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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부동산]


서울의 한 시중은행에서 대출 등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 시민들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 사진=김범준 한국경제신문 기자


“서울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동)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해제한다.”(2월 12일 서울시)

“은행이 대출금리를 인하해야 할 때다.”(2월 24일 김병환 금융위원회 위원장)

“부동산 관련 규제, 금융 등 모든 가용 수단을 총동원해 집값 상승 요인을 차단하겠다.”(3월 19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정부의 대출 관련 기조가 몇 주 사이에 뒤집어지며 시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지난달만 해도 정부는 집값이 안정화됐다며 서울 일부 지역에 부동산 규제를 풀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내려가는데 왜 가계대출 금리 안 내리냐며 은행권을 압박도 했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줄줄이 대출금리를 내렸다. 그러나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를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이 치솟고 가계대출이 큰 폭으로 늘자 이제는 집값을 잡겠다고 정책을 선회했다.

은행들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금리를 낮추면서 대출 문턱은 다시 높여야 한다는 당국의 주문에 묘수를 짜내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다시 빗장 걸린 수도권 대출,
딜레마 빠진 은행들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 재지정에 따라 금융당국은 최근 급증한 서울·수도권 주요 지역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과 전세자금대출(전세대출)을 집중 점검하기로 했다. 현행 월별·분기별 가계대출 관리체계에 더해 수도권은 ‘지역별’로도 가계대출 모니터링·관리를 강화한다. 강남3구와 용산구 등 지역 내 신규로 취급된 주택 대출이 크게 늘어나는지 살피겠다는 것이다. 은행이 보수적으로 주택 관련 대출을 관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전세대출도 조인다. 당초 오는 7월로 예정돼 있던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자금대출 보증의 책임비율 하향(100%→90%) 일정을 5월로 앞당긴다. 디딤돌 대출, 신생아 특례대출 등 정책대출이 주택시장 가열 요인으로 판단되면 추가 금리인상도 추진한다.

금융권엔 자율관리 강화를 주문했다. 다주택자의 신규 주담대, 갭투자(전세 끼고 매입) 관련 조건부 전세대출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은행들은 당혹스럽다. 지난해 하반기 은행권은 가계대출 총량을 관리하라는 당국의 주문에 주담대를 무주택자로 제한하거나 유주택자의 전세대출을 막는 등 초강수를 뒀다. 새해 은행들의 대출 총량이 초기화(리셋)되면서 지난해 취급을 중단했던 대출 상품을 다시 팔고 한도도 늘린 데다 금융당국의 압박에 금리까지 낮췄는데 1분기가 끝나기도 전에 다시 대출 규제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리가 가장 강력한 조치인데 현재는 쓰기 힘든 카드”라며 “지난해처럼 섹터별, 수요자별로 (은행 스스로) 대출을 제어하라는 소리인데 (은행만으로는) 가계부채를 틀어막기엔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다른 시중은행권 관계자는 “이미 주요 은행들은 조건부 전세대출을 규제하는 등 핵심 규제는 계속 유지하고 있어 일부 수요자들 사이에선 대출 문턱이 체감상으로 여전히 높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며 “금리나 이미 시행 중인 규제 외에 어떤 카드를 써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은행들은 벌써부터 대출 관리에 고삐를 죄는 모습이다. 지난해부터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했던 하나은행은 강수를 뒀다. 3월 27일부터 서울 지역 유주택자의 주담대 신규 취급을 중단한다(잔금대출 제외). 조건부 전세자금대출 신규 취급도 멈춘다.

1주택자의 주담대 규제를 완화한지 한 달된 우리은행은 풀었던 규제를 다시 강화했다. 3월 28일부터 강남3구와 용산구에서 유주택자의 주택 구입 목적 신규대출 취급을 제한하기로 했다. 대출을 신청하는 시점에 주민등록등본상 모든 세대원이 무주택자인 경우에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보유하던 주택을 매도해 무주택자가 되는 경우도 가능하다. 다만 보유 주택 매도계약서와 계약금 수령 증빙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매도 주택 잔금일도 대출실행일로부터 3개월 이내여야 한다.


NH농협은행도 3월 21일부터 서울 지역 내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 취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갭투자를 막겠다는 조치다. 농협은행은 지난해 9월 조건부 전세대출 취급을 중단했다가 올 1월 재개했으나 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기조에 두 달 만에 부랴부랴 다시 대출을 막았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 모두 조건부 전세대출을 취급하지 않는다.

