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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580
2016~2017년 이탈·분열 덕 2022년 재집권
윤석열 탄핵 각하·기각 땐 국힘 궤멸할 것
탄핵소추 뒤 보수 결집 취해 극우화 ‘독약’
국민의힘 김기현, 나경원, 박대출, 윤상현, 추경호 의원 등이 3월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각하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독일 문학가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산문이 있습니다. 긴 내용 중에서 저는 특히 이 대목에 공감합니다.

“동물원의 우리 안에 갇혀 초조하게 서성이는 한 마리 범의 모습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언제 보아도 철책 가를 왔다 갔다 하는 그 동물의 번쩍이는 눈, 무서운 분노, 괴로움에 찬 포효, 앞발에 서린 끝없는 절망감, 미친 듯한 순환, 이 모든 것은 우리를 더없이 슬프게 한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목록에 한 가지를 더할 수 있다면 “절대로 죽지 않을 것 같던 거인이 죽어가며 마지막으로 악을 쓰는 장면”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바로 12·3 비상계엄 이후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저는 12·3 비상계엄에 큰 충격을 받았지만 12월7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들어가지 않고 탄핵소추안을 부결시키는 장면을 보고 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과거에 알던 한나라당, 새누리당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국민의힘은 보수 정당입니다. 이승만의 자유당, 박정희의 공화당, 전두환의 민정당의 후신입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이 보수 정당에 편입됐습니다. 3당 합당은 야합이었지만 보수에 개혁의 유전자가 더해지면서 보수가 튼튼해졌습니다. 민자당은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으로 이어지며 영욕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국민의힘의 ‘리즈 시절’은 언제였을까요? 18년 전인 2007년이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연속 집권에 따른 피로감으로 민주당 지지도가 바닥세였던 때입니다. 한나라당에는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세 사람의 대선주자가 있었습니다. 누가 후보가 돼도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습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탈당하고 이명박-박근혜 양강 구도가 형성됐습니다. 한나라당이 친이명박과 친박근혜 세력으로 양분됐습니다. 자칫하면 분열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에는 유능한 ‘스핀 닥터’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세력 다툼을 노선 대결로 포장했습니다. 이명박은 ‘실용보수’, 박근혜는 ‘정통보수’였습니다. 한나라당은 두 대의 기관차가 이끄는 열차와 같았습니다.

살얼음판 경선에서 ‘실용보수’가 승리했습니다. ‘정통보수’는 깔끔하게 승복했습니다. 멋진 승부였습니다. 2007년 12월19일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48.67% 대 26.14%, 무려 22.53%포인트 차로 꺾었습니다.

2008년 4월9일 18대 총선 결과는 한나라당 153, 자유선진당 18, 친박연대 14석이었습니다. 통합민주당은 81석으로 주저앉았습니다. 일본 자민당처럼 보수의 영구집권이 가능하다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으로 한나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넘겨줄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에는 다른 한 대의 기관차가 남아 있었습니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개조해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2012년 4월11일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152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고, 그 탄력으로 2012년 12월19일 18대 대선도 이겼습니다.

거기까지였습니다. 2016년 4월13일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122석으로 더불어민주당에 1당을 뺏겼습니다. 총선 패배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습니다. 2016년 12월9일 국회 탄핵소추에서 새누리당 의원 128명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2017년 5월9일 19대 대선은 보수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선거였습니다.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후보가 모두 출마했습니다. 보수는 참패했습니다.

하지만 2016년 12월 새누리당 의원들의 탄핵소추 ‘이탈’과 2017년 5월 대선에서 보수의 ‘분열’은 5년 뒤 국민의힘이 정권을 되찾아오는 데 소중한 밑거름이 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국정농단을 비판하고 탄핵소추에 찬성한 ‘건전 보수’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2022년 3월9일 20대 대선에서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세 사람이 손을 잡고 윤석열 후보 당선을 도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세대교체의 상징으로 발탁했던 이준석 대표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 말은 정치에서도 진리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당선을 도왔던 정치인들을 하나씩 제거했습니다. 그리고 12·3 비상계엄을 했습니다. 망하는 길이었습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3월18일 대구 북구 경북대학교 경하홀에서 ‘개헌, 시대를 바꾸자’를 주제로 청년 토크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는 한동훈 대표가 비상계엄에 반대하며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가서 계엄을 해제하는 장면을 보고 그가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보수 세력의 새로운 대선주자로 떠오를 수도 있겠다고 봤습니다. 아니었습니다.

