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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욱 문화에디터 겸 문화부장

공포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잔인하거나 오싹한 장면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을 감게 된다. 그럼에도 최근 두 편을 연달아 봤다. <파묘> 이후 이런 장르에 대한 거부감이 덜해지기도 했지만, 볼만한 다른 영화가 없기도 했다. 먼저 선택한 영화는 <검은 수녀들>이었다. <파묘>를 만든 감독의 전작 <검은 사제들>과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홍보사 마케팅에 속아 내심 기대했지만 개봉 당일 영화를 본 뒤 적잖이 실망했다. 이야기는 길을 잃었고, 배우들은 겉돌았다. 작품성을 떠나 재미가 없었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졸음을 쫓느라 허벅지를 꼬집었다.

또 다른 영화는 <사흘>이다. 장례식장을 무대 삼아 3일장을 시간순으로 나눈 구성은 괜찮았지만, 거기까지였다. 수수께끼는 한순간 게으른 방식으로 풀렸다. 11년 만에 컴백했다는 박신양은 영화 내내 죽은 딸 이름만 불렀으며, 이민기의 연기는 어색했다. ‘연기의 신’ 박신양은 물론이고, <나의 해방일지> 등에서 준수했던 이민기는 연기를 못하는 배우가 아니다. 배우들이 영화가 산으로 가는 걸 알았거나, 아니면 감독 디렉션이 문제였을 것이다. OTT로 봤는데, 영화 제목처럼 사흘에 걸쳐 간신히 관람을 마쳤다.

시간 낭비했다고 퉁치면 될 일인데, 직업병이 도졌다. 두 영화의 실패는 오직 만듦새 때문만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 것이다. 영화보다 공포스럽고 기괴한 현실 탓에 두 작품이 시시하게 비친 것은 아닌가. 되돌아보니 김건희·윤석열 부부가 국정을 운영한 시간 동안 한국은 무속의 기운이 드리워진 불길한 사회였다. 무속의 기운에 홀린 윤석열은 손바닥에 ‘왕’ 자를 쓰고 대선 토론에 나섰으며, 대통령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겼고, 해외 순방 일정까지 바꿨다. 이태원에서 수많은 국민이 죽었음에도 그가 짓던 무감한 표정은 오컬트 영화 속 무엇엔가 홀린 듯한 빌런과 겹쳐진다. 실제 윤석열의 뒤에는 주술사 김건희가 있었다. 용산 어디선가 까마귀 울음소리라도 들릴 것 같다.

공포영화의 클라이맥스는 12·3 내란이었다. 예고 없이 TV에 등장한 윤석열, 국회 창문을 깨뜨리고 침입한 군인들, 일상을 깨는 한밤의 폭력은 우리가 공포영화보다 더 공포스러운 오늘을 살고 있다는 증거였다. 게다가 내란 기획자는 장군 출신 노상원 버거보살로 드러났다. 무속의 힘까지 빌려 내란을 시도했다니, 공포영화로 만든다면 이렇게 창의적일 수가 없겠다. 업무 복귀 같은 헛꿈 그만 꾸고 윤석열이 남은 인생 감옥에서 공포영화 시나리오나 쓸 것을 권한다.

이뿐인가. 집권여당은 좀비물을 찍었다. 총선에서 궤멸적 참패를 당한 국민의힘은 내란 수괴를 배출함으로써 정치적인 숨이 끊겼다. 그런데도 죽은지 모르고 몰려다닌다. 아스팔트 난동세력을 선동하고, 헌법재판소를 협박한다. ‘계엄에 찬성하지 않지만 탄핵에는 반대한다’는 그들의 무논리는 뇌가 없는 좀비의 입에서 나오는 단말마적 괴성과 다를 바 없다. 게다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지연되고, 난동세력이 거리를 활보하면서 공포영화는 아직 상영 중이다. 감독 김건희, 주연 윤석열, 조연 국민의힘. 동서양 공포가 결합한 영화 제목은 <무당과 좀비>쯤 되겠다.

탄핵심판 국회 측 대리인인 장순욱 변호사는 최후변론에서 ‘시인과 촌장’의 노래 ‘풍경’을 인용했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한 구절이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되는 실험적 구성의 곡이지만, 서정적 멜로디 덕에 여운이 깊다. 장 변호사는 “이 노랫말처럼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우리도 하루빨리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라도 명곡이 재조명되는 것은 반갑다. 하지만 윤석열과 잔당들의 선동으로 분열된 우리 사회가 이전 일상으로 당장 복귀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하니 우울해진다.

지금 필요한 건 <범죄도시> 같은 영화일지 모른다. 해괴한 논리로 내란 혐의를 발뺌하고 극우층을 선동하는 윤석열, 이런 자를 옹호하는 국민의힘과 검찰 잔당들에게는 마동석의 화끈한 주먹이 필요하다. “너 법대로 하면 안 되겠다. 진짜로 좀 맞아야겠다.” “진실의 방으로.” 그러고 보니 <범죄도시 5>가 나올 때도 됐다. 윤석열과 일부 정치 검사, 국민의힘 친윤 등이 빌런으로 나온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마동석과 윤석열의 어퍼컷 대결이 벌어진다면 두 번, 세 번 볼 용의가 있다. 결과는 싱겁겠지만, 속은 후련할 것 같다. 이렇게라도 내 안의 우울을 털어내고 싶다.

이용욱 문화에디터 겸 문화부장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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