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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서울·순천·옥천 | 글·사진 김기쁨 여행작가

목사내아는 ‘작은 한양’이라 불렸던 천 년 고을 나주 목사의 살림집이었다. 현재는 숙소로 운영 중이다.


봄은 새롭다. 새로운 학기와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새 도전의 막이 오른다. 집 안의 묵은때를 털어내거나 철 지난 옷을 정리하기도 한다. 그래서 바쁜 계절이다. 여기저기 꽃이 피고 상춘객이 북적인다는데, 봄의 일상엔 할 일이 북적거린다.

그 번잡함에서 잠시 벗어나 한옥으로 떠나볼까. 고즈넉한 공간에서 쉬고 먹고 마시면 마음의 봄도 싹틀 테니.

천 년의 기운이 깃든 하루

나주 목사내아


나주는 ‘작은 한양’이라고 불렸다. 지금의 시나 군을 과거에는 목(牧)이라고 했는데, 전라남도의 유일한 목이 나주였다. 고려 성종(983) 때부터 1895년까지 약 천 년 동안 나주목은 호남의 행정 중심지였다. 오늘날 나주 원도심엔 그 역사를 간직한 건물들이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차분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감돈다. 그 평온함이 햇살처럼 깃든 곳으로 향했다. 천 년을 이어온 목. 그 목을 다스리던 목사의 살림집인 목사내아다. 1980년대까지는 나주 군수가 생활하기도 했다.

목사내아는 단정하다. 그 또 다른 이름은 금학헌(琴鶴軒).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학처럼 고고하게 살아가는 군자의 지조가 깃든 집’이라는 뜻이다. 선비를 닮은 이 집은 현재 숙소로 운영 중이다. 객실 이름도 남다르다. 유교에서 강조하는 덕목인 인의예지(仁義禮智)가 각 방의 이름이 되었다. 억울한 백성이 없게 살폈다는 김성일 목사, 청렴한 정치를 펼쳤다는 유석증 목사의 이름이 붙은 방도 눈길을 끈다.

목사내아 마당에 자리한 거대한 팽나무는 행운의 상징이다. 태풍이 치던 1980년대 어느 날 벼락을 맞아 두 쪽으로 갈라졌다는데, 강인한 생명력으로 기적처럼 살아났다. 사람들은 팽나무에 살포시 손을 대고 저마다의 소원을 빈다. 목사내아 주변으로는 중앙 관리의 숙소이자 지방 궁궐이었던 금성관, 나주관아의 정문인 정수루, 나주읍성의 서쪽 성문인 영금문 등이 있다. 봄은 짧지만 천천히 동네 산책하듯 여행을 즐겨 보자. 목사들의 지혜와 천 년 고을의 기운이 마음에 여유를 더한다.

쉼 없이 쏟아지는 즐거움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옥천전통문화체험관은 한옥이자 체험 명소다. 공예 체험부터 오란다, 떡 만들기까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옥천은 걸어서 여행하기 좋은 지역이다.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 옥천향교, 사마소 등 여행지들이 구읍에 밀집한 덕분이다. 옥천 구읍 여행 코스가 만들어질 정도다. 골목과 벽화, 자연이 어우러진 가운데 여러 채의 한옥이 보인다. 구읍의 또 다른 명소, 옥천전통문화체험관이다.

옥천전통문화체험관은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나가고자 2020년에 문을 열었다. 1만3118㎡의 부지에 다섯 개 동의 큰 한옥이 있다. 숙박동과 전시동, 체험동, 커뮤니티센터로 구분되는 한옥은 서로 널찍하게 거리를 두고 배치된 터라 여유롭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체험이다. 전통문화체험관이라는 이름에서부터 그 정체성이 명확하다. 전통가구와 누비 소품 만들기, 사찰음식 체험, 사물놀이 등 그 종류가 정말 다채롭다. 오란다와 떡 만들기, 아기자기한 공예 체험은 특히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정월대보름, 단오, 추석, 동지 등 절기에 맞춘 세시풍속 체험도 진행된다. 일 년 내내 쉴 틈 없이 체험이 이어지는 셈. 너른 마당에선 전통 놀이를 상시로 즐길 수 있다. 다 큰 어른들도 이곳에서만큼은 서로 솜씨를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다.

옥천전통문화체험관은 가족과 단체 방문객이 많다. 동심을 자극하는 체험은 물론 감성 가득한 숙소가 있기 때문. 누마루 객실에서는 창밖으로 한옥과 잔디밭이 펼쳐지고, 8인실 한옥에는 우리만의 마당이 존재한다.

