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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산청 폭격 맞은 듯 건물 부서지고
대피소 이재민 덜덜 떨며 불안 호소
서풍 타고 삽시간 확산 "80평생 처음"
숨진 창녕군 진화대원 24일 합동분향소
경북 의성군 의성읍 중리리 한 농산물유통업체 공장이 23일 산불이 옮아 붙어 전소돼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다. 의성=김정혜 기자


23일 오후 경북 의성군 의성읍 중리리는 전쟁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사흘째 타오른 산불로 마을 전체가 희뿌연 연기에 뒤덮였고 건물들은 폭격을 맞은 듯 검게 그슬린 채 부서져 있었다. 산불이 옮아 붙은 한 농산물유통업체 공장은 엿가락처럼 휘었다. 공장주 김양수(46)씨는 "저 안에 있는 과일 원물 가격만 15억 원이 넘고, 35억 원을 들인 오른쪽 건물은 준공을 일주일 앞둔 새 건물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인근 의성군 공설봉안당도 산불을 피하지 못했다. 봉안당 외부의 추모공원은 불씨가 옮아 붙으면서 잔디가 그슬렸고 일부 비석은 녹아내렸다. 산불 소식에 묘소로 달려온 70대 여성은 바닥에 주저앉아 전화 통화를 하면서 "아버지 묘지 다 탔다"고 흐느꼈다.

23일 경북 의성군 의성읍 공설봉안당 앞 추모공원에 산불이 옮아 붙어 잔디가 검게 그슬려 있다. 일부 비석은 화염에 훼손되기도 했다. 의성=뉴스1


임시대피소가 마련된 의성읍 의성종합체육관에서 만난 이재민들은 여전히 불안감을 토로했다. 의성읍 업리 주민 박숙희(71)씨는 "점심 때 안평면에서 불이 났다는 문자를 받았는데 그 불이 한참 떨어진 우리 집 뒤뜰까지 옮아 붙을 줄 몰랐다"면서 "앞산 뒷산 할 것 없이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데 너무 겁이 나고 가슴이 벌렁거려 발이 안 떨어지더라"고 말하며 두 손을 덜덜 떨었다.

박씨가 사는 업리와 산불 발화 지점인 안평면 괴산리는 직선 거리로 8.7㎞가 넘는다. 전날 의성군 일대에 초속 10m 이상 강한 서풍이 불면서 괴산리 산불이 동쪽으로 삽시간에 번진 것이다. 산불은 업리를 순식간에 뛰어넘어 괴산리에서 동쪽으로 20㎞ 넘게 떨어진 의성군 옥산면 구성2리까지 확산했다.

의성읍에 사는 요양보호사 김정애(79)씨는 "강아지와 돌보는 할머니, 할머니의 딸까지 차에 태우고 대피하는데 눈앞에서 불길이 왕복 4차로 도로를 넘어가는 걸 목격했다"며 "도깨비불처럼 휙휙 날아다니는데 너무 무섭고 사방이 연기로 가득해 운전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빠른 산불 확산 속도를 설명했다.

의성군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기준 산불 피해 건물은 주택 13채, 공장 1개, 창고 14개 등 75개다. 그중 60개는 불에 완전히 탔고, 8개는 반소, 7개는 부분 소실됐다. 전체 35개 마을에서 693가구 1,217명의 주민이 대피했다가 189가구 269명은 복귀했다.

경북 의성군 산불 이재민들이 23일 경북 의성읍 의성종합체육관에 대피해 있다. 의성군 제공


진화대원과 공무원 등 4명이 사망한 경남 산청군 산불 현장도 처참했다. 이날 오후 산청군 시천면 외곡마을의 주택 6채는 폭격을 맞은 듯 지붕이 무너진 채 시꺼멓게 타 있었고, 마을 곳곳에는 매캐한 냄새가 가득했다. 김원중 외곡마을 이장은 "능선에서 보이던 불이 순식간에 번지면서 마을을 덮쳐 오는 광경이 정말 무서웠다"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김 이장은 전날 오후 1시 30분쯤 능선을 넘어오는 불길을 보고 집집마다 돌며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그는 "대피 방송을 하고 20~30분도 되지 않아 불이 마을을 덮쳤다"고 말했다. 신속한 대피 덕분에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 마을에서 80년 넘게 산 한 주민은 "평생에 이렇게 큰 불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산불 발생 사흘째까지 덕산시장 쪽에서 바라본 시천면 일대에서는 군데군데 흰 연기가 끊임없이 피어 올랐다. 헬기가 덕천강에서 물을 싣고 날아가 뿌려야 하는데, 연기와 안개가 뒤섞여 도로에서 운전이 힘들 정도로 시야가 막힌 탓에 한때 헬기 진화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주민 이복영(73)씨는 "강한 바람을 탄 불길이 달집 태우듯 번지는 것을 본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산불 진화 중 숨진 공무원과 산불진화대원들 합동분양소는 24일 오전부터 27일까지 창녕군민체육관에 마련된다. 60대 초중반 창녕군 산불진화대원 3명과 30대 창녕군 공무원 1명은 산불 대응 최고 단계인 3단계 발령 다음 날인 22일 오전 산청군 진화 현장에 투입됐다 변을 당했다. 산불 대응 3단계 발령에 따른 광역지자체 차원 인력 동원으로 창녕군도 산불진화대원과 공무원을 보낸 것이다. 유족들은 "무리한 투입이었다"고 오열하며 진상 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창녕군에는 총 34명의 산불진화대원이 있는데 산청군 산불 현장에는 숨진 3명을 포함해 8명이 투입됐다. 사망자를 제외한 나머지 대원들도 불길에 고립돼 중경상을 입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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