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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객 실화로 대형 산불 발생한 경북 의성 안평면 현장 르포
산불 진화대원들이 경북 의성군 안평면 산불현장에서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경북도소방본부 제공


“내 평생 의성에서 이런 산불 나기는 처음입니다”

성묘객의 실화로 산불이 발생한 경북 의성은 이틀째 잿빛하늘에 매캐한 냄새로 가득했다.

대구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의성 IC에서 빠져 나오자말자 희뿌연 하늘빛과 텁텁한 대기질은 대구시 군위군과는 현저하게 달랐다.

산불 발화지역인 안평면과 의성읍 일대는 물주머니를 단 헬기들이 부지런히 산불현장으로 날아다니는 모습은 마치 재난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23일 오전 10시, 산불 상황과 관련해 언론브리핑이 진행된 안평면사무소에는 공무원과 취재진 등 500여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안평면 사무소 직원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면사무소로 몰려온 적은 여태까지 없었다”고 말했다.

발화지점 인근 마을인 안평면 괴산2리 김규호(69) 이장은 “불길이 얼마나 거센지 밤새 한숨도 못자고 순찰을 세 차례나 돌았다”며 “마을 58가구 68명의 주민들 가운데 어르신 대여섯분만 군에서 마련한 대피소로 피신했고 나머지 주민들은 뜬눈으로 지새웠다”고 말했다.

평소 같았으면 어르신들로 북적거려야 할 의성군 안평면 괴산2리 마을회관(노인정)이 텅텅 비어 있다. 김재산 기자


오전 11시쯤, 평소 같았으면 어르신들로 북적거려야할 괴산2리 마을회관(노인정)은 텅텅 비어 적막하기만 했다.

의성군체육관에 마련된 임시대피소에는 2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자원봉사자들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의 주민들은 텐트 내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요양원에서 대피한 어르신 63명과 요양보호사 20명은 체육관 바닥에 매트를 깔고 집단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텐트 내부는 공기 순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어르신들이 호흡하는데 어렵기 때문이었다.

의성읍 철파리 이행복한요양원 김드온(71) 요양보호사는 “전날 오후부터 매캐한 냄새가 심해지고 불길이 점점 요양원 가까이로 다가오자 전원 긴급대피에 나섰다”며 “무엇보다도 공기가 좋지 않아 연세 많은 어르신들이 호흡하는데 힘들어 하시는 걸 보니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주민 이춘자(82·의성읍 읍리) 씨는 “집 뒤편으로 불덩어리가 ‘휙휙’ 날아다는 걸 보고 기겁했다”며 “어릴 적 6·25 사변 당시 산불 구경을 한 이후 처음으로 마주한 산불은 너무 너무 무서웠다”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의성군체육관에 마련된 임시대피소에는 2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자원봉사자들의 보호를 받고 있다. 김재산 기자


같은 마을주민 최현옥(76) 씨는 “22일 오후 6시쯤엔 거대한 불길이 마을을 삼킬 것처럼 순식간에 밀려왔다”며 “만약 이장이 대피하라고 안내하지 않았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끔찍하다”고 말했다.

이날 동이 트자말자 현장에 투입돼 진화작업을 벌인 서울 광진소방서 이운영 소방경은 “건조한 날씨로 산림이 바짝 말라 있어 불길이 번지는 속도가 예상보다 빨랐고 대부분이 험준한 능선이라 진화작업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 소방경은 전날 관내 음식점 화재를 진화하고 자정 무렵 사무실로 복귀하자말자 바로 의성 산불현장으로 투입됐다. 라면 한 그릇으로 아침을 때우고 화마와 맞선 그의 얼굴은 벌겋게 익어 있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안평면사무소에 마련된 현장지휘본부에서 언론 브리핑을 열고 “인근 시·도의 지원을 최대한 받아서 오늘 중 주불을 진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도지사는 “성묘객의 실화로 산불이 일어났으며 강풍을 타고 갑자기 전선이 확대돼 오늘까지 1802㏊가 불에 탔다”며 “어제보다 바람이 잦아든 덕분에 진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고 연기가 적게 발생하는 쪽으로 진화 헬기를 대거 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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