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규 원광대병원 사직 전공의와 장재영 서울대병원 사직 전공의(왼쪽부터)가 18일 오후 서울 서소문 부영빌딩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오는 30일, 전공의·의대생 10여명이 모인 '대한의료정책학교'가 발족한다. 의정 갈등이 1년 넘게 이어지는 가운데 '탕핑'(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음)으로 일관하는 의료계의 기존 대응이 변화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한 이들의 모임이다. 전문 지식과 합리적인 대안을 가지고 의료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젊은 인재를 길러내자는 뜻을 담아 '학교'라는 이름을 붙였다.
중앙일보는 학교 설립을 준비 중인 서울대병원 사직 전공의 장재영씨, 원광대병원 사직 전공의 김찬규씨, 익명을 요청한 사직 전공의 2명을 인터뷰했다. 지난 18일 만난 장씨는 설립 취지에 대해 "의료계엔 반대만을 위한 반대가 아니라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씨 등은 지난 3개월 동안 수업 일정을 짜는 등 의료 정책 전문가 과정 개설을 준비해왔다. 수업 과정에 보건복지부 관계자를 초청해 의료계 난제를 함께 고민하는 시간도 준비 중이다.
장재영 서울대병원 사직 전공의가 18일 오후 서울 서소문 부영빌딩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장씨는 "의료계는 1년간 (의료계 대신) '정부가 대안을 제시하라'고만 했고, 그 때문에 의정갈등 사태는 해결되지 않았다"며 "이제 정책 영향권에 있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낼 때가 됐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탕핑과 '결사반대'만을 고집하는 상황에서 이제 당사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자는 취지다. 또한 학교 설립이 "젊은 의사들이 국민에게 한 발짝 먼저 다가가겠다"는 뜻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김찬규씨는 "우리가 만드는 학교도 하나의 시대 정신"이라면서 "전공의들이 지적하는 수련제도는 어깨너머로 배우는 게 아니라 체계적인 수련이 필요하다는 건데, 의료계 단체 내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식 절차를 밟으며 우리 생각을 정리해 밝히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찬규 원광대병원 사직전공의가 18일 오후 서울 서소문 부영빌딩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이들은 전공의 같은 젊은 의사들이 먼저 정책을 연구·제시하려는 시도가 의정 갈등 해소에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정 갈등의 장기화로 사태 해결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린 대다수 전공의를 되돌릴 수 있을 거란 믿음에서다. 김씨는 "우리 이야기에 정부가 반응하는 '피드백'만 있어도 사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며 "전공의들이 안심하고 돌아올 수 있는 기틀을 다지겠다"고 말했다.
장씨·김씨와 함께 학교를 준비 중인 20대 사직 전공의 A씨는 정부와의 대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의대생 복귀를 둘러싼 정부·학교와 학생들의 갈등을 언급하면서 "정부와 협상 테이블이 어떻게든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공의들이) 제대로 된 수련 환경에서 배울 수만 있고 고발 위험에서 벗어난다면 의정갈등이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 내부에 쓴소리도 던졌다. A씨는 "선배들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대다수 전공의·의대생도 똑같이 방관하고 있다"며 "의사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의료계가 이대로 간다면 그 끝은 공멸"이라며 대화를 촉구했다. 익명을 요청한 전공의 B씨도 "의료계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신을 차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씨는 "의료계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건 우리 스스로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습득하지 못한 탓"이라고 짚었다.
장씨는 "지금 씨앗을 심지 않으면 10년, 20년 뒤엔 후배들이 우리를 비난할 것"이라며 "이제부터라도 바꿔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전공의들도 있다는 것을 사회가 알아 달라. 의사와 환자는 적이 아니라 같은 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