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장기 기증 후 세상을 떠난 이슬비씨의 생전 모습.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명절 귀성길에 갑자기 의식을 잃은 뒤 뇌사 상태에 빠진 20대 '예비 신부'가 장기 기증으로 5명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지난달 27일 영남대병원에서 이슬비(29)씨가 심장, 폐장, 간장, 좌·우 신장을 기증하고 눈을 감았다고 20일 밝혔다. 앞서 이씨는 올해 설 하루 전인 1월 28일 부모님을 뵙기 위해 고향으로 이동하던 중 차량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병원으로 이송돼 의료진 치료를 받았음에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대구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이씨는 밝고 쾌활한 성격으로 누구에게나 밝게 웃는 모습을 보여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고 사진 찍기를 좋아했으며, 집에서는 부모님 속을 한 번도 썩인 적 없는 착하고 순수한 딸이었다. 내년 1월 남자친구와의 결혼식도 예정돼 있었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좋아했던 이씨는 대학교에서 아동학과를 졸업한 뒤, 어린이집 교사로 일했다. 졸업 후 일을 쉰 적이 없을 정도로 성실하고, 아이가 다치거나 울면 본인이 더 마음 아파하는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이씨의 가족은 의료진으로부터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고, '희망'을 접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이씨가 고통 속에서 삶을 마감하기보다는,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선한 일을 하고 떠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장기 기증을 결심했다. 이씨의 어머니 권영숙씨는 "내 딸 슬비야. 이 세상에서 최고의 딸이었고 엄마 인생에서 기쁨이고 최고의 행복이었어. 나중에 하늘에서 엄마랑 다시 만나자"라는 마지막 인사를 손 편지로 전했다.

이삼열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원장은 "다른 생명을 살리는 기증을 결심해 준 기증자 유가족의 숭고한 생명나눔에 감사드린다"며 "이러한 기적과 같은 일이 우리 사회를 따뜻하고 환하게 밝히는 힘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슬비씨의 어머니 권영숙씨가 딸에게 쓴 편지.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한국일보

오세운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