지난 1월 생활안정자금 대출 한도를 없앴던 국민은행은 2월 28일부터 다주택자의 생활안정자금 목적 대출 한도를 최대 2억원으로 제한했다. SC제일은행은 3월 26일부터 다주택자 대상 생활안정자금 목적 대출을 중단한다. 임차반환자금, 타 은행 대환대출, 추가 대출도 제한한다. SC제일은행은 3월 3일부터 다주택자 대상 주택 구입 목적 주담대도 중단한 바 있다.

나머지 시중은행들은 모니터링을 강화하며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미 유주택자의 주담대 취급을 제한한 신한은행은 아직은 추가 대책이 없다는 입장이다.

◆가계대출 다시 ‘비상’

지난 2월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4조3000억원 증가했다. 1월 감소세(-9000억원)에서 증가세로 전환한 것이다(금융위원회). 5대 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올해 2월 583조3606억원을 기록했다. 1월보다 3조3836억원 늘었다. 12월(578조4634억원)과 1월(579조9770억원)의 주담대 잔액 차이가 1조5136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신규 취급건이 갑자기 2배 이상 폭증한 셈이다.

금융당국은 신학기에 맞춰 학군지 등으로 이사하려는 수요가 집중되면서 가계대출이 대폭 증가했다고 봤다. 전문가들은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해제와 7월부터 시작되는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상환비율(DSR) 제도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토지거래허가 해제로 꼭꼭 눌러왔던 부동산 대기 수요가 갭투자로 들어올 수 있게 됐고 집값 상승 기대감이 커지면서 대출이 늘어났다”고 진단했다. 이어 “일종의 풍선효과인데 DSR 제도 시행 전 미리 대출을 받으려는 이들이 몰리면서 집값을 밀어올렸다”고 덧붙였다.

실제 금융당국이 지난해 7월 도입하기로 했던 스트레스 DSR 2단계 규제를 그해 9월로 연기하면서 7~8월 대출 막차 수요가 몰려 가계대출이 폭증한 바 있다.

올해도 비슷한 모습이다. 2월 폭증했던 주담대가 3월 들어 주춤하더니 규제 강화 소식에 다시 급증하는 모습이다. 5대 은행의 신규 주담대는 3월 13일 3349억원에서 18일 6869억원으로 5일 만에 두 배 이상 늘었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대출금리가 내려가고 있는 점도 대출 수요를 자극하는 요인이다. 3월 들어 주요 시중은행들이 본격적으로 주담대 금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은행이 물꼬를 텄다. 지난 2월 28일부터 주담대 5년 변동(주기형) 상품의 가산금리를 0.25%포인트 낮췄다. 농협은행은 3월 6일부터 비대면 주담대와 개인신용대출 금리를 최대 0.40%포인트 내렸다. 하나은행은 3월 10일부터 대면 주담대(혼합형)의 가산금리를 0.15%포인트 인하했다. 신한은행은 3월 14일부터 주담대 금리를 0.10%포인트씩 낮췄다. 국민은행만 가산금리 인하폭과 시기를 아직 검토 중이다.

은행이 변동금리형 주담대 금리를 산정하는 기준으로 쓰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는 5개월 연속 하락해 지난 2월 기준 2.97%로 떨어졌다. 코픽스가 2%대로 떨어진 건 2022년 8월 이후 30개월 만이다. 올해 한국은행의 추가 기준금리 인하가 점쳐지는 만큼 대출금리 하락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금리를 낮추면서 총량을 규제하라는 주문은 사실 정책적으로 쉽지 않다. 이번 가계대출 정책도 결국 부채를 잡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총량이 줄어드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없지 않을 거고 부동산 수요를 규제로 늘렸다 풀었다 하면 가격 변동성만 커질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거시 건전성을 따져야 할 대출 규제책이 부동산 안정화 정책으로 쓰이고 있다”며 “‘똘똘한 한 채’를 조정하는 정책은 건드리지 않으니 서울로만 수요가 몰린다. 세금을 조정하든가, 타이트하게 DSR을 유지하든가, 부동산이 크게 오를 일이 없을 정도의 공급 정책이 나올 거라는 확신을 주거나 서울이 아니더라도 살 만한 다른 곳이 많다는 설득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김태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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