옥천전통문화체험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이런 인사말이 보인다. ‘누구나 모두 신명 나게, 친근하게 우리의 풍류와 멋을 즐기는 마당으로 초대합니다.’ 과연 체험관 어디서든 웃음소리가 들린다. 일상과 잠시 거리를 두기로 했다면 우리에게 할 일은 하나다. 그저 즐기면 된다. 마음 내키는 대로, 신나게. 그런 곳이 옥천에 있었다.

누구에게나 열린 한옥

서울 북촌문화센터


가장 가까운 한옥 여행, 북촌을 빼놓을 수 있을까? 서울 북촌문화센터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공 한옥 제1호다.


진짜 한양, 서울에서 한옥 여행을 떠난다면 목적지는 물론 북촌이다. 카페, 식당, 갤러리, 숙소로 변신한 한옥들이 모인 동네다. 동시에 북촌은 실제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다. 누군가에겐 여행지이지만 누군가에겐 일상의 공간이란 뜻이다. 그래서 조심스럽다. 궁금하다고 문을 벌컥 열 수는 없으니까.

다행히 북촌에는 개방 한옥이 있다. 서울시에서 매입해 문화 공간으로 운영 중인 서울 공공 한옥이 그 주인공. 20여채의 공공 한옥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전시, 공방, 체험 등 다양하다. 덕분에 마음이 가는 몇 군데만 돌아봐도 훌륭한 한옥 여행이 완성된다.

그 시작은 제1호 공공 한옥인 북촌문화센터다. 안국역에서 북촌으로 가는 초입에 위치해 지나치기 쉽지만 가장 먼저 들러야 하는 곳이다. 여행 지도와 책자 비치는 기본, 북촌의 역사와 한옥의 특징을 전시로 만날 수 있다. 북촌 여행지의 출발점이랄까.

북촌문화센터는 조선 말기 세도가였던 민형기의 집을 복원한 한옥이다. 1900년 이전에 지어진 양반집의 전형으로 규모도 크다. 옛 모습을 간직한 문간채, 행랑채, 사랑채, 안채는 전시관과 체험 장소 등 저마다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았다.

사랑채는 현재 문화센터다. 평일에 열리는 북촌문화강좌가 이곳에서 진행된다. 민화, 전통 자수, 꽃꽂이, 가야금 등 우리 전통문화를 배울 수 있다. 안채는 누구에게나 열린 방문객 쉼터다. 옛 정취를 머금은 방은 여행자에게 포근한 휴식을 선사한다. 봄이라기엔 조금 쌀쌀한 날, 두 다리 쫙 펴고 뜨끈한 방에 앉으니 근심도 녹아내린다. 번잡함은 가고 편안함만 남았다.

차 한 잔의 향긋한 휴식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 한옥에서 즐기는 차 한 잔의 여유, 비용은 무료다.


조선의 문인 허균은 ‘작설차는 순천 산이 제일 좋다’는 글을 남겼다. 그가 좋아했던 순천 야생차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도선국사가 선암사에 차 나무를 심었고, 고려시대에는 대각국사가 송나라에 차를 수출했다고 전한다. 오래전 야생차가 자라던 순천 조계산 자락에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이 있다. 선암사로 가는 길, 체험관에 가기 위해선 안내판을 따라 옆길로 빠져야 한다. 숨을 몰아쉬며 경사로를 오르면 우아한 한옥 건물이 등장한다.

방문객들을 먼저 맞이하는 건 전시관이다. 순천 야생차의 역사를 짧고 굵게 다룬 공간이다. 전시관 입구에선 순천 다원들이 차 시음의 기회를 제공한다. 차마다 다른 효능 이야기와 함께 찻잔은 쉼 없이 계속 채워진다. 비용은 무료. 차보다 더 따뜻한 인심이다.



다도와 다식 만들기 체험도 가능하다. 숲으로 둘러싸인 한옥에서 즐기는 차 한 잔은 생각보다 큰 위안이 된다. 달그락거리는 찻잔 소리와 바람 소리만 들리니 하룻밤 묵어도 좋겠다 싶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더니, 숙박을 위한 방도 있단다. 누구나 이곳에선 쉼을 꿈꾸나 보다. 순천 차를 주제로 한 비정기 프로그램도 인기다. 오는 30일부터 4월4일까지는 순천 미식 주간을 맞아 차 명인과 함께하는 차 체험이 진행된다. 식품명인 제18호 신광수 명인 전수자인 신선미 대표와 순천만국가정원에서 다도를 체험할 수 있다고. 향긋한 봄, 한 잔의 차와 함께 느긋함을 즐겨보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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