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2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민주당 원내부대표단의 윤석열 대통령 신속 파면 촉구 기자회견 도중 얼굴에 계란을 맞아 닦아내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오전 MBC라디오에 출연한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을 연신 “최상목”이라고 불렀다.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라는 긴 직함을 깡그리 생략한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전날 최 대행을 “직무유기 현행범”이라며 “몸 조심하라”고 한 마당에 재선 고 의원이 최 대행의 직함을 생략한 건 어찌 보면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임명을 촉구하며 최 대행 탄핵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민주당의 강경 기류를 직함 빠진 “최상목” 지칭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문제는 이런 지칭 생략 공세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점이다. 고 의원은 2023년 9월 당시 국회에서 마주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을 “이동관씨”라고 불러 국민의힘의 반발을 샀다. 당시 고 의원은 “(이 위원장이) 답변하는 것을 보니 도저히 (위원장이라고) 부를 수 없다”며 ‘이동관씨’가 멸칭임을 분명히 했다. 그래도 그때는 ‘씨’라도 붙였지만 이번엔 최 대행에게 그 ‘씨’마저도 떼어버렸다.
물론 여당이라고 다를 건 없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재명 대표를 그냥 “이재명”이라고 지칭하는 모습은 흔하다. 지난 19일 최 대행에 대한 이 대표의 “몸 조심하라”는 발언이 나오자 초선 주진우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 대표의 직함을 떼고 “이재명”이라고 적었다.
같은 당 초선 박정훈 의원은 이 대표를 “이재명”으로 지칭한 지 꽤 됐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 글에 이 대표를 “이재명”이라고 쓰며 “파렴치한 잡범”이라거나 “위증교사범” “법카유용범” “검사사칭범” “음주운전범” 등으로 수식한다. 지난달 4일엔 우원식 국회의장의 민주당 편향 논란을 언급하며 “민주당 졸개 우원식”이라고 적기도 했다.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탄핵에 찬성하는 시민들(왼쪽)과 탄핵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과거에도 여야가 갈등하다 상대 정치인의 직함을 생략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일상은 아니었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최소한의 정치 기제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정치 실종’이란 말이 일상화되며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의 뜻이 담긴 직함마저 생략해가며 상대를 공격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니 여의도에서 여야가 해결할 일을 서초동(법원)으로 가져가거나 재동(헌법재판소)으로 보내 ‘정치의 사법화’를 스스로 초래하고 있다. 일종의 직무유기이자 극단적인 정치 무능 행태인 셈이다.
신동욱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20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날계란을 얻어맞은 백혜련 민주당 의원에 대한 입장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어느 당 지지자가 던진 건지 파악하고 말하겠다”고 했다. 같은 계란 던지기여도 지지 정당에 따라 유·무죄가 달라지거나 피해자의 고통 강도가 달라지기라도 한다는 건가. 신 의원은 ‘우리는 어떠한 폭력에도 반대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발언도 하지 않았다.
헌재가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 어떤 결론을 내리든 당분간 한국 사회는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위중한 시기에 상대를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정치의 기본을 지키지 않는 이들이 정치적 내전 상황의 종식과 국민 통합을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우려가 앞선다. 상대에 대한 조롱과 멸시는 지지층에게 반짝 인기를 얻게 하겠지만, 그 후과(後果) 또한 뒤따를 것이다. 침묵하는 다수의 유권자는 다만 조용할 뿐,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