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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판결문 열람 시스템 비판
사건 번호 외엔 메모 불가능
누구나 접근 가능해야
김정희원이 말했다. “정말이지 너무 충격적이었다. 설마 내가 대학교수라서 감사해야 하는 건가? 1호라서 국가에 고마워해야 하나?”.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 사법부가 민주적 통제 바깥에 놓여있고, 그 폐쇄성과 권위주의적 성격 때문에 법학 발전도 크게 해친다며 판결문 열람 시스템을 예로 들었다.

김정희원은 공정과 정의, 폭력과 반폭력의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다. 사진은 2021년 1월 경향신문 기획 ‘흑백 민주주의’ 관련 인터뷰를 하는 모습이다. 권도현 기자


인터넷 열람은 전문 공개가 아니다. 키워드 주변 몇 줄을 “생색내듯” 보여준다. 방문 열람도 어렵다. 열람이 가능한 곳은 전국에 일산 법원도서관뿐이다. 판결문 검색 전용 컴퓨터 여섯 대가 놓였다. 일주일에 이틀만 예약 가능하고, 예약 신청은 2주 주기에 맞춰야 한다. 방문 열람 대상은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가 아니다. 위계가 있다. 대상자 1호가 ‘검사, 검찰공무원, 변호사, 법무사, 대학교수’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인 그가 ‘고마워해야 하냐’고 반문한 건 이 규정 때문이다. 2호는 중앙 및 지방 정부 공무원과 공공기관의 기관장 또는 단체장 의뢰로 법원도서관장의 승인을 얻은 공공기관의 임직원, 3호는 법원도서관장의 승인을 받은 언론사 소속 기자다.

열람실에 들어간다고 원하는 자료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법원도서관 로고가 박힌 용지와 펜만 사용해야 한다. “이것도 충격이었다. 내가 무슨 기밀을 유출하러 온 범죄자인가? 게다가 오직 사건번호만 적어서 들고나올 수 있으며, 그 밖의 어떤 메모도 불가하다.”

각 법원에 사건번호를 전달하고 전문 요청을 한 뒤 받은 판결문은 “텍스트 인식을 못 하는 이미지 파일에 맥(컴퓨터)에서 열면 늘 오류가 나는 PDF 파일”이다.

대한민국 법원은 ‘판결문 방문 열람제도’를 두고 “사법절차를 더욱 투명하게 하고 나아가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제고하기 위한 제도”라고 홈페이지에 썼다. 바로 밑에는 ‘열람 대상자’를 1호 검사, 검찰공무원, 변호사, 법무사, 대학교수 2호 공무원, 공공기관 임직원 등 3호 기자로 위계를 나눴다. 1, 2, 3호가 아닌 ‘국민’들은 열람조차 할 수 없다. 열람에선 ‘비국민’인 셈이다. ‘투명성’과 ‘국민 신뢰 제고’가 뜻하는 게 무엇인지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이미지 출처 : scourt.go.kr


김정희원은 “판결문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압도적으로 어렵다. 내가 처한 현실을 미국, 캐나다의 동료들에게 토로할 때마다 내가 지독하게 불리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연구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통시적 연구를 하려면 ‘방문 열람’을 해야 하는데, 이 과정은 마치 내가 ‘국가에 민폐를 끼치며 기밀을 요구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만든다.”

통시적 연구? 그는 “내가 특정 사안에 관해 지난 20년간 약 300건에 달하는 1심 판결문을 전수조사한 바에 따르면 정권교체에 따른 판결의 경향성은 반드시 나타난다”고 했다.

김정희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법치, 법적 중립성 같은 원론적 개념이 어떤 정치/사회/경제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지를 밝혀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단순한 경향성이 아니라 그 시대의 법이성(예: 신자유주의적 법이성)을 이론화하기 위해서는 판결문 전문 분석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김정희원의 지적을 읽다 보면, 사법부가 이런 문제들을 드러내지 않고, 비판적 연구 대상이 되지 않으려고 폐쇄적 열람 시스템을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23년 영국 싱크탱크 레가툼이 발표한 사법 시스템 신뢰 지수에서 한국은 전 세계 167개국 중 155위다.

