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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로 설계 SW 유출, 민감국가 지정?
"보다 많고 심각한 보안 문제 발생"
한국, SCL 지정 국가 중 유일한 동맹...극히 이례적
미국 에너지부 전경. 워싱턴=UPI 연합뉴스


미국 에너지부(DOE)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원인으로 우리 연구원들이 지목됐다. DOE 산하 연구소에 출장을 가거나 미 측과의 공동연구 과정에서 보안 규정을 어겼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한국 외교부에도 설명한 것으로 18일 전해졌다.

이에 대해 한미 양국 정부는 "외교 정책상 문제가 아니다"(한국 외교부), "큰 일이 아니다"(조셉 윤 주한미국대사대리)라며 파장을 진화하는데 주력했다. 반면 실제로 무엇이 문제였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설명을 꺼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보안 문제로 미국이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에 한국을 넣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SCL에 포함된 테러우범국이나 미국의 제재대상국과 한국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워싱턴 소식통은 한국일보에 "
기술 보안과 관련해 한국인이 연루된 더 '심각한 위반'이 있었고 그게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이유가 됐다는 설명을 DOE가 한국 정부 측에 한 것으로 안다
"고 전했다. 미국은 동맹인 한국을 아무 통보없이 SCL에 포함시켰고, 정부는 두 달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보안 문제가 민감국가 지정 사유?



이번 사태의 쟁점인 '심각한 보안 위반'은 아직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DOE가 보고서로 공개한 사례는 있다. 지난해 5월 DOE 감사관실(OIG)이 미 의회에 제출한 반기보고서를 보면, 아이다호 국립연구소(INL)의 도급업체 직원이 수출통제 대상에 해당하는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 정보를 소지한 채 한국행 비행기에 타려다 적발돼 해고됐다. 발생 시기는 2023년 10월 1일과 지난해 3월 31일 사이였다.

하지만 이 사례가 전부는 아니다. 외교가에서는 해당 사건이 DOE의 민감국가 지정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조셉 윤 대사대리는 이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와 주한미대사관이 주최 좌담회에서 "한국이 (민감국가) 명단에 오른 것은 일부 민감한 정보에 대한 취급 부주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연구하기 위해 이곳(에너지부 산하 실험실)에 가는 한국인들이 너무 많아서 일부 사건이 있었고, 그래서 이 명단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미국을 오가는 한국 연구 인력은 연간 2,000명이 넘는다.

그럼에도 원자력 연구개발(R&D)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과기부 관계자는 "국내와 미국의 여러 연구기관에 내용을 파악해봤지만 명확한 실체를 알 수 없어 답답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보안 위반 과정에서 정부 또는 정보기관 연루됐나



이번 사안은 대처과정도 석연치 않다. 보안 문제가 발생하면 DOE 산하 연구소가 상대 기관이나 당사국에 통보·항의를 하고, 수사당국에 의뢰하는 것이 통상 절차다. 원자력 개발과 관련한 여러 보안 문제가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SCL에 한국이 올랐다는 건 과도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특히 한국은 사실상 핵을 보유한 이스라엘을 제외하면 SCL에 포함된 미국의 유일한 동맹국이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이 때문에 해외 안보기술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단순 보안 규정 위반이 아니라 한국 정부나 공기업 등이 보안 위반 과정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 정부가 연구원의 정보 유출의 배경에 자리잡고 있다면 문제의 심각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경우 DOE 산하 방첩정보국(OICI)은 규정에 따라 한국을 민감국가 지정 대상으로 분류할 수 있다. 앞서 1999년 미 의회에서 DOE는 '민감국가'를 "미국에 위험하거나 핵무기 또는 핵 관련 비밀을 얻고자 하는 국가"라고 규정했다.

한국 정보당국의 연루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원자로 설계 관련 자료 유출을 다룬 DOE 보고서에는 해당 직원이 이메일과 메신저를 통해 '외국 정부'와 소통해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국토안보국이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적시했다. 외국 정부가 한국 정부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만약 한국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심각한 외교 문제가 될 수 있다.

정부, 뒤늦게 사안 심각 파악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외교부의 늑장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조태열 장관은 지난 1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해당 사안이 "일회성일 가능성이 있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나흘 뒤 DOE가 한국이 SCL에 포함된 사실을 공식 확인하자 "사안을 중대하게 바라보고 있으며 관계부처들과 긴밀하게 협의해 대응하고 있다"고 태도를 바꿨다. DOE가 한국을 지정한 이유에 대해서도 외교부의 첫 입장문은 17일에서야 나왔다. 그럼에도 이재웅 대변인은 18일 브리핑에서 "미 측과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는 답변에 그쳤다.

익명을 요구한 한미 외교 소식통은 "여러 채널에서 대화가 이뤄졌지만 직접적인 이유를 명확하게 들었다고 할 수는 없는 사안"이라며 "다만 국가안전보장회의(NSC)나 국무부에 공유가 되지 않은 내용인 만큼 DOE 차원의 행정 조치로 봐야 한다는 말도 맞다"고 전했다.

정부는 전방위 외교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방침이지만 당분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미 카네기재단 출신의 제임스 스코프 일본 사사카와 평화재단 선임연구위원은 "SCL에 지정됐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해당 국가의 연구기관과 연구진에 한층 더 주의적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의미기 때문에 새로운 민감한 기술 협력을 어렵게 할 수 있다"며 "한미 양자 기술협력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재학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보안 문제와 함께 핵무장 담론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SCL 지정이 이뤄지지 않았을까 한다"며 "R&D 현장에 있는 입장에선 걱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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