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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 엔비디아 GTC 키노트
1만7000명 몰려... "잡스 연상"
엔비디아를 창업한 젠슨 황 최고경영자가 1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SAP 센터에서 열린 엔비디아 연례 개발자 행사 GTC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18일(현지시간) 오전 9시50분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SAP 센터. 행사 시작 시각이 아직 10분 남은 시점, 모두가 기다리던 이날의 주인공이 무대에 등장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였다. 어김 없이 검은 가죽 재킷을 착용하고 등장한 그의 손에는 기관총 모양의 발사 도구가 들려 있었다. 인사말도 생략한 채 그는 객석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티셔츠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객석에서는 저마다 손을 뻗어 티셔츠를 낚아채려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흡사 연예계 톱스타의 팬서비스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젠슨 황 최고경영자가 1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SAP 센터에서 열린 엔비디아 연례 개발자 행사 GTC의 기조연설 시작에 앞서 객석을 향해 티셔츠를 날리고 있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무대 뒤로 잠시 몸을 숨긴 황 CEO는 10시가 되자 엔비디아의 연례 개발자 행사 GTC의 기조연설(키노트)을 위해 다시 무대에 올랐다. 약 2시간10분 동안 이어진 그의 키노트는 다른 기업과 달랐다. 오랜 기간 실리콘밸리에서 키노트는 CEO가 핵심 내용 발표를 맡고, 각 사업을 담당하는 최고 임원들이 차례로 마이크를 이어 받아 설명하는 게 공식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날 무대는 황 CEO가 홀로 처음부터 끝까지 소화했다. 객석에서는 "노래와 춤만 없는 팝 콘서트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황 CEO 역시 자신과 엔비디아를 향한 관심을 즐기는 듯했다. 지난해 키노트에서 자신에게 환호가 쏟아지자 "이게 콘서트가 아니란 걸 잊지 말기 바란다"고 농담했던 그는 이날은 "지난해 GTC가 'AI 우드스톡(음악 축제)'이었다면 올해는 'AI의 슈퍼볼'(미국 미식축구리그 결승전)"이라고 말했다. 미국을 넘어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스포츠 이벤트로 불리는 슈퍼볼만큼이나 AI 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가 됐다는 자평이었다.

GTC는 2009년 학술적 성격이 강한 소규모 개발자 행사로 시작했다. 코로나 팬데믹 직전 마지막으로 오프라인에서 개최됐던 2019년에는 9,000명이 참석했다. 그러나 올해는 그의 3배에 가까운 2만5,000명이 직접 참석하고, 약 30만 명이 온라인으로 참여한다. 이 때문에 평시 1박에 100달러대면 묵을 수 있는 새너제이 도심 호텔들은 이번 주 1,800달러(약 260만 원)까지 치솟았다.

1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SAP 센터 메인 공연장의 약 1만7,000개 객석을 엔비디아 개발자 콘퍼런스 GTC 참관객들이 가득 메우고 있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이날 황 CEO 기조연설장으로 쓰인 SAP 센터는 미국 프로아이스하키팀인 새너제이 샤크스의 홈구장으로, 1만7,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둔 테크기업들이 1년 내내 이곳에서 행사를 열지만, 객석 전체가 꽉 들어차는 행사는 GTC 키노트뿐이다.

이처럼 달라진 GTC 풍경은 기술업계의 패러다임 변화를 상징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실리콘밸리에서는 가장 중요한 행사로 아이폰을 만드는 애플과 세계 최대 검색엔진 기업 구글의 개발자 컨퍼런스가 주로 거론됐다. 하지만 이제는 엔비디아가 첫손에 꼽힌다. 10년 이상 GTC를 취재해 왔다는 한 미국인 기자는 이날 "(애플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가 이끌던 아이폰 발표 행사를 떠올리게 하는 열기"라며 "소비재를 파는 기업이 아님에도 이런 관심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도 "황 CEO의 무대 장악력은 잡스를 연상시키지만, 잡스와는 달리 그는 연설문을 작성하지 않고 리허설도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날 연설도 대략적인 발표 순서만 사전에 구상해 둔 즉흥 연설이었다고 한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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