김정희원이 말했다. “판결문은 기밀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 및 조직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은 당연히 국민이 감시할 수 있어야 하며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 판결문이 얼마나 허술한지 또는 얼마나 엄정한지, 법적 추론이 얼마나 정당한지 또는 부당한지, 모두가 읽을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전자정부’ 수준은 김정희원이 링크를 건 캐나다 판결문 열람 시스템(www.canlii.org)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비영리 기관인 캐나다 법률 정보 연구소는 판결문 등 240만 개의 문서를 무료로 제공한다.

캐나다 법률 정보 연구소 판결문 열람 홈페이지에서 ‘korea’를 넣었을 때 나오는 검색 결과는 판결문, 관련 법령, 주석 등 총 3759건이다. 사건명 등을 알면 원하는 정보를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canlii.org 화면 갈무리


김정희원은 공정과 정의, 폭력과 반폭력의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다. 2022년 첫 단독 저서 <공정 이후의 세계>를 냈다. 올해 국가폭력에 관한 책을 출간한다. ‘정권교체에 따른 판결의 경향성’ 분석도 들어간다.

윤석열 정권의 폭력적 속성을 일찌감치 파악한 학자이기도 하다. 2023년 7월 ‘계간 황해문화 통권 120호, 창간 30주년’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반폭력으로서 돌봄 정치’에서 “노골적으로 왜곡된 의미의 ‘자유’와 ‘법치’를 내세우며 폭력을 정당화”하는 윤 정권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법, 제도, 행정을 통해 퍼져나가는 (때때로 보이지 않는) 폭력은 국가폭력을 정당화하고, 혐오 발언 같은 폭력적 문화 및 사회적 관행을 고착화시키며, 소수자와 약자 집단이 차별과 불평등에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며 “법과 제도를 통해 (때로는 조용히) 작동하고 확장하는 다종다양한 억압을 국가폭력의 범주로 분석하고 이에 대응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고 했다. 윤 정권을 “‘자유’와 ‘시장’의 이름으로 개인을 소외시키고 원자화하며, 동시에 다양한 처벌 기제와 공권력 수행을 통해 개인을 사회로부터 축출하고 범죄화”하는 ‘신자유주의적 처벌 국가’로 개념화했다.

최근 미국 내 한국인 학자들의 ‘윤석열 탄핵 촉구’ 시국 선언에도 이름을 올렸다.

김정희원은 e메일 인터뷰에서 “헌정 타락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너무도 고통스럽다. 탄핵 국면에서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현실은 사법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압박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주고 있다. 판결문 공개는 그야말로 가장 기초적인 단계다. 모든 국민은 자유롭게 판결문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말했다]는 과거나 동시대, 국내외 여러 분야 인물의 주목할 만한 발언을 상세하게 알리는 코너입니다. 잘 보도되지 않은 내용에 발언자의 간략한 이력을 더해 전합니다.

윤석열 정권은 ‘신자유주의적 처벌 국가’···‘자유’와 ‘시장’의 이름으로 개인 소외계간 ‘황해문화’는 1993년 겨울 인천에서 창간호를 냈다. “전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모토를 내걸었다. 종이 매체 쇠퇴·소멸과 서울 중심 담론 강화 같은 악조건을 버티며 최근 통권 120호를 발행했다. 올해는 발행 30주년이 되는 해다. 황해문화는 ‘통권 120호, 30주년’을 두고 “평범한 시민들과 약소자들, 곧 우리 사회...https://www.khan.co.kr/article/202307111638011

[흑백 민주주의④]“협소한 공정 논란 벗어나려면, 모두가 모두를 돕는 '관계적 존재론' 발전시켜야”지난해 대한전공의협의회는 공공의대 설립, 의대정원 확대 등에 반대하며 정부의 의료정책 추진 과정이 “공정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논란까지 언급하며 “모든 청년들과 연대하려 한다”고도 했다. 정부가 당시 의사 국가고시를 거부한 의대생들을 위해 이달 중 추가 국시를 실시하겠다고 하자 반대 여론이 일었다. 보건의료노조는...https://www.khan.co.kr/article/202101202115005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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