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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증 자금, 구체적인 투자 계획 모호
'꼭 유증으로 다 충당했어야' 의문도
에어로 자금으로 한화오션 지분 정리
총수 일가 '방산 지배 강화 ' 해석도
사진 제공=한화

[서울경제]

주가가 역대 최고점에 올랐을 때, 기습적으로 유상증자를 단행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 이야기입니다. 한국 증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유상증자인데도, 회사 측은 ‘보안이 생명’인 방산업계 특성상 구체적인 투자처를 밝힐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회사의 이익 흐름이 이렇게 양호한데, 모든 투자 자금을 유상증자로만 충당했어야 했나”라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주주 배정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유상증자에 최대 주주인 ㈜한화(000880)가 자금을 쏟을지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오늘 선데이 머니카페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를 두고 어떤 무성한 말들이 나오고 있는지 짚어보겠습니다.



“유증 자금, 구체적인 투자 계획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20일 이사회를 열고 3조 6000억 원 규모의 초대형 유증을 실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번 유증 자금으로 △MC 스마트팩토리 구축(6000억 원) △무인기 엔진 개발 및 양산 시설 구축(3000억 원) △사업장·설비 운영(3001억 원) △해외 방산 생산능력 구축(1조 원) △해외 방산 조인트벤처(JV)(6000억 원) △해외 조선 업체 지분(8000억 원) 등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이를 두고 증권업계에서는 자금의 용처가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입니다. 유증 규모가 주가에 작지 않은 타격을 미칠 것이 자명한데도 구체적인 설명이 없었다는 점에서 주주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지적이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기관 설명회에 참석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이러한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증자 규모에 비해서 사용처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부족하다”며 “지분 투자를 할 대상에 대한 직접적 언급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최광식 다올투자증권 연구원도 “회사가 이익을 많이 내고 있는데 굳이 유증을 이렇게 큰 규모로 했어야 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죠.

사진 제공=한화


최근 2조 원의 유증 계획을 공시한 삼성SDI는 △미국 GM사 합작법인(9047억 원) △헝가리 공장(6413억 원) △국내 전고체 배터리 라인(4541억 원) 등에 자금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그 이전의 국내 최대 규모(3조 2000억 원) 유증 사례였던 2022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에도 당시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취득(1조 2024억 원) △4공장 건설(9000억 원) 등에 활용하겠다고 상세 공개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방산업, 해외 사업 특성상 구체적으로 투자 대상을 언급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중동과 유럽 지역에서 현지 파트너들과 얘기가 진행되고 있다”고 해명하는 데 그쳤습니다.



“3.6조원, 꼭 유증으로만 충당했어야 했는지?”


기업이 투자를 단행할 때 자금을 확보하는 수단은 다양합니다. 내부 보유 현금 활용부터 금융권 차입, 회사채 발행, 증자 등이 있죠. 이 중 유증은 기존 주주들의 보유한 주식 가치를 희석해 직·간접적인 손실을 끼칠 가능성이 커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유증 예정 발행가가 유증 발표 전 주가 대비 낮은 60만 5000원으로 기존 주주들의 주식 가치 희석률은 13%에 달하죠. 실제 유증 발표 직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는 20일 시간 외 시장에서 하한가까지 밀린 데 이어 21일 장중 최대 15.79% 급락했습니다.

글로벌 방산 호황 속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1조 7000억 원대의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냈습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와 내년에도 각각 2조 8000억 원, 3조 5000억 원대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향후 2년 간 6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이 예상되는 셈이죠. 작년 말 기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보유한 수주 잔액은 103조 원에 달합니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달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무보증사채 등급을 ‘A+(안정적)’로 평가한 바 있습니다. 초대형 자본 조달을 모두 유증으로 했어야 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황어연 노무라금융투자 연구원은 “회사의 연간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2조 원 정도인데 이 정도면 차입을 해도 2년 뒤에 다 갚을 수 있는 금액”이라며 “회사가 신용등급이 낮은 것도 아니고 주주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평가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유증을 추진한 시점에 대해서도 주주들의 성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3월 20만 원 아래에서 움직였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는 20일 기준 75만 6000원을 기록하는 등 1년 새 3~4배 상승했죠. 이에 유증 직전까지만 해도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며 목표가를 올렸던 증권사들은 유증 발표와 동시에 입장을 급선회했습니다. 다올투자증권·DS투자증권이 목표가를 내렸고 삼성증권은 투자 의견을 하향 조정했습니다.



㈜한화 유증에 얼마나 참여?…“승계용 의심”도


투자은행(IB) 업계는 지분이 3.95%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최대주주인 ㈜한화)가 이번 유증에 얼마나 참여할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일단은 우리사주조합에 물량 20%를 선배정한 뒤 나머지 80%를 주주에 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한화는 9810억 원가량을 납입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죠. 하지만 ㈜한화는 지난해 말 별도 기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이 2298억 원에 불과합니다. IB 업계 관계자는 “㈜한화가 유증에 100% 참여하려면 별도 자금 조달에 나서야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시장 일각에서는 최근 이뤄진 한화오션(042660) 지분 정리에 비춰 볼 때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냐는 관측도 고개를 듭니다. 한화그룹은 최근 각 계열사로 분산된 한화오션 지분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모으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13일 한화임팩트파트너스(5.0%)와 한화에너지(2.3%)가 보유한 한화오션 지분 7.3%를 1조 3000억 원을 들여 매입했습니다. 그 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한화오션 지분은 연결기준 34.7%에서 42.0%로 확대됐고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의 방산 부문 지배력이 공고해졌습니다.

해당 거래를 통해 총수 일가의 지배력이 높은 한화임팩트파트너스와 한화에너지는 1조 3000억 원의 한화오션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한화에너지는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100%를 가지고 있고, 한화임팩트는 한화에너지가 지분 52.1%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한화그룹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현금을 우선 투입한 뒤 시차를 두고 부족해진 투자 재원 마련 부담을 일반 주주들에게 떠넘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총수 일가의 방산 지배력 강화에 주주들의 돈이 사용됐다는 지적이죠.

한편 금융감독원은 증자 규모가 역대 규모인 데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1999년 이후 처음 유증에 나선 점 등을 고려해, 이번 유증을 중점심사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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