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올해 숙명여대 학부에 처음으로 입학한 우크라이나 국적의 유학생 솔로니첸코 베로니카(25)가 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순헌관 앞에 서 있다. 이아미 기자

" 전쟁 탓에 우크라이나에서 못 하게 된 대학 생활, 서울에서 맘껏 경험하고 있어요. " 우크라이나 국적의 솔로니첸코 베로니카(Solonichenko Veronika·25)는 올해 숙명여대 글로벌융합학부에 입학한 25학번이다. 글로벌융합학부는 국제적인 학문과 문화적 다양성을 바탕으로 융복합적인 학문을 추구하는 학부로,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특별한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숙명여대는 올해 처음으로 이 학부에 우크라이나 유학생을 선발했다.

우크라이나 중남부에 위치한 공업 도시 드니프로 출신인 베로니카는 지난 2021년 우크라이나의 한 대학 건축학과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해 대학 생활의 낭만을 꿈꿨었다. 그러나 이듬해 2월 갑작스럽게 터진 러시아와의 전쟁은 베로니카의 일상과 꿈을 앗아갔다. 베로니카는 “전쟁이 발발한 직후 모두가 패닉 상태였고, 내력벽 근처나 욕실에서 자는 게 안전했다”며 “열흘 만에 우크라이나를 떠나야 했고 차로 폴란드까지 가는 데 8일이나 걸렸다”고 회상했다.

포탄을 피해 떠난 난민 생활은 그리 짧지 않았다. 베로니카는 폴란드에서 3개월, 독일에서 9개월 총 1년을 살았다. 폴란드에선 친척 집에 머물렀고, 독일에선 공공주택에서 지냈다. 그럼에도 학업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다. 그는 “해외 생활 경험이 전무했고 모든 게 낯설었다”면서도 “기회가 된다면 진정으로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공부를 하는 것이 내겐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고 했다.

17일 오후 1시쯤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순헌관에서 우크라이나 국적의 유학생 베로니카가 수업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이아미 기자

학업을 위해 선택한 곳은 한국이었다. 베로니카에겐 청소년 시기에 펜팔로 사귄 한국인 친구들도 있었다. 한국 땅을 밟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갑작스럽게 피난길에 오르면서 고향 집을 여권도 없이 떠나온 탓에 한국 입국 절차가 복잡했다”고 했다. 가족들의 반대도 심했다. 그는 “한국보다 유럽에서의 삶과 교육이 낫다는 가족들을 설득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고 회상했다.

숙명여대가 베로니카의 한국 내 첫 학교는 아니다. 이에 앞서 지난 2023년 서울대 어학당에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밤낮없이 한국어 공부에 매진하던 중 한국어 실력을 원어민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학사 학위 취득을 목표로 잡으면서 숙명여대 입학을 결심했다.

서울 생활 3년 차인 베로니카는 최근 걸그룹 ‘블랙핑크’의 노래를 즐겨 듣고 미술관·전시회를 찾아가는 등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데 푹 빠져있다. 또 틈틈이 코스메틱·패션 관련 인플루언서 활동도 하고 있다. 앞서 우크라이나에서 자랄 때 한국인 친구들과 펜팔하면서 자연스럽게 색조 화장, 투명 스킨케어 등 한국의 미용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서울은 도시 한가운데 강이 흐른다는 점과 커피가 유명하고 삶의 속도가 빨리 지나간다는 점에서 고향과 비슷하다”면서도 “대중교통에서 노인·어린이 등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관습을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기도 했다”고 했다.

숙명여대 첫 우크라이나 유학생이 된 베로니카. 사진 솔로니첸코 베로니카

한국어는 베로니카에게 아직 어려운 숙제와 같다. 그는 “한국어 공부가 쉽지 않지만, 교수님들의 친절함으로 하나하나 도움받으며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베로니카의 한국어 수업을 담당하는 홍소영 교수는 “이번 학기 동안 꾸준히 학습하며 자신감을 키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도할 계획”이라며 “한국어 실력뿐만 아니라 한국 생활에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응원했다.

베로니카는 우크라이나에서 계획했던 건축학 공부 대신 경영학을 택했다. "대학에서 경영학, 그중에서도 마케팅을 공부해서 졸업 후 석사 학위를 따거나 한국 기업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영토 손실 없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리 쉽게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전 세계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목표와 열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세상의 그 어떠한 전쟁도 그를 막을 수는 없다"는 믿음을 전했다.

중앙일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2543 묵묵히 견디면 결국 꽃 피는 ‘봄’…기필코 찾아내리, 우리의 ‘성장’[언어의 업데이트] 랭크뉴스 2025.03.22
42542 아내에 피살된 ‘부동산 강사’ 누운 채 공격당해…영장 재신청 랭크뉴스 2025.03.22
42541 빨간 계란맞은 YS, 웃어넘긴 盧…한국 정치사 '계란의 추억' 랭크뉴스 2025.03.22
42540 연대 의대생 50%·고대도 상당수 복귀한 듯…의대생 돌아오나? [지금뉴스] 랭크뉴스 2025.03.22
42539 [속보] 윤 대통령, 24일 형사재판 2차 준비기일 출석 안한다 랭크뉴스 2025.03.22
42538 젊은층도 퇴행성 관절염 증가세…‘자가골수 주사’ 재생 효과엔 한계[톡톡 30초 건강학] 랭크뉴스 2025.03.22
42537 윤석열, 24일 형사재판 준비기일 불출석 랭크뉴스 2025.03.22
42536 [단독] 주민센터에 사는 사기꾼?‥식용유만 노렸다 랭크뉴스 2025.03.22
42535 하얀 얼음이 회색 바위됐다…"알프스 빙하 소멸, 20억 생존 위협" 랭크뉴스 2025.03.22
42534 尹측 "윤대통령, 24일 형사재판 두번째 준비기일 출석 안해" 랭크뉴스 2025.03.22
42533 이재명 "尹 탄핵 기각되면 나라 망해‥대한민국 무법천지될 것" 랭크뉴스 2025.03.22
42532 한∙미, 민감국가 관련 실무협의…산업장관 "조속한 해결 합의" 랭크뉴스 2025.03.22
42531 신라면, 새우깡에 이어 카스까지... 줄줄이 오르는 식품 물가 랭크뉴스 2025.03.22
42530 [증시한담] 다시 늘어난 주식 보유 기간… 사실은 물려서? 랭크뉴스 2025.03.22
42529 [속보] 하남 창고 건물서 불…대응 1단계 진화 중 랭크뉴스 2025.03.22
42528 한동훈 "'청년 독박·착취' 연금개혁안, 거부권 행사해야" 랭크뉴스 2025.03.22
42527 호남 찾은 이재명 “계엄 때 5월 광주 떠올려…내란 극복 중심 돼주길” 랭크뉴스 2025.03.22
42526 경남 산청 이틀째 산불 진화‥200여 명 대피 랭크뉴스 2025.03.22
42525 짜증 유발 ‘소셜미디어’, ‘자발적 고독’을 즐겨볼까[정우성의 일상과 호사] 랭크뉴스 2025.03.22
42524 김성훈·이광우 구속영장 기각…尹 향하던 수사 ‘급제동’ [서초동 야단법석] 랭크뉴스 2025.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