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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삼성인' 등 엄중한 메시지
직접 육성으로 전달했더라면
'하겠습니다'가 더 많았더라면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삼성이 임원 대상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에게 전달한 크리스털 패. 각자의 이름과 함께 '위기에 강하고 역전에 능하며 승부에 독한 삼성인'이라고 새겨져 있다. 삼성은 지난달 말부터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 계열사의 부사장 이하 임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임원들에게 주문한 강도 높은 메시지가 큰 주목을 끌었다. 사즉생(死卽生), ‘독한 삼성인’ 등 이전에는 들을 수 없던 내용들이어서 그렇다. 언론에서는 ‘제2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라느니 ‘애니콜 화형식’을 연상시킨다느니 요란한 반응이다. 2022년 회장 취임 당시에도 취임사조차 내지 않을 정도로 공개 메시지를 자제해왔으니 더 묵직하게 여겨졌을 법하다.

이 회장의 메시지는 지난달 말부터 한 달여간 진행되고 있는 임원 교육에서 나왔다.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이란 타이틀부터 예사롭지 않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 계열사 부사장 이하 임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자체가 9년 만이라 한다. 현재 삼성이 처한 상황을 그만큼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참석자들 전언을 통해 보면, 3분 분량 영상을 통해 전해진 메시지는 강렬하다. “우리 경제와 산업을 선도해야 할 삼성전자는 과연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라는 반성은 진솔했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는 진단은 절박했다. 무엇보다 “메모리 사업부는 자만에 빠져 인공지능(AI)에 대처하지 못했다”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은 제품 품질이 (삼성의 이름에) 걸맞지 않다” 등 삼성전자 각 사업부를 일일이 언급하며 내놓은 질책은 교육에 참가한 임원들의 폐부를 아프게 찔렀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적지 않다. 안팎에서 위기 경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삼성 임직원들은 이 회장의 메시지를 이제나저제나 애타게 기다려왔다. 이전까지는 이 회장을 무겁게 짓누르던 사법 리스크 탓에 쉽지 않겠구나 받아들였을 수도 있지만, 대법원 상고심만 남겨둔 지금 리스크가 8할 이상은 제거됐다고 본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 이번 메시지는 그런 들끓는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어야 했다.

그렇다면 이 회장이 직접 임직원들 앞에 서서 마이크를 잡는 것이 백번 나았을 것이다. 언론들이 ‘멋지게’ 포장했지만 사실 영상에 이 회장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평소 그가 강조해온 내용을 성우의 내레이션으로 편집해 전달하고 있을 뿐이다. 발신자가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는다. 기업들의 흔한 교육 영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회차별로 진행되는 교육의 한계상 이 회장이 일일이 다 찾아갈 수는 없었겠다. 그럼에도 이 회장이 영상에 직접 출연해 본인 육성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사즉생’이라는 이 엄중한 각오도 성우의 입을 빌리는 것과 오너가 직접 말하는 것의 무게는 천양지차다. 내용만큼이나 오너의 표정, 말투, 제스처 하나하나에도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해야 됩니다’만 있고 ‘하겠습니다’는 잘 보이지 않았던 점도 많이 아쉽다. 임원 정신 무장을 위한 교육 자리인 만큼 주문과 질책이 많았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표류하는 배에서 선원들이 선장에게 기대하는 건 확실한 나침반이 돼주는 일이다. 열 마디 질책보다 한 마디 확신에 찬 비전 제시가 훨씬 힘이 있는 법. 이 회장이 직접 앞으로 뭘 하겠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겠다, 그러니 여러분이 함께 해달라 했더라면 좋았겠다. 조직의 문제로 누누이 지적돼온 재무·법무 편중의 문제를 콕 집어 “내가 책임지고 손보겠다”고 했더라면 더더욱 좋았겠다.

교육에 참가했던 임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나눈 얘기들의 대체적 정서는 이랬단다. “우리가 변해야 하는 것도, 우리가 비겁하게 안주했다는 것도 모두 인정한다. 그렇지만 회사는 어떻게 달라질 건지에 대한 답도 함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이 회장이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이번 영상에 담지 못한 그 5%, 10%의 아쉬움을 채워줄 수 있길 기대해 본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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