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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1시 20분쯤 고속터미널역 지하상가 앞에는 '번개 짝퉁 판매'가 열렸다. 10여 명의 사람이 돗자리 주위로 몰려 들어서 가방을 만져보고 있다. /김정은 기자

“여기 불법 단속 지역이라서 빨리 팔고 가야 돼. (가방) 하나 가져가. 샤넬 15만원에 줄게.”

지난 20일 오후 1시 20분쯤 서울 서초구 잠원동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통로 한 켠에 ‘번개 시장’이 열렸다. 샤넬, 에르메스, 보테가 베네타, 버버리 등의 로고가 박힌 가방 15개가 바닥에 깔린 돗자리 위에 펼쳐져 있었다.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성 판매자는 “시간 끌면 다 팔려. 손에 쥔 거 15만원에 해줄 테니까 빨리 들고 가”라며 고객들을 재촉했다.

9분43초만에 짝퉁 백 15개 완판, 30분 뒤 또 15개 완판
돗자리를 둘러싼 고객 11명은 ‘짝퉁 명품’ 가방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한 고객이 샤넬의 클래식 미니 크로스백을 보여달라고 하자, 판매자는 “캐비어 가죽에 내부 빨간색 디테일도 똑같아. 체인도 백금이야”라며 제품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어디 가서 이런 명품 못 구해. 5만원짜리 싸구려 가방 사지 말고 15만원 내서 가방 하나 사”라며 부추겼다. 이 가방 정품 가격은 500만원 안팎이다. 판매자 뒤에는 ‘물품 판매 금지’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한 주부는 옆에 있던 기자에게 “젊은 사람이 명품 보는 눈이 없네. 이거 다 A급이야. 이태원 (짝퉁 매장에) 가서 사면 이거 하나에 최소 40만원이니까 여기서 빨리 사는 게 이득이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판매자에게 “아저씨 저 15만원 입금했고 하나 더 볼게요”라면서 보테가 베네타의 카세트백 짝퉁 제품을 만지작거렸다.

왼쪽은 서울 고속터미널역 지하 거리에서 판매하는 15만원 짝퉁 샤넬백, 오른쪽은 인터넷에서 판매 중인 519만원 샤넬백이다. 언뜻 보면 비슷해보이지만, 로고 모양과 디테일이 진품과 다르다. /김정은 기자

번개 시장 상인이 돗자리를 펴고 판매를 시작한 지 9분 43초 만에 가방 15개가 완판됐다. 1개 파는 데 38초 걸린 셈이다. 판매자는 자리를 비우는 듯하더니, 15분쯤 뒤 돗자리를 다시 펴고 어디선가 가져온 새로운 짝퉁 가방 15개를 팔기 시작했다. 다시 주변에 10여 명이 몰렸고, 이번에는 17분21초만에 다 팔렸다. 가방 1개에 15만원쯤 했으니, 27분4초만에 판매자는 450만원을 번 셈이다.

판매자들은 단속을 피하려 망보는 사람도 뒀다. 짝퉁 제품이 놓인 돗자리에서 5m쯤 떨어진 곳에서 한 남성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망을 봤다. 행인이 이 광경이 신기한지 사진을 찍자 판매자가 다가가 “여기 사진 찍히면 안 돼. 좀 지워주셔”라고 말하기도 했다.

주변 상인들은 불만… “경찰에 신고해도 조치 안 하더라”
번개 시장 주변에서 임대료를 내며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는 상인들은 경찰에 신고해도 불법 영업이 근절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 상인은 “우리는 세(임대료)를 월 300만원씩 내고 영업하는데 그 사람들은 무상으로 한다”고 말했다. 지하상가 관계자는 “경찰에 신고도 해봤지만 소용 없더라”며 “경찰이 오면 짝퉁 명품을 압수해 갈 줄 알았는데, 딱히 특별한 조치를 안 하더라. 이제는 포기했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단속이 이뤄질 수 있도록 보안 인력을 배치하고 있다”면서도 “(번개 시장 상인들이) 무전기를 들고 조직적으로 활동해 근절에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지난 7일 오후 1시 55분쯤 같은 장소에서 짝퉁 명품을 판매하고 있다. 기자가 사진을 찍자, 감시책이 사진을 찍지말라며 사진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김정은 기자

명동서 열흘 간 짝퉁 3500여 점 압수 동대문에선 합동 단속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와 달리 서울 중구 명동과 동대문 일대에서는 짝퉁 명품 판매 단속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허청 상표특별사법경찰(상표경찰)은 지난달 13일부터 24일까지 명동 거리 일대를 집중 단속해 매장 6곳에서 3544점의 짝퉁 명품을 압수했다. 이 짝퉁이 정품이라면 가격은 총 200억원에 달한다. 상인들은 호객꾼(일명 삐끼)를 통해 외국인 관광객을 유인한 뒤 매장 내 비밀공간에 있는 짝퉁 명품을 판매했다.

동대문 새빛시장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앞에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3시까지 펼쳐지는 100여개의 노란 천막 시장을 말한다.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짝퉁 명품을 살 수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특허청 상표경찰과 서울시, 서울 중구, 서울 중부경찰서는 작년 3월과 5월, 7월 세 차례 새빛시장에 합동 단속을 실시했다. 노란 천막에서 팔리고 있던 루이비통, 샤넬, 구찌 등 유명 로고가 박힌 짝퉁 명품 1173점을 압수했고, 상인 11명을 입건했다.

단속이 반복되면서 적발되는 짝퉁 명품은 854건→217건→102건으로, 입건된 상인도 6명→4명→1명으로 줄었다. 상표경찰과 지자체, 경찰의 합동 단속이 짝퉁 명품 유통을 막는 데 효과를 낸 셈이다. 특허청은 협업 단속 모델을 대구 서문시장과 부산 국제시장 등 전국 유명 시장으로 확대해 단속을 강화할 계획이다.

짝퉁 명품을 제작하거나 판매하는 것은 상표법 위반으로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게 된다. 다만 구매자는 짝퉁이라는 걸 알고 샀더라도 처벌받지 않는다.

그래픽=정서희

“이거 짝퉁인데 싸게 잘 샀다”고 아예 대놓고 만족감 나타내기도
짝퉁 명품 판매 단속을 강화하더라도 완전히 근절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짝퉁 명품은 일반 소비자가 ‘직구’하는 형식으로도 유통되고 있다. 특허청이 국내 소비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작년 11월 한 명품 브랜드의 슬리퍼·샌들 16개를 사봤더니 전부 짝퉁으로 판명되기도 했다. 해외에서 수입되는 짝퉁 물량도 많다. 관세청이 작년 11월 한 달간 수입되는 물품을 집중 단속하자 짝퉁 물품 14만2930점이 적발됐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명품은 갖고 싶은 욕구가 강하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을 때 짝퉁을 찾게 된다”고 했지만, 최근에는 명품을 사는 이유가 과거와 달라진 측면이 있다고 했다. 곽 교수는 “MZ 세대는 가짜를 진짜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불편함을 느끼고 싶어하지 않는다”면서 “차라리 ‘이거 짝퉁인데 얼마 안 한다. 싸게 잘 샀다’고 아예 드러내 보여 더 나은 소비를 했다는 만족감을 얻기도 한다”고 말했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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