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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에너지에서 정치는 빠져야”

한때 제조업 기술을 기반으로 유럽의 강자로 군림하던 독일이 최근 몇 년 새 높은 에너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유럽의 병자’로 전락했다. 인공지능(AI) 패권을 노리는 미국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에너지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첨단 기술이 발전하면서 에너지가 국운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독일과 미국의 사례를 통해 대한민국 에너지 정책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본다.[편집자주]

“지난 정부에서 원전을 홀대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도 반성하고 있으며, 개선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김동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3일 국회에서 열린 ‘기후위기 대응, 원자력과 합리적 에너지믹스 발전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이 같이 말했다. 탈(脫)원전 정책을 폈던 문재인 정부 시절과 달리, 지금은 원자력 발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지난달 확정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3기의 신규 대형 원전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끝까지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후 이어진 탄핵 정국에서 정부는 야당의 반대에 뜻을 굽혔고, 신규 원전 계획은 당초 계획보다 1기 줄었다.

최근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산업의 급성장, 에너지 조달 비용 증가 등으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국내 에너지 정책은 정치 상황에 좌우돼 에너지 수급 불안을 야기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한때 건설이 중단됐던 경북 울진군 신한울 원전 3·4호기 예정지. 이 원전들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인 지난해 10월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 조선DB

정쟁에 얼룩진 에너지 정책… 탈원전이 정점
에너지 정책이 정치적 다툼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부터다. 그해 9월 전략 소비량이 급증하자 전력 당국은 블랙아웃(black out·대규모 정전)을 막기 위해 전국에서 지역별 순환 단전을 실시했고, 이로 인해 약 753만 가구가 정전을 겪었다. 이에 야당은 대통령의 사과 결의안 채택, 최중경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 해임, 감사원 감사청구 등을 요구하며 정부를 맹공격했다.

정전 사태로 홍역을 치른 후 이명박 정부는 6차 전기본부터 수요 전망을 하계와 동계로 구분하고 최대 전력 수요 전망을 12.5% 늘렸다. 이에 대해서도 야당은 “주먹구구 전력수급계획”이라고 비판하며 또다시 감사청구를 요구했다. 박근혜 정부인 2015년 발표된 7차 전기본에는 2029년까지 원전 2기를 새로 건설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대해 야당은 산업통상자원부를 ‘원전 마피아’라 비난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의 원전 중심 에너지 정책을 뒤집고 ‘탈원전,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표방했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추진하기 위해 전력 수요를 과소 예측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 수립한 8차 전기본에서는 최종연도인 2031년의 최대 전력 수요를 하계 98GW(기가와트), 동계 101GW로 예상했다. 이는 7차 전기본 최종연도(2029년) 예상치와 비교하면 각각 11.7%, 9.8% 감소한 수치다. 경제가 발전하면 전기 사용량이 늘어나는 게 일반적인데, 오히려 줄어들 것으로 본 것이다. 전기본의 최종연도 예상치가 과거에 비해 줄어든 것은 사상 처음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전기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보고 저렴한 원전 발전을 줄였다. 그러나 업계의 우려대로 실제 전력 수요는 문재인 정부 시절의 예상치를 크게 웃돌았다. 원전보다 가격이 비싼 신재생, 액화천연가스(LNG·Liquefied Natural Gas) 비중이 커지면서 한국전력의 부담은 커졌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5년 간 한전이 떠안은 손실액은 총 25조8088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2020년 폭우로 흘러내린 전북 장수군 천천면 장판리 야산의 태양광 패널./조선DB

대통령 탄핵되니 다시 원전 축소… “에너지에 정치는 빠져야”
2022년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원전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수급 계획을 짰다. 기후 변화, AI 시장의 급성장에 따른 산업 수요 증가 등을 반영해 앞으로 전력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란 시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경기도 용인에 조성하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만 16기가와트(GW) 규모의 전기가 필요한데, 이를 충족하려면 신규 원전 10기 이상이 필요하다.

정부는 2038년까지의 전력수요 전망과 공급계획을 담은 11차 전기본을 수립하면서 대형 신규 원전 3기가 필요하다고 봤다. 반도체 제조와 AI 데이터센터 건설 등으로 전력 수요가 2038년에는 129.3기가와트(GW)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신규 원전 축소,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를 요구하자 결국 2기로 줄였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윤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불안정한 상황이 반영된 것이란 말이 나온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윤 대통령의 탄핵안을 인용하면 조기 대선이 치러지고 정권이 교체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공무원이 야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줄어든 신규 원전을 태양광 발전 등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그러나 태양광 발전은 막대한 토지가 필요하고 국내 기후 특성상 기대만큼 전력을 공급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200조원에 이르는 한전의 부채와 급증하는 전력 수요, 탄소 중립 등을 모두 고려하면 11차 전기본에 더 많은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이 포함돼야 했다”며 “에너지 정책을 수립하는데 더 이상 정치가 개입되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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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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