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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부산 중구 영주동 한 아파트 전경. 지어진 지 49년 된 이 아파트엔 최근 중구가 운영하는 빈집뱅크를 통해 50대 염모씨가 입주했다. 김민주 기자

지난 18일 부산 중구 영주동의 한 아파트 단지. 지어진 지 49년 된 90세대 아파트로 탁 트인 부산항 전망을 내려다볼 수 있는 산복도로에 자리했다. 이 가운데 2년간 사람이 살지 않던 15평(49.6㎡) 빈집에 50대 염모씨가 지난달 입주했다. 그는 "서울에 살다 몇년 전 부산에 와 서비스 일을 하고 있다"며 "직장이 부산진구에 있어 그 부근에 살았는데 월세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직장까지 버스로 20여분 거리인 중구의 빈집에 2년간 2000만원 전세로 입주했다. 부산 도심권에선 기대하기 힘든 좋은 가격이어서 매우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1월 부산 중구 영주동 한 아파트의 염모씨기 입주할 집 수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부산 중구
그의 집 내부는 50년 된 아파트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깨끗했다. 염씨는 "빈집에 입주하겠다고 하니 중구에서 집수리 비용으로 500만원을 지원해줬다. 싱크대와 주방을 포함해 화장실, 거실 등을 깨끗하게 수리할 수 있었다"고 했다.



‘A급 빈집’ 추려 수수료ㆍ수리비 준다
염씨는 부산 중구가 지난 1월부터 운영한 ‘빈집뱅크’를 통해 이 아파트에 입주했다. 행정 기관은 1년 넘게 사람이 살지 않은 집을 ‘빈집’으로 분류한다. 통계청 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서울을 포함한 8대 특ㆍ광역시 가운데 부산의 빈집이 11만4245채로 가장 많다.

염씨가 입주한 아파트 내부 수리 전 모습. 사진 부산 중구
빈집뱅크는 부산에서도 ‘악성 빈집’이 많은 것으로 인식되는 원도심권 지자체인 중구가 고안해 낸 온라인 기반 빈집 플랫폼이다. 단순히 빈집 정보를 제공하는 데서 나아가 중구가 전ㆍ월세 등 임차 계약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빈집 플랫폼과 구별된다.

빈집뱅크엔 ‘빈집과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상 1ㆍ2등급에 해당하는 중구 관내 빈집 정보가 계속해서 등록되고 있다. 1ㆍ2등급 빈집 중엔 곧장, 혹은 가벼운 개보수만 거쳐도 사람이 살 수 있을 만큼 관리가 잘 된 이른바 ‘A급 매물’이 많다. 중구 소재 빈집 600여채 가운데 현재까지 빈집뱅크에 등록된 건 30여건이다.

차준홍 기자
중구에 점포를 둔 빈집뱅크 협력 공인중개사들이 이런 정보를 보고 찾아온 손님을 안내하고, 집주인과 임대 계약을 맺는 걸 돕는다. 중개 수수료는 중구가 낸다. 이에 더해 계약 성사를 끌어낸 중개사에겐 활동비(건당 약 10만원)를 주고, 입주가 예정된 빈집 한 채당 500만원까지 집수리 비용을 지원한다.

염씨가 입주한 아파트 수리르 마친 이후의 모습. 사진 부산 중구
수리 업체는 집주인과 세입자가 의논해 지정하고, 수리엔 세입자 의견을 더 많이 반영하도록 했다. 세입자 입주가 확정된 집에만 수리 비용을 지원해, 사전에 수리한 뒤 세입자 등을 찾는 기존 ‘햇살둥지사업’과도 차별을 뒀다. 중구엔 올해 빈집뱅크 관련 집수리ㆍ중개 수수료 등 예산으로 2억8000만원이 잡혀 있다.



부산역 옆 생활인구 50만 빈집, 서울서도 문의 전화
중구는 빈집뱅크를 통해 철거 이외의 수단을 통한 빈집 문제 해소를 시도 중이다. 각 지자체는 빈집 현황을 파악하고 철거에 따른 범죄ㆍ사고 발생 예방 효과 등을 따진 뒤 집주인 동의를 받아 철거한다. 중구는 최근 5년 동안 매년 3~6채의 빈집을 철거했는데, 이 기간 한 채를 철거하는 데 드는 비용이 1000만원에서 1400만원으로 뛴 것도 빈집뱅크 구상의 배경이 됐다.
부산 중구가 운영하는 빈집뱅크 웹페이지. 동네별로 임차 가능한 빈집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부산 중구

임차 계약을 유도해 빈집에 사람을 들이는 구상은 중구의 독특한 여건 덕분에 가능했다고 한다. 중구의 면적은 2.9㎢이며, 인구는 3만7000명에 불과한 소도시다. 하지만 부산 원도심이었던 중구는 부산역(동구)을 지척에 둔 데다 국제시장ㆍ자갈치시장ㆍ부평깡통시장 등 대형 전통시장과 BIFF(부산국제영화제) 거리, 부산항 연안여객터미널 등 인프라를 갖췄다. 부산의 핵심 버스ㆍ지하철 노선이 지나 중구를 오가는 생활인구는 하루 50만명에 달한다.

이런 여건인데 빈집뱅크에 오른 매물의 전ㆍ월세는 부산 평균과 비교하면 30~80%가량 저렴하다. 운영 2달여 만에 빈집뱅크를 통해 5채의 빈집이 세입자를 찾았는데, 계약 기간 2년 기준 전세가는 2000만원, 보증금은 300~500만원이며 월세는 20만원에 계약이 이뤄졌다. 세입자들은 대개 중구에 있는 직장ㆍ병원에 다녀야 하지만 일반 매물의 전ㆍ월세에 부담을 느끼던 이들이었다고 한다.

부산 중구가 운영하는 빈집뱅크 웹페이지. 매물별로 정보와 가격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부산 중구
중구 건축과 조우창 주무관은 “집주인들로서는 장기간 비어 거래를 포기했던 빈집에 500만원의 수리 비용을 지원받고 세입자를 들일 수 있어 반가워한다. 대신 전ㆍ월세를 낮출 수 있도록 협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을 포함한 타 지역에서도 빈집뱅크 매물을 본 뒤 ‘진짜 이 가격이 맞느냐’ ‘(빈집뱅크가) 구청 주관 사업이 맞느냐’는 등 문의가 온다”고 덧붙였다.



“실수요자 맞춤형 정책 유효” 평가
부산 원도심권 빈집 활용ㆍ연구 분야 전문가인 신병윤 동의대 건축과 교수는 “접근성이 좋은 도심에 낮은 전·월세가를 유도하고, 도시재생 등 겉만 번지르르한 방식 대신 실제 저렴한 주거 조건을 필요로 하는 실수요자와 매칭했다는 점에서 효과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신 교수는 이어 “상태가 좋은 빈집을 지자체가 매물로 발굴하고, 정부가 광역시에 대해서도 빈집 보유 땐 다가구 제약을 풀어주는 정책을 적용하면 대도시 빈집 문제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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