국민의힘 전체가 전광훈, 손현보, 전한길 등에 질질 끌려가며 극우화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정치 양극화 때문입니다. 2022년 3월9일 대선에서 보수 성향 유권자의 상당수는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가 싫어서 윤석열 후보를 찍었습니다. 물론 이재명 후보를 찍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되면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될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탄핵 반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보수가 결집했습니다. 국민의힘 지지도가 올라갔습니다.

국민의힘 의원들과 당원들과 지지자들은 신이 나서 윤석열 대통령을 더욱더 세게 끌어안았습니다. 그게 바로 ‘독약’이었습니다.

탄핵 반대 여론은 탄핵 찬성 의견을 결코 넘어설 수 없었습니다. 탄핵 찬성과 반대가 6 대 4 정도에서 고착됐습니다. 국민의힘 지지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때 민주당과 비슷하거나 잠시 앞서기도 했지만 추월하지는 못했습니다.

3월21일 발표한 한국갤럽 정례조사에서 탄핵 찬성은 58%, 반대는 36%였습니다. 정당 지지도는 민주당 40%, 국민의힘 36%였습니다. ‘정권 교체’는 51%, ‘정권 유지’는 39%였습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누리집 참고)

국민의힘의 파산 조짐은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재명 36%, 김문수 9%, 한동훈 4%, 오세훈 4%, 홍준표 3%, 이준석 1%였습니다. 이재명 대표를 제외한 다섯 사람을 다 합쳐도 21%에 불과합니다. 국민의힘에서 탄핵에 확실히 찬성하는 유승민, 안철수 후보는 아예 이름이 없습니다.

김문수 장관이 국민의힘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그는 비상계엄 전까지 존재감이 거의 없던 정치인입니다. 12월1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무위원들이 일어서서 사과할 때 혼자 자리에 앉아 버티는 바람에 순식간에 극우의 아이콘으로 등극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파면 이후 조기 대선에서 김문수 장관이 국민의힘 후보로 나선다면 당선될 수 있을까요?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국민의힘으로서는 조기 대선 패배가 그리 나쁜 일이 아닙니다. 멋지게 지면 그다음에 기회가 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힘이 두려워해야 할 최악의 시나리오는 탄핵이 각하나 기각되고 윤석열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하는 것입니다.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만약 윤석열 대통령이 돌아오면 어떻게 될까요?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탄핵심판 최종 진술에서 말했듯이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단축 개헌을 제의할 것입니다. 국민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시민혁명이 일어날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차피 퇴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의힘은 어떻게 될까요? 궤멸적 상황에 부닥치게 됩니다. 민의를 거역한 정치 집단은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뒤에 한나라당이 그랬던 것처럼 처절하게 몰락할 것입니다. 조기 대선은 물론이고 2026년 지방선거, 2028년 국회의원 총선거, 그다음 대선까지 참패할 것입니다.

이른바 보수 논객 중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돌아와서 이재명 대표의 피선거권이 박탈될 때까지만 버텨주면 국민의힘이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르는 소리입니다. 이재명 대표만 없으면 민주당을 이길 수 있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재명 대표가 아니라 다른 대선주자가 나서면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이기기는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입니다. 국민의힘이 살려면, 보수가 살려면 윤석열 대통령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의힘이, 보수가 회생의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조기 대선에서 패배해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더라도 2026년 지방선거와 2028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재기를 노려볼 수 있습니다. 그다음 대선에서 정권을 되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되도록 국민의힘 의원과 당원과 지지자들이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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