가까이 다가오면서 긴급대피에 나섰다”며 “무엇보다도 공기가 좋지 않아 연세 많은 어르신들이 호흡하는 데 힘들어하시는 걸 보니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전국에서 온 소방대원들은 화마를 잡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동이 트자마자 현장에 투입돼 진화작업을 벌인 서울 광진소방서 이운영 소방경은 “건조한 날씨로 산림이 바짝 말라 있어 불길이 번지는 속도가 예상보다 빨랐고 대부분 험준한 능선이라 진화작업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 소방경은 전날 관내 음식점 화재를 진화하고 자정 무렵 사무실로 복귀해 곧바로 의성 산불 현장에 투입됐다. 라면 한 그릇으로 아침을 때우고 화마와 맞선 그의 얼굴은 벌겋게 익어 있었다.

경남 산청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오전 7시50분쯤 산청군 지리산국립공원 경남사무소 앞 일대에 들어서자 하늘을 덮은 연무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산등성이 위로 훌쩍 솟은 해는 작고 붉은 동그라미로만 보였다.

산청양수발전소 인근에서 산 쪽을 바라보니 검게 그을린 산비탈과 텅 빈 도로 중간중간 진화차량과 순찰대원들만 간간이 보였다.

신천리 천왕봉주유소에 있던 30대 남성은 “아버지가 뜬눈으로 밤새 주유소를 지켰다”며 “산불이 코앞까지 왔었다. 주유소까지 불길이 미쳤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고 말했다.

날이 새면 진화헬기를 투입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헬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남승희 산림청 국제산림협력관은 “헬기는 산불현장 나무로부터 15~20m 상공을 비행하게 되는데 연무로 시야 확보가 안 된 상황에서는 나무 등과 충돌위험이 커 임무수행이 힘들다”고 설명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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