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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권 개념, '헌법에 명문화' 규정 없고
실정법상 권리로 보호된 전례도 드물어
4·19나 5·18 등 개별법 통해 인정하기도
법조계 "尹 탄핵, 저항권 대상 아냐" 중론
"법치 불복이자, 내란·국헌 문란에 불과"
한국사 강사 전한길(오른쪽)씨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국민저항권 긴급세미나에 참석해 기조 강연을 하고 있다. 뉴시스


"불의한 재판관들이 불의한 방법으로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을 내린다면 국민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불의에 맞서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
국민저항권
을 발동하는 것이 헌법 정신에 딱 맞다."(전한길 한국사 강사, 19일 TV조선 유튜브 채널 '강펀치')

"헌재가 딴짓하면
국민저항권
으로 한칼에 날리겠다. 300명 규모의 국민저항권위원회를 조직하겠다."(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9일 광화문 주일 연합 집회)

"야구 방망이 구매 준비 중이다." "
국민저항권
발동되면 연차 쓰고 바로 참전한다."(디시인사이드 국민의힘 갤러리 '국민저항권 발동되면 다들 참전할 거냐?' 게시물 댓글)

법학·사회학 등 학문적 용어로나 접할 법한 단어 '국민저항권'이 최근 일반 대중의 입에도 연이어 오르내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과 맞물려 있는 현상이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 다시 말해 탄핵 반대를 외치는 강경 보수 세력은 이 '저항권' 개념을 끌어와 '탄핵 인용 시 국민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그들이 "헌법보다 위에 있다"고 주장하는 '저항권'은 정말로 법 위에 군림하는 만능 카드일까. 저항권의 유래와 개념을 살펴보고, 법조계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따져봤다.

명문화 안 된 저항권... '법 규범 적용' 힘들어

박근혜 전 대통령 팬클럽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가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탄핵 인용' 결정 당시 국민저항운동을 예고하며 올린 게시물. 박사모 카페 캡처


저항권의 사전적 정의는 '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국가 권력의 불법적 행사에 대해 그 복종을 거부하거나 실력 행사를 통하여 저항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
'다. 맹자의 '역성혁명론'이나 서양 중세의 '폭군방벌론' 등에서 보듯, 저항권의 사상적 뿌리는 동서양 모두에서 오래전 마련됐다. 이후 근대 시대에 접어들면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회계약론'에 근거해 오늘날의 저항권 개념이 정립됐다.

다만 대한민국 헌법에는 저항권 개념을 명문화한 규정이 없다
. 한국에서 헌법적으로 저항권을 인정할 수 있는지를 두고 학계의 견해가 갈리고 있는 이유다. 긍정 입장에선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이라는 헌번 전문의 문구를 근거로 든다. '저항권의 표현'이라 할 만한 행동이 이미 헌법에 의해 인정돼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헌법재판소는 '입법 과정의 하자와 저항권 사건'(97헌가4),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심판 사건'(2013헌다1) 결정문에서 저항권 개념을 설명하는 등 저항권의 존재를 인정해 왔다.

그러나 저항권이 실정법상 권리로 보호된 경우는 드물다. 대법원은 '김재규 박정희 시해 사건'(80도306) 판결문에서
"헌법 및 법률에 저항권과 관련해 아무런 규정이 없는 우리나라의 현 단계에서는 저항권 이론을 재판의 근거 규범으로 채용·적용할 수 없다
"는 다수 의견을 냈다. 이를 근거로 대법원은 이후 '국회가 입법 절차를 무시하거나 하자가 있는 법률을 제정한 경우'(99도3865)와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고 담당 재판장에게 상해를 가한 경우'(2008도2621)에도 저항권을 주장한 피고인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 파면이 결정되자,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장 정광용씨도 재판에서 국민저항권 발동을 언급했지만 인정받지 못했다. 정씨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일에 헌재 인근에서 집회를 주최하고, 해당 집회가 폭력 시위로 변질되도록 선동성 발언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집회에선 참가자 4명이 숨지고, 30여 명이 다쳤다. 대법원은 2019년 정씨에 대해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했다.

4·19, 5·18... '저항권 행사' 사례



물론 저항권이 법적으로 항상 부인됐던 건 아니다. 4·19 혁명이나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 민주화보상법 등 관련법은 저항권을 간접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특별법도 5·18 민중항쟁을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항해 시민들이 전개한 민주화운동
"으로 규정했다. 실제 2021년 대구지법은 5·18 당시 포고령위반죄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피고인의 재심에서
"5·18을 전후해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는 헌법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행위로 인정될 수 있다
"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세력의 '탄핵 인용 시 저항권 행사'도 위 사례처럼 사후에라도 인정받을 수 있을까. '국민저항권 발동 사유가 된다'는 견해가 있기는 하다. 윤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신평 변호사는 "오늘날의 이 거대한 변혁의 물결이 87년 체제 극복을 위해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려고 하는 거대한 시민운동으로 공인받는다면, 탄핵 기각을 외치는 이들의 정당한 저항권 행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도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저항권 긴급 세미나'에 참석해 "최종적으로는 입법청원과 (평화적) 불복종 운동을 넘어서, (법적) 질서를 넘어가는 것도 우리의 저항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15일 디시인사이드 국민의힘 갤러리에 올라온 국민저항권 관련 게시물. 디시인사이드 캡처


