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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맘.때]
외모 비하·성희롱·가족 비난까지
타깃된 일반인 수치심·공포 눌려
증거 자료 최대한 많이 수집하고
악플러에겐 절대 관심 줘선 안돼
요즘, 당신의 마음은 어떠신가요? ‘요.맘.때’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마음 돌봄’의 시각으로 조명하는 코너입니다. 이슈마다 숨어 있는 정신건강의학적 정보를 전하고 때로는 독자들에게 공감과 힐링의 시간도 제공하고자 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메이크업 아티스트 문세인씨는 그동안 인스타그램에 화장법을 알려주는 숏폼 콘텐츠를 올리곤 했다. 그런데 6개월 전, 그중 한 게시물이 알고리즘을 타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조회수가 160만건이 넘었다.

문제는 이후 문씨에게 온갖 악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가 만든 콘텐츠는 법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화장 기술을 활용해 만화 캐릭터 분장을 한 것이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게시물에 달린 댓글 500여개 대부분은 악성 댓글이었다. 문씨의 외모를 비하하거나 다짜고짜 욕설을 쏟아낸 이가 많았다. 누군가는 “주먹으로 치고 싶다”고 했고, 어떤 이는 “죽여버린다”고 적었다. 문씨 가족을 비난하는 악플도 수두룩했다.

난데없는 공격을 받은 문씨는 2개월 넘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혹시 주변 사람들이 댓글을 보진 않았을까 걱정하며 끝 모를 수치심과 공포에 시달렸다. ‘내가 정말 별로인 사람인가’라는 부정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악플의 공격, 일반인도 예외 아냐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들이 악플 탓에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심한 경우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지난달 세상을 떠난 배우 김새론도 음주운전 사고 이후 자신에게 쏟아지는 온갖 악플을 감당해야 했다. 안타까운 비보가 전해질 때마다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졌지만 그때뿐이었다. 언젠가부터는 문씨 같은 일반인도 악플의 타깃이 되고 있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20대 A씨도 그런 경우다. 대학 졸업 후 해외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A씨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일상과 정보를 공유하는 콘텐츠를 게시하곤 했다. 그의 콘텐츠는 문씨의 그것처럼 알고리즘을 타면서 조회수가 늘었고, 인기에 비례해 악플도 달리기 시작했다. 작은 무질서를 내버려 두면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처럼, 한 번 악플이 달린 게시물엔 비슷한 분위기를 띤 댓글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A씨의 콘텐츠에 “쓰레기 같은 경험”이라며 악담을 퍼부었다. 성희롱으로 볼 만한 댓글도 많았다. A씨는 “처음 악플을 접했을 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신경이 예민해졌고 댓글 내용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고 한다. 다음 콘텐츠를 올리기 무서울 정도였다. 악플러 중엔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 일명 ‘가계정’(비밀 계정)을 사용한 이가 많았지만, 얼굴이나 직업 등을 당당하게 드러낸 경우도 있었다. A씨는 “악플러의 계정 프로필을 살펴보니 교사 등 사회적으로 안정된 자리에서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이도 있었다”고 전했다.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플의 폐해,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관련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일 경찰청에 따르면 2023년 사이버명예훼손 및 모욕범죄 발생 건수는 총 2만4252건으로 2019년(1만6633건)에 비해 75%나 증가했다. 검거 건수도 2019년 1만1632건에서 꾸준히 증가해 2023년에는 2만390건으로 늘었다.

‘온라인 폭력’은 물리적 폭력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온라인에서는 악플 기록을 완벽하게 삭제하는 것이 어려워 피해가 더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어서다.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특임이사는 악플을 접한 뒤 발생할 수 있는 대표적인 트라우마 반응으로 폭력의 경험이 일상에서 반복해서 떠오르는 ‘재경험’, 본인에게 달린 댓글을 타인이 봤을까 신경이 곤두선 상태인 ‘과민’을 꼽았다. 그는 “온라인 환경에서 본인을 노출하는 것을 꺼리게 되는 ‘회피’ 반응, 온라인에서 만나는 사람은 무조건 악의가 있을 거라고 넘겨짚는 가치관의 변화도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악플러에게 ‘관심’은 금물

만약 악플러에 맞서기로 결심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의 조언과 다음과 같다. 증거 자료를 최대한 많이 수집한 뒤 법적 대응에 나설 것. 절대 악플러에게 관심을 주지 말 것. 정 이사는 “악플러는 피해자의 반응이 곧 자신을 향한 관심이라고 생각해 이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며 “피해자가 강하게 반응할수록 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댓글을 쏟아낼 수 있다”고 충고했다.

2007년부터 ‘선플재단’을 운영하는 민병철 중앙대 석좌교수는 “악플을 다는 이들은 보통 자존감이 낮다. 타인에게서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그런 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악플러에 대한 실효성 있는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 교수는 “사이버명예훼손죄의 경우 최대 징역 7년, 모욕죄는 최대 징역 1년에 처할 정도로 결코 형량이 가벼운 수준은 아니지만 실제 판결은 벌금형이나 집행유예가 대부분”이라며 “재범이거나 수법이 집요할 경우 양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악플 문제의 근본적 해법은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교육을 통해 사회 구성원의 의식을 개선하는 방법일 것이다. 정 이사는 “일단 악플 공격이 시작되면 개인이 완벽하게 대응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면서 “물리적 폭력과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고, 사회적인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온라인에서 다양한 활동을 벌이기 시작하는 연령대가 점점 어려지고 있다”며 “정규 교육 과정에 악플의 심각성을 전하는 내용을 많이 추가해 아이들에게 이 문제의 심각성을 가르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착한 댓글’을 다는 캠페인이 악플 문화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 민 교수는 “거리에서 쓰레기를 주워본 아이는 쓰레기를 잘 버리지 않게 되는 것처럼 ‘선플’을 많이 써본 아이는 댓글을 쓰기 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선플재단에서 벌이는 ‘선플 달기 운동’을 언급했다. 민 교수는 “이 캠페인을 현재는 일부 학교에서만 봉사 활동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이를 교육 당국에서 공식적인 봉사 활동으로 인정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모니터 너머엔 ‘사람’이 있다”

문세인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숏폼 콘텐츠에 달린 악플들. 문씨 인스타그램 캡처

다시 문씨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악플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는 앞으로도 SNS에 메이크업 콘텐츠를 계속 올릴 계획이다. 문씨는 “콘텐츠 제작 욕심이 있기 때문에 악플이 달리더라도 그냥 견디기로 결심했다”며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지인들이 본다는 생각으로 콘텐츠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자신과 같은 문제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속마음을 털어놔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을 다잡겠다는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악플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낸 A씨 역시 마찬가지다. A씨는 앞으로도 워킹홀리데이 관련 콘텐츠를 꾸준히 제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모니터 너머에 실제 사람이 있다는 걸 생각해줬으면 한다”며 “많은 사람이 악플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다면 이 문제가 서서히 개선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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