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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봉건주의

세드릭 뒤랑 지음 | 주명철 옮김

여문책 | 312쪽 | 2만원


1970년대 시작된 스타트업의 성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 밸리의 성공담은 2025년 현재에도 회자된다. 알파벳(구글 모회사), 페이스북, 넷플릭스, 테슬라 등 대형 첨단기술 기업의 본사가 밀집한 이곳엔 ‘대담한 상상력을 지닌 젊은 엔지니어들이 기회를 얻어 크게 성공할 수 있는 땅’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디지털 세상이 태동하던 때에나 들어맞던 얘기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세드릭 뒤랑은 “어제의 친근했던 (실리콘 밸리의) 스타트업들이 오늘날에는 치열한 독점 기업들로 변모했다”고 말한다. 우리의 데이터를 일거수일투족 흡수하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을 떠올리면 된다. 쇼샤나 주보프가 <감시자본주의 시대>에서 말하듯, 이 독점 기업들은 ‘빅 아더(Big Other)’로서 우리를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뒤랑은 IT 기업들이 만들어낸 ‘디지털 영지’에 시민들이 예속되는 이른바 ‘기술 봉건주의’를 우려한다. 그의 관심은 초국적 기술기업이 수집한 데이터로 생성되는 알고리즘에 있다. 뒤랑은 알고리즘을 “존재를 확률로 축소하려는 시도”라고 정의하며 “이는 개인과 공동체가 자신의 미래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만들 위험을 내포한다”고 말한다.

책은 소수의 초국적 기술 기업이 데이터를 ‘권력’처럼 휘두르는 것을 견제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위르겐 하버마스 등 유수의 사회학자·심리학자·경제학자들을 고루 인용한다. 학술 인용이 많아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진 않지만, 뒤랑은 “기술혁명이 개인의 자율성과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주장을 꼼꼼히 논증한다.

알고리즘의 ‘보이지 않는 손’은 어디에라도 뻗칠 수 있다. 뒤랑은 거대한 ‘빅데이터 제국’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선 개인이 주체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IT 기업이 제공하는 편리함에 숨겨진 함정을 독자가 인지할 수 있도록 짚어주는 지침서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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