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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에너지부가 발간한 '국가 안보 보장 전략 보고서'


'미국 원자력 에너지 경쟁 우위 복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임기 막바지이던 2020년 4월, 미국 에너지부가 발간했습니다.

단순히 미국 원자력 정책을 짚어보는 보고서로 치부하기에는 부제목이 인상적입니다.

'미국 국가 안보 보장 전략'.

국제사회에서 원자력 경쟁력을 회복하는 것이 곧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는 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보고서 첫 문장부터 '원자력은 본질적으로 국가 안보와 밀접하다'고 쓰여 있습니다.



■ "원자력 주도권 러·중에 넘어갔다"‥곳곳에 드러난 위기감


30여 쪽 분량의 보고서 곳곳에는 러시아와 중국의 공격적인 원자력 시장 진출에 대한 위기감이 상당히 드러나 있습니다.


"미국은 원자력 분야에서 세계 선두 주자의 입지를 상실했다. 주도권은 러시아, 중국 등에 넘어갔다." (보고서 6쪽)

"에너지 공급을 '무기화'한 러시아가 원자력 시장을 장악했다‥미국은 세계 신규 원자로 시장에서 완전히 '부재중'이다." (보고서 6쪽)

그러면서 당시 미국 원자력 역량에 대해서는 처참한 진단을 내놨습니다.

"상업용 원자력 부문 전체 파산 위험"에, "핵연료 생산 능력 상실 위기"라며 국익과 국가 안보가 위협받는 수준이라고 경보를 울렸습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미국이 세계 원자력 시장에서 리더로서 입지를 상실함으로써 종국에는 "외교 정책 선택지가 좁아질 것"이고, "강력한 비확산, 안전·보안 기준 설정에 있어 국제적 영향력이 약화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 한국도 언급‥'민감 국가' 복선이었나


그런데 보고서에서 러시아와 중국만 언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 차례, 한국이 언급됐습니다.

오는 2030년까지 예정된 각 나라의 전 세계 신규 원자로 건설 현황을 조사한 내용을 인용 서술한 부분이었습니다.


"2030년까지 전 세계에 완공될 107개의 신규 원자로 중 43개는 중국 공급업체가, 29개는 러시아, 10개는 인도, 9개는 한국, 4개는 프랑스가 공급할 예정."

그러면서 "미국에 본사를 둔 원자로 공급업체는 3기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당시 미국의 조사·분석 상, 중국이나 러시아만큼은 아니더라도, 한국 역시 세계 원자력 시장에서 미국에 앞서나가는 국가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실제로 여러 원자력 전문가가 '우리나라 원자력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한 반면 미국은 그 사이 원자력 발전소 건설 능력을 상실했다'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미국이 최근 원자력 주도권을 다시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국제적인 원자력 발전소 사업과 관련해 한국과 미국이 다툼을 벌인 사례도 있습니다.


앞서 한국수력원자력이 체코 원자력 발전소 건설 사업에 뛰어들자, 미국에 있는 세계적인 원자력 기업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이 수출하려는 최신 원전 기술이 자사 기술을 기반으로 했다며 한수원의 독자적 수출을 막아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미국 법원에 제기했습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2년여 동안 이어진 지루한 법적 분쟁 끝에, 결국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가 '팀 코러스(Korea+US)'로 뭉쳐 수출 지역을 나눠 협력하는 방향으로 합의하기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이와 별개로 지난 1월 초, 한국 외교부와 산업부 그리고 미국 에너지부는 '한-미 원자력 수출·협력 원칙에 관한 기관 간 약정'에 함께 서명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이 약정의 의미를 "70년 넘게 민간 원자력 분야에서 협력한 두 나라가 함께 민간 원자력 기술의 수출 통제 관리를 강화하고, 제3국의 민간 원자력 발전을 위해 협력하자는 내용"이라고 밝혔습니다.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지는데요.

이와 관련해, 한 정부 관계자는 "이른바 '원자력 르네상스' 시기에 중국과 러시아가 너무 공격적으로 이 나라, 저 나라 다 파고드니, 한국과 미국이 협력해 대응하자는 내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협력하자더니 '민감 국가'에‥도대체 왜 이러나


그런데 지난주 미국 에너지부는, 한국을 '민감 국가'로 분류한 시점을 1월 초라고 밝혔습니다.

한국과 세계 원자력 시장에서 협력하자며, 약정에 서명하던 그 시기쯤이라는 것입니다.

미국 에너지부는 한국은 민감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단계인 ‘기타 지정 국가’라며 향후 과학 기술 협력에 제한이 없을 것이라고 둘러댔지만, 앞으로 원자력·핵·인공지능 등 첨단 안보·과학 기술 분야에서 두 나라 간 연구진 교류나 협력 시 사전 승인, 검토가 필요해진 만큼,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미국은 왜 앞에서는 협력을 약속하고, 뒤돌아서는 한국을 민감 국가 목록에 올렸을까요.

미국 에너지부는 민감 국가를 분류할 때, '국가 안보', '에너지·경제 안보', '핵 비확산 목적', '지역 정세', '테러 지원 여부' 등을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여기서 다시, 앞에서 이야기했던 미국 에너지부의 5년 전 보고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보고서에서는 세계 원자력 시장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되찾는 것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자연 발생 원소인 우라늄의 사용을 통제할 수 있는 미국의 주권 능력을 회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그 의미를 서술했습니다.

그러면서 "더 늦기 전에 미국의 핵 지도력을 되찾아야 한다"라고도 했습니다.

결국 자원이 될 수도, 끔찍한 무기가 될 수도 있는 원자력 역량이 세계 시장에서 조금이라도 앞선다는 것은 미국에는 국가 안보의 측면에서 치명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 '핵무장론'·'내란'이 불씨 당겼을 것


이런 상황에서, 한국 사회에서 꾸준히 피어오른 '핵무장론'과 '핵 역량 강화' 주장은 미국을 한층 더 불안하게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취임 이듬해인 2023년 초,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에 무슨 전술핵 배치를 한다든지 우리 자신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습니다."라며 자체 핵무장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석 달 뒤,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로 나온 '워싱턴 선언'은 동맹인 한국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를 강화하고, 두 나라 간 '핵 협의 그룹'을 만드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미국이 한국에 대한 대대적인 핵우산을 약속했던 것인데, 당시 선언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핵확산 금지 조약상 의무에 대한 준수를 재확인했다'란 취지의 문안이 포함됐습니다.

1975년 핵확산 금지 조약 가입 이후, 한국이 조약에 명시된 의무를 다해왔음에도 정상급 선언에 굳이 '조약 준수 재확인'이 언급된 것인데, 미국이 한국을 완전히 믿지 못했다는 증거 아니겠느냐는 지적도 최근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촉발된 내란 사태는 균열이 가 있던 믿음마저 와르르 무너뜨린 것으로 보입니다.

한 달여가 지나, 미국 정부는 한국을 '민감 국가'로 분류했지만, 한국에 상의는 고사하고 통보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1월 초, 정권 교체를 앞두고 한국을 찾아 '같이 가자' 했던 전임 미 외교 수장의 말은 씁쓸한 뒷맛만 남기게 됐습니다.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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