"탄핵 재판, 저항권 발동 상황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의견은 소수에 불과하다.
'윤 대통령 탄핵 인용'은 기본적으로 저항권 발동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 우선 저항권 발동 요건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헌재의 설명은 이렇다. "①개별 헌법 조항에 대한 단순한 위반이 아닌,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전체적 질서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있거나 이를 파괴하려는 시도
가 있어야 하고 ②이미 유효한 구제 수단이 남아 있지 않아
최후의 수단
(보충성
)
으로서 행사돼야 한다. ③또한 그 행사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유지·회복이라는 소극적인 목적에 그쳐야 하고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체제를 개혁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수 없다."

이에 비춰 보면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세력의 '저항권' 주장은 무리수라는 분석이 많다. 무엇보다
①탄핵 심판 선고 자체를 '민주적 기본질서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중대한 침해'로 판단하기 어렵다
.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탄핵 심판으로 헌법 질서가 무력화되거나 더 이상 기능할 수 없게 될 위험이 명백하게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며 "오히려 국민저항권 행사가 헌법 질서를 깨는 사실상의 내란 선동"이라고 말했다.

또 ②최후의 수단을 쓸 상황으로 보기도 힘들다. 윤 대통령은 이미 구속적부심이나 보석을 청구하는 등 재판 과정에서 합법적 수단을 통해 스스로 구제를 모색할 기회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학선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
윤 대통령은 현재 헌재를 거쳐 사법 절차로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런 구제를 받을 기회조차도 없을 때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지, 단순히 사법 시스템에 불만이 있다고 저항권을 행사하는 것은 인정받기 어렵다
"고 설명했다.

아울러 ③민주적 기본 질서를 '소극적 목적'으로 회복할지도 의문이다. 지난 1월 19일 서울서부지법 폭력 사태에서도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국민저항권을 주장하며 법원을 침탈하고 판사를 겁박해 사법부 기능을 마비시키려 했다. 민주적 기본 질서를 회복하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파괴하려 했던 것에 가깝다. 헌재 헌법연구원을 지낸 노희범 변호사는 "(윤 대통령)
탄핵 인용이 됐다고 저항권을 행사한다는 건 단순하 법치에 불복하는 것뿐이고, 내란·국헌 문란과 다름없다"
고 단언했다.

반대로 헌재의 '탄핵 기각' 결정으로 '탄핵 찬성파'가 저항권을 주장할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게 헌법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탄핵 기각 역시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재판을 했기에 헌법 질서를 침해했다고 보기 힘들다"
며 "탄핵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자기 생각과 다른 결론이 나왔다고 해서 불복하고 폭력적 방법을 행사하는 것은 '범죄 행위를 저항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與 의원, 저항권에 동조... "선 그어야" 비판

'서울서부지법 폭력 사태' 가담자들의 첫 재판일인 10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피고인 측 변호인인 이하상(오른쪽 세 번째) 변호사가 재판을 마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이러한 상황인데도 윤 대통령 강경 지지자들은 여전히 저항권을 거론하며 자신들의 불법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서울서부지법 폭력 사태로 구속된 63명 중 일부 피고인들에 대한 재판이 열렸던 지난 10일, 변호인단을 대표하는 이하상 변호사는 "국민들의 저항권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의해 보장되고 최후 수단으로 일정한 유형력 행사도 포함된다"며 "반드시 무죄 판결이 선고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여당 의원들도 여기에 동조하며 윤 대통령 지지자들을 향해 국민저항권을 부추기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국민의힘 내 '강성 친(親)윤계' 의원이자, 최근 '국민저항권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한 강승규 의원은 19일 SBS라디오 인터뷰에서 국민저항권 발동 관련 질문에 "제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결정한다"며 "그런 사태가 나지 않도록 헌재가 제대로 해야 된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 지지 세력의 저항권 행사, 다시 말해 '탄핵 인용 시 불법·폭력 시위'가 벌어진다 해도 이를 용인하겠다는 태도였다.

문제는 정치권마저 이 같은 모습을 보인다는 데 있다. 오염되고 왜곡된 국민저항권 설파에는 정치인들부터 먼저 선을 긋는 메시지를 발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 시점에서) 저항권을 주장하는 것은 헌법 위반 행동을 정당화하는 '지적 사기'에 불과하다"
며 "언론이 저항권 행사에 동조하는 정치인의 발언을 비판적으로 보도하고, 추후 선거를 통해 해당 정치인이 그에 책임을 지는 결과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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