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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시 제공


“인공지능(AI) 때문에 ‘이 일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해요. AI가 어디까지 침투할지 감조차 오지 않으니 뭘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답 없는 불안이 이어지고 있습니다.”(콜센터 관리자 A씨)

AI의 빠른 발전과 영향력 확대로 인한 불안이 퍼지고 있다. 일자리, 경제, 개인정보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정신적 불안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온·오프라인에 넘쳐난다.

첨단 기술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공포는 더 이상 노년층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교육 현장에선 ‘장래 희망을 모르겠다’는 학생들의 호소도 들려온다. 해외에선 AI와 불안(anxiety)을 합친 신조어 ‘AI-nxiety’까지 등장했다.

‘AI’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선 사람들···“적응 못하면 도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디지털 전환과 AI 기술에 관한 인식과 태도에 대한 10개국 비교’(2024)를 보면, 한국인 10명 중 3.54명은 AI 등 신기술이 자신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0개국 시민 중 가장 높은 수치다. AI 종주국인 미국은 10명 중 3.5명, 가장 낮은 덴마크는 10명 중 1.8명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한국인은 디지털 기술 관련 숙련도에 대해서도 가장 자신 없는 모습을 보였다. ‘일상생활에서 본인이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는 데 충분한 숙련 수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한국인의 55.4%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핀란드(77.2%), 영국(75%) 시민보다 훨씬 낮다. 업무 수행 관련 디지털 기술 숙련도를 묻는 질문에서도 한국인의 56.9%만이 ‘숙련도가 충분하다’고 답했다.

최근 출간된 책 <AI 블루>에는 AI로 인해 불안, 우울 등을 느끼는 정보기술(IT) 업계 종사자들의 이야기가 잘 담겨 있다. 각각 개발자, AI 연구자인 저자들은 ‘코로나블루’, ‘메리지블루’에서 제목을 따온 책을 통해 범용인공지능(AGI)을 향해 빠르게 달려나가는 업계에서 인간이 소외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공동 저자이자 개발자인 조경숙씨는 2022년 챗GPT가 세상에 나온 이후 특히 스트레스가 극심해졌다고 회고한다. “이미지 생성 AI, 작곡 AI 같은 서비스가 눈만 뜨면 출시되기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게 무서울 정도였다.”

신기술이 나올 때마다 이를 익히려 자기계발에 매진했던 업계 종사자들의 시계는 챗GPT 등장 이후 더 빨라졌다. 실제 AI의 일자리 대체는 이미 시작됐다. 특히 IT 업계에선 저숙련 개발자의 일자리가 빠르게 사라지는 중이다. ‘커서’, ‘코파일럿’ 등 코딩용 AI 서비스 때문이다. 기업들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신입 개발자 채용 대신 AI 서비스 구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5년차 개발자 B씨(30)는 “후배 개발자들을 교육하다 보면 ‘이 친구들을 키우는 것보다 AI를 활용하는 게 더 빠르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며 “AI 발전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도태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진다”고 말했다.

김상민 일러스트


불안과 위로를 주는 역설적 존재 AI, 공존 방법은

그러나 AI 때문에 불안하다는 A씨와 B씨 모두 거의 매일 챗GPT를 쓴다. A씨는 챗GPT에게 간단한 정보 검색은 물론이고 잘 안 풀리는 일이 있을 땐 사주풀이까지 시킨다. B씨는 코드를 짤 때 챗GPT의 도움을 받는다. 그는 “AI를 잘 활용하느냐 아니냐로 개발자의 업무 역량을 평가받는다”면서도 “스스로 최대한 코드를 짜본 뒤 이를 검토하거나 개선점이 있는지 확인하는 용도로만 쓰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잘 써먹을 줄 알면서도 지나치게 의존하진 않아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인 것이다.

AI를 둘러싼 또 하나의 역설은 AI로 인한 불안이 커지는 한편 AI를 통해 불안이나 외로움을 해소하는 이들 역시 늘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에서는 AI 챗봇과 우정을 나눈다는 청소년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영화 <그녀>(2013)에서처럼 AI와 로맨틱한 관계를 맺는 사례도 속속 등장 중이다. 다정한 ‘AI 연인’을 표방하며 출시된 애플리케이션(앱)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국내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경기 용인시, 충북 청주시 등 지자체가 챗GPT를 기반으로 한 AI 인형 ‘효돌이’를 통해 노인 돌봄 공백을 메우고 있으며, 스타트업 블루시그넘은 최근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MWC 2025’에서 정신 건강 관리 앱 ‘라임’을 선보였다.

불안과 위로를 동시에 주는 기묘한 존재 AI와의 건강한 공존은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개인적 차원에서라면 호주의 비영리 학술 매체 ‘더 컨버세이션’의 2023년 기사를 참고할 수 있다. 매체는 AI로 인한 불안을 다룬 기사에서 1980년대 초 퍼진 ‘컴퓨터 공포증’을 언급하며 “이런 감정이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님을 기억하라”고 조언한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의 콘텐츠 추천 기능처럼 AI가 이미 나의 생활 가까이 들어와 있음을 인지하거나 AI 시대의 커리어를 새롭게 그려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AI 블루> 저자 조경숙씨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개인보다 기술 개발 및 정책 주체의 역할을 강조했다. “AI가 도움되는 영역이 분명 존재하지만 AI를 만능이라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AI로 어떤 감정을 해소할 순 있어도 결국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아요. 근본적으로는 공동체적·정책적 대책이 폭넓게 논의돼야 합니다. AI 활용 과정에서 인간의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지진 않는지 장기적 관찰도 필요합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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