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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이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발표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재만 |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

지난 2월12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른바 ‘대청잠삼’ 4개 동(강남구 대치·청담·삼성동, 송파구 잠실동)의 아파트 291곳에 대해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했다. 시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그동안 미진했던 많은 재건축, 재개발 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하면서 향후 부동산 시장에도 활력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각종 규제완화 일변도의 정책으로 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는 오세훈 시장의 공약이 부동산 시장 침체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자 부동산 투기를 부추겨 시장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하기에 이른 것이다. 해제 당시 많은 전문가와 시민사회는 그동안 오세훈 시장의 각종 규제 완화에 토지거래허가구역까지 해제하면 다시 투기가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었다. 그럼에도 최근의 금리 인하와 함께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강행하자 서울 강남 3구에서 거래가 늘면서 집값이 크게 오르고, 수개월간 하락세를 보였던 서울의 다른 지역으로 상승세가 확산했다. 갭 투기도 다시 크게 늘었다. 우려했던 대로 부동산 투기가 불사조처럼 다시 살아난 것이다.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성급한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거세게 비판하자 서울시와 정부는 3월19일 서울 강남·서초·송파·용산구 소재 전체 아파트에 대해 3월24일부터 6개월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다시 확대 지정했다. 오락가락 행정의 전형이다.

토지거래허가제도는 토지 투기가 극성이던 1979년에 도입되었다. 이후 국가 경제와 부동산시장 사정을 고려해 지정과 해제를 반복해왔다. 토지거래허가제도는 토지를 합리적으로 이용하고 적정하게 거래함으로써 토지거래 질서가 문란해지는 것을 방지하고, 토지 이용의 유용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일종의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이다. 주거용 토지는 매수자가 토지이용계획서와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하여 자기 거주용임을 입증해야 토지 거래를 허가한다.

토지거래허가제도가 과도한 재산권 침해, 사적 자치의 원칙 침해, 과잉금지 원칙 위반을 사유로 위헌이라는 주장이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시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왜 전 구역을 해제하지 않고 일부 지역만 해제했었는지, 그리고 왜 다시 확대 지정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더욱이 그의 생각과 다르게 헌법재판소는 1989년에 이어 1997년에도 토지거래허가제도가 사유재산 제도를 부정하지 않고 투기적 거래의 억제를 위해 토지의 처분을 제한하는 데 그치고 있어 헌법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반면 토지거래허가제도가 지가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는 거의 없다는 실증연구가 많지만, 투기적 거래를 억제하는 효과는 거두고 있다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이번 오세훈 시장의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와 확대 재지정 사태는 곧 토지거래허가제도의 긍정적인 효과를 인정한 셈이다. 규제는 불가피할 때 최소한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오세훈 시장도 결국 “독점이나 투기 등으로 시장이 왜곡되기 쉬운 분야에서는 정부의 개입이 필요”함을 깨달은 모양이다. 오세훈 시장은 투기를 부추겨 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성과를 바탕으로 향후 대선에서 지지율 상승을 노렸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정책 실패를 범하고도 그 실패에서 배우는 겸허하고 지혜로운 자세를 보이기는커녕 토지거래허가제를 여전히 반시장적 규제라고 주장하는 어처구니없는 모순적 행태를 보였다.

민간은 집값이 오를 때만 주택을 공급하려고 한다. 오세훈 시장은 민간 주도로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부동산 시장의 활성화를 꾀했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는 언제든지 여건만 되면 활활 타오를 수 있는 꺼지지 않는 불씨다. 극심한 지역 양극화로 부동산 투기의 성지가 된 서울 강남의 아파트는 두말할 것도 없다. 시장 침체기에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서는 그동안 전 정부에서 추진했던 공공 재개발, 공공 재건축,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 등 공공의 역할을 더 확대했어야 했다. 정치적으로 전 정부의 정책은 무시하고 자신의 정책만 빛나게 하려다 혼란을 자초한 셈이다. 마치 제2의 무상급식 사태를 보는 듯하다. 정치적 혼돈에 경제적 혼돈과 정책적 혼돈까지 겹쳐 우리 사회의 앞날이 어둡기만 하다. 경박한 정책으로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 주거권을 보장하라는 헌법 가치를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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