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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자정을 넘긴 지난해 12월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도착한 무장군인들이 국회 본청으로 이동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선포 전부터 ‘정치 상황’을 단번에 뒤집을 수 있는 ‘한방’을 꿈꿨다고 한다. 술자리 등에서 여소야대 국회 등 정치현실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면서 ‘옛날 같으면 대통령 권한으로 뭘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하기도 했다. 그보다 전인 검찰총장 시절에는 “만일 육사에 갔더라면 쿠데타를 했을 것이다. 쿠데타는 김종필처럼 중령이 하는 것인데 검찰에는 부장에 해당한다. 나는 부장 시절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는 증언(한동수 전 대검찰청 감찰부장)도 나왔다.

윤 대통령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지난해 12월3일 실제로 비상계엄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장관들과 군인들의 생각은 대통령과 달랐다. 이들은 대통령의 비상계엄 소식을 듣고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12·12 사태’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먼저 떠올렸다.

“옛날 같았으면 대통령이 어떻게 할 수 있는데”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지난해 6월 중앙아시아 순방 중 윤 대통령에게 들었다는 말이다. 조 장관은 지난해 12월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에 출석해 이 말을 전하면서 “농담 삼아 한 것이지 실행의지를 갖고 말하는 것 같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계엄 당일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으로부터 ‘비상계엄’이라는 말을 듣고는 “충격을 받아 할 말을 잃었고, 반대했다”고 말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비극적인 현대사를 먼저 떠올렸다. 송 장관은 지난해 12월 검찰 진술에서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며 “지금이 예전 5·18 사건이 발생했던 군사정권 시대도 아니고 계엄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 해봤다”고 말했다.

같은 날 곽종근 당시 특전사령관으로부터 국회 투입 지시를 받은 이상현 특전사 1여단장은 ‘12·12 군사반란’ 사태가 먼저 떠올랐다고 했다. 이 여단장은 “과거 우리 군이, 특히 특전사가 12·12 사건 등 계엄 관련된 사건에서 국민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회의 군 투입은 불법 지시”라고 말했다.

이 여단장은 그래서 곽 전 사령관의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 이 여단장은 검찰에서 “12·12 사태와 같은 불법 계엄 상황에 관해 연구를 한 적이 있어서 계엄상황에서 의회의 활동을 방해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며 “과거에 특전사가 불법행위에 동원됐던 역사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 즉시 부대원들의 철수 절차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에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대통령 관저 인근에 도착해 경호 차량에서 내려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계엄 당일 국회 투입을 지시받은 방첩사령부 소속 군인들은 박근혜 정부 시절 이른바 ‘기무사 3대 비위 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일을 다시 상기했다. 2018년 사이버 댓글 공작과 세월호 민간인 사찰, 계엄령 문건 작성 행위 등에 관여한 기무사(방첩사 전신) 소속 인원 800여명은 육·해·공군 원소속 부대로 퇴출당하고 징계를 받았다.

세월호 민간인 사찰에 연루된 경험이 있는 구민회 방첩사 수사조정과장은 김대우 국군방첩사령부 방첩수사단장의 지시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등 2개 체포지시팀’이 꾸려지자 부하들에게 당부했다. “절대 접근하지 마라, 뒤에 빠져 있으라.” 구 과장은 “저도 과거에 세월호 민간인 사찰 사건 때문에 고초를 겪은 적이 있어서 충고해줬다”라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2018년 계엄령 문건 작성에 연루됐던 김영권 방첩사 방첩부대장은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주요장면을 기록했다. 국회에서 계엄이 해제된 이후에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사령관에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군 투입을 지시하자 김 부대장은 메모지를 꺼내 들었다. 메모에는 당시 김 전 장관이 지시한 시간인 ‘02:13’를 적어두고 그 옆에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미친 XX. 나중에 다 수사받을 텐데.”

비극의 현대사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군인들은 상관의 증거인멸 지시도 따르지 않았다. 계엄 해제 이후 여인형 당시 방첩사령관은 ‘명단은 모르는 것으로 하겠다고 하니 작성한 명단은 파기하라’는 지시를 김대우 단장을 통해 내렸다. 그러나 구민회 과장은 이를 파기하지 않았다. 이재학 방첩사 안보수사실장은 “사령관님의 지시사항은 위법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증거인멸 지시를 거부하면서 군검찰은 14명의 체포명단을 증거로 확보할 수 있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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