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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도심동물들] <19> 공사에, 재개발에 쫓겨나는 흰발농게

편집자주

도심 속 인간과 동물의 접점이 늘어나면서 이로 인한 갈등과 피해가 생기고 있습니다. 갈등의 배경 및 인간과 동물 모두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해결책을 논의하고자 합니다.

인천 영종도 갯벌에 사는 멸종위기종 야생생물 2급이자 해양보호생물인 흰발농게. 수컷은 하얗고 커다란 집게발을 한쪽만 갖고 있는 게 특징이다. 인천녹색연합 제공


"층간소음으로 시끄러워 못 살겠다", "개발한다고 살던 곳에서 나가라니 황당하다".

서민들이 처한 현실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야생동물이 있다. 바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자
해양보호생물인 흰발농게
다. 갯벌이 썩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흰발농게지만, 그 삶은 공사로 인한
층간소음
갈등과 주인이 지역을 개발한다며 쫓아내는
둥지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
을 연상케 한다.

흰발농게는 달랑겟과 갑각류로 육지와 인접한
서해안과 남해안 등 연안 습지
에 산다. 수컷의 집게다리 한쪽이 다른 한쪽에 비해 매우 크고 흰색을 띠고 있어 흰발농게로 불린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추억의 만화 '주먹대장'을 닮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반면 암컷의 집게다리는 작고 대칭이다. 수컷은 번식철이 되면 흰색 집게발을 흔들어 구애하는데 이 모습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처럼 보여 외국에서는 '우윳빛 바이올린 연주자'(Milky Fiddler Crab)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도로 개발, 갯벌 매립 등으로 이들의 서식지가 급격히 줄면서
환경부는 2012년부터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해양수산부는 2016년부터는 해양보호생물로 지정했다.

2018년 인천녹색연합이 인천 영종도 동쪽과 준설토 투기장 사이 갯벌에서 멸종위기종 흰발농게(빨간색 동그라미)와 흰발농게 구멍(파란색 동그라미)을 발견했다. 인천녹색연합 제공


보호생물로 지정됐지만 이들의 삶은 녹록지 않다. 최근 최대 서식지 중 하나로 알려진
영종도 동쪽 갯벌 영종2지구 개발 계획지 주변에서 공사
가 진행되면서 이들은 진동과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또 해수부가
영종2지구를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
하려는 것을 두고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난색
을 표하면서 자칫 서식지가 제대로 보호되지 못할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영종도 갯벌에 흰발농게가 대규모 서식한 것으로 공식 확인된 건 2020년이다. 2018년 환경단체와 학계는 흰발농게의 서식을 확인했고 2020년 인천시와 국립생태원,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등의 조사 결과 영종2지구 9만5,209㎡ 규모에서 흰발농게
최대 200만 마리가 서식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2003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 산업단지 등으로 개발될 영종2지구 개발사업은 중단됐다.

공사로 인한 진동, 소음에 시달려

인천 영종제2지구에서 갯벌체험활동을 하고 있다. 인하대 제공


하지만 흰발농게 보호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서식지 주변 제1준설토 투기장에 골프장 등
을 개발 중인데
공사로 인한 진동과 소음
이 흰발농게에 악영향을 주고 있어서다. 이는 연구 결과로도 나와있다.
김태원 인하대 해양과학과 교수가 이끄는 해양동물학연구실
은 공사 현장 등에서 발생하는 주파수 120~250헤르츠(㎐) 범위의 진동에 흰발농게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면서 멈춰 있는 시간이 늘어 천적에 잡아먹힐 위험이 높아진다는 점을 밝혀냈다. 또 수컷의 구애활동인 '북치기'(drumming) 등
번식 활동에도 부정적 영향
을 줄 수 있다는 점도 확인했다.

인천 영종도 습지보호지역 지정 관련 해수부 요구안(왼쪽)과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제외해 달라고 요구하는 지역. 자유구역청이 요구하는 지역은 흰발농게 서식지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


인천 영종도 동쪽과 준설토 투기장 사이 갯벌에서 발견된 멸종위기종 흰발농게. 인천녹색연합 제공


김 교수는 또
갯벌 체험 등이 흰발농게를 포함한 갯벌 생물의 번식에 영향
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밝혀냈다. 답압(야외 활동을 하면서 기질을 밟는 행위) 이후 흰발농게의 구애행동과 먹이 먹는 시간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흰발농게는 유기물을 분해하고 산소를 공급하면서
갯벌이 썩지 않도록 돕는 '생태계 엔지니어'
역할을 해낸다. 문제는 흰발농게가 물이 깊지 않은, 즉
매립지가 되기 쉬운 지역에 주로 서식
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김 교수는 "흰발농게는 진동과 소음에 민감한 동물이지만 이에 대한 연구도 부족하고, 또
야생생물을 대상으로 한 공사 관련 진동이나 소음 기준이 정해진 게 없다
"며 "이와 관련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습지보호구역 지정으로 서식지 보전해야

사람이 개발하기 쉬운 연안 갯발에 사는 흰발농게. 인천녹색연합 제공


흰발농게가 서식하는 인천 영종2지구 개발 계획지 갯벌의 모습. 인천녹색연합 제공


더불어 환경단체들은
해수부가 추진 중인 영종2지구 습지보호구역 지정이 필요
하다고 말한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해수부가 제시한 습지보호지역 계획지 중 경제자유구역에 포함된 공유수면(3.38㎢)을 지정 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요청했다. 자유구역청 측은 "영종2지구 개발을 위한 용역 조사 결과가 7월에 나오는 만큼 그때까지 기다려달라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해수부는 조만간 자유구역청과 만나 습지보호지역의 지역 조정과 관련해 논의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박주희 인천녹색연합 사무처장
은 "흰발농게의 대규모 서식지가 포함돼 있는 것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멸종위기 조류가 대거 시식하는 지역인 만큼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개발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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