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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외공마을 이장 기지로 주민 대피시켜
집은 기둥도 안 남고 탔지만 인명피해 0명
경남 산청군 일대에 산불이 사흘째 이어진 23일 오후 시천면 외공마을의 집들이 불에 타 무너져 있다. 김태형 기자 [email protected]

“어제가 우리 할배 제삿날이었는데, 제사도 못 모시고 피난 왔어요. 우짜모 조은교? 우찌 이런 일이 있는고 모르겠네.”

산불을 피해서 지난 21일 밤부터 사흘째 단성중학교 실내체육관에서 지내는 정윤순(79·여·산청군 시천면 국동마을)씨는 23일 오후 “내가 키우는 개 복실이를 놔두고 왔어요. 혼자 며칠째 굶고 있을낀데. 그 아를 생각하모 내가 밥이 안 넘어간다 아인교”라고 말했다.

정씨의 옆 천막에서 22일 오후부터 지내는 배복순(88·여·시천면 상지마을)씨는 “정신없이 도망친다꼬 지팡이도 못 가져왔어요. 내가 이 나이에 찬바닥에서 잠을 잘 거라고 생각이나 했건나”라며 혀를 끌끌 찼다.

경남 산청군 산불 발생 사흘째인 23일 불길이 산청군을 넘어 인근 하동군과 진주시에까지 번지면서, 대피인원도 산청군 254가구 344명, 하동군 76가구 117명, 진주시 55가구 94명 등 385가구 555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단성중학교·진서고등학교·동의보감촌 등 13곳에 분산 배치돼 있다.

산청 산불 때문에 지난 22일 오후 불탄 경남 산청군 시천면 외공마을 주택. 산불로 이 마을 주택 6채가 불탔다. 최상원 기자

경남 산청군 일대에 산불이 사흘째 이어진 23일 오후 경남 산청군 시천면 외공마을에서 이장이 불에 탄 주민의 집을 바라보고 있다. 김태형 기자 [email protected]

산청군 단성면 단성중학교 실내체육관에는 74가구 100명이 지내고 있다. 이곳에는 천막 34개가 설치돼, 천막 1개당 2~3명씩 지낸다. 학생봉사단체, 동물보호단체, 통신사 등 많은 단체·기관들이 나와서 이들을 돕고 있었다. 대부분 70~80대 노인들이라, 스스로 몸을 가누기도 힘든 사람도 많았다. 임시 식당이 설치됐지만, 일부는 걷지도 못해서 천막 안에서 식사를 받아먹는 형편이었다. 이들은 모두 몸만 빠져나온 상태라서, 삼삼오오 모여서 두고 온 집을 걱정했다.

사흘째 산불이 계속되면서 시천면 등 산청군 일대는 뿌연 연기와 매캐한 냄새로 가득했다.

22일 오후 산불이 훑고 지나간 시천면 외공마을에는 23일 오후까지도 잔불 정리가 한창이었다. 이 마을에는 24가구 42명이 사는데, 지난 22일 오후 1시40분께 산불이 덮쳐서 민가 6채가 불탔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나지 않았는데, 이 마을 이장인 김원중(54)씨의 빠른 대처가 크게 기여했다.

산불 피해를 크게 당한 산청군 시천면 외공마을 민가에서 23일 오후 이 마을 출신 공선무씨가 잔불 정리를 하고 있다. 최상원 기자

김원중 이장은 지난 21일 오후 산불이 발생한 이후 계속 상황을 파악했다. 22일 오후 1시30분께 외공마을 뒷산에도 불길이 보였다. 김씨는 “뱀처럼 불길이 땅바닥을 기면서 마을 쪽으로 다가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산불이 넘어오고 있습니다. 짐을 챙기지 말고, 지금 즉시 몸만 빠져나오십시오. 마을 정류장에 모여주세요”라고 휴대전화를 이용해 원격으로 마을방송을 했다. 그는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주민들을 서둘러 대피시켰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은 업어서 옮겼다.

김씨가 마을방송을 하고 불과 10여분 뒤 산불이 마을을 덮쳤다. 산불을 피하지 못한 집은 기둥조차 남기지 않은 채 불타고 내려앉아 폐허가 됐다. 비록 재산피해가 크게 났지만, 인명피해는 전혀 없었다. 이 마을 주민들은 단성중학교·휴롬으로 대피하거나, 친인척 집에서 지내고 있다.

이 마을 출신 공선무(54)씨는 “아버지 어머니가 고향에서 살고 계시는데, 산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서 급히 왔다. 다행히 부모님은 대피하셔서 무사하다”라며 “큰불이 났는데도 이장을 중심으로 잘 대처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단성중학교 실내체육관에 설치된 천막 대피소에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23일 식사를 하고 있다. 최상원 기자

산불을 피해서 74가구 100명의 주민이 대피한 산청군 단성면 단성중학교 실내체육관. 34개 천막을 설치하고, 천막 1개당 2~3명의 주민이 함께 지내고 있다. 최상원 기자

한편, 산청 산불은 지난 21일 오후 3시25분께 지리산 자락인 경남 산청군 시천면 신천리 구곡산(해발 961m)에서 발생했다. 23일 오후 1시 현재 산불영향지역은 1362㏊로 늘어났고, 진화율은 65%를 기록하고 있다. 소방헬기 31대, 소방차 217대와 소방인력 2243명이 투입돼 산불을 끄고 있다. 이 산불로 창녕군 소속 산불진화대원 등 4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 또 민가 등 건물 10채가 